나의 길버트 3

by 엘레강스박

같은 동네 친구 C가 '만복상회' 입구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엘레강스야, 길버트가 왔는데 애들 모아서 함께 보자. 우리 집으로 와, 꼭!"

스물셋의 6월 말 오후, 나는 아버지 대신 우리 가게 '만복상회'에 앉아 있었다.

손님 없는 가게 안은 나와 파리만 있었다.

지루해서 하품이 나오려다 C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한쪽 팔을 못 쓰게 되자,

엄마는 1층에 가게가 딸린 이층 집을 구해 전세계약을 했다.

누워있으려고만 하는 아버지를 위한 것이라는데,

만복상회는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어 한 엄마의 숙원을 이룬 것이라 여겨진다.


엄마는 면사무소 뒤편에서 호떡과 어묵을 팔았었다.

하교 후 오가는 학생들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주 고객이던 그 소박한 장사는 그러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근처 어느 가게에서 면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어제까지 호떡을 사 먹던 면서기가 나와서 무허가 영업이라 당장 철수해야 한다고 했단다.

그런 사연으로 탄생한 만복상회는 여름방학으로 낮에 집에 있는 내가 보게 되었다.


나 역시 집에 있는 사연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팔 다친 아버지와 아래로 셋 있는 동생들은 어쩔 거냐는 엄마의 성화에 취업을 했었다.

직장은 우리 마을에서 4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나가면 있는 병원이었고 나는 일반 사무직으로 일했다.

그런데 스물두 살이 되던 1997년에 흉흉한 소문이 돌더니, 병원이 최종 부도처리되었다고 했다.

그 많던 의료진을 비롯한 미화원들, 조리사 이모님들, 나 같은 사무직원들이 졸지에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한동안 실업급여를 받으며 구직활동에 전념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때라 기술 없는 고졸의 재취업이 쉽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엄마의 걱정은 또 시작되었다.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졸업한다고 취업은 보장되냐고, 또 네 나이는 어쩔 거냐고.

나는 내 노력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2년제 대학 합격통지서를 내밀었다.

그제야 엄마의 잔소리는 일단락되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친구들 보러 온 길버트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낮잠 주무시는 아버지를 억지로 깨워 가게에 앉히고 거울을 보았다.

수년만에 보는 길버트인데 민낯으로 가도 될까.

파운데이션이라도 발라야 되나, 립스틱도 바를까.

그렇게 고민하는 내가 한심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엄마가 호떡장사를 하던 때에 대학생이 된 길버트가 여자친구와 우리 동네에 왔었고

그 호떡을 먹으며 내 안부를 묻더라던 엄마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정말로 내가 한심한 것이,

그가 알게 되면 부담스럽다 못해 무서워할지도 몰라 입밖에 내지 못한 사실이 있다.

스무 살 넘은 성인이 되니 나에게도 나름의 매력은 있었는지

이직한 직장동료가 사귀고 싶다고 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시험 준비로 바쁜 나에게 캔커피를 내밀며 대시해 온 복학생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거절했다.

예전 아카시아꽃 향기가 진동하던 그 소풍날에, 진지했던 그 소년 길버트의 눈이 떠올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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