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색 반창고로 시작된 아들의 인생

아들은 그렇게 자랐습니다.

by 홍시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얻었다.
이제 내가 너의 엄마다.
정말 잘해줄게.

그렇게 만나서 24개월 동안
아들은 엄마인 나를 양분 삼아 자랐다.
2년 세월, 오로지 모유만 먹고.

사람이 물 한 모금 안 마시고도 살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문제는 영양가였다.
아이는 쑥쑥 자라고, 먹는 양도 늘었을 텐데
이 모유라는 게 대체 얼마나 공급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지 않은가.

나는 돌아서면 목이 탔고,
다크서클은 허리까지 내려왔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아이의 밥통이라는 사실.
즉, 절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

먹고, 먹이고, 자고.
그 세월을 반복하다 보니,
나는 과연 사람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젖을 뗐다.

(※ 참고: 쓴 약보다 살색 반창고가 더 효과 있었음.)


ㅡㅡ

아이는 입이 짧았다.
다른 아이들이 잘 먹는다는 이유식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조리한 음식도 싫어했다.

대신
양념 안 된 도토리묵,
오이, 당근 같은 생야채는 잘 먹었다.
아니… 사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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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 알러지 증상이 생겼다.
무식한 엄마는 바로 생혈 검사를 했고,
본인 혈액 상태에 충격을 받은 아이는
급식에서 기름진 음식과 가공식품을 스스로 피해
밥과 김치만 먹는 속 터지는 시기를 맞았다.

세월이 조긍 더 흐른 후

다행히 치킨은 좋아하게 됐다.
그래서 종종 “우리 아이는 닭이 키웠어요.”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진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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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년이 되더니 뭐라도 먹긴 했는지
살이 통통하게 오르기 시작했고
중학교 입학 땐 나름 포동 했다.

근데 거기까지였다.

급식이 맛있다며 잘 먹는다 싶더니
키가 부쩍 자라고,
날씬 → 늘씬 → 어어? 말랐네 단계로 진화.

또래보다 못 먹는다.
안 먹는 건지, 못 먹는 건지 헷갈리지만
함께 있으면 안 먹는 게 눈에 띈다.

할머니는 걱정이 늘어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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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가더니 급식이 맛없다고 불평하기 시작.
치아 교정까지 들어가니
와… 진짜 안 먹는다.
마른다.
딱하다.

고3 때는 코로나,
대입 실패로 1년 더,
적성 안 맞아 반수 1년 더.

그 사이 나는
정시 식사시간에 밥을 해 먹이느라
진이 빠졌고,
아무튼 뭐든 지나면 잊히기 때문에 기억도 가물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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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원하는 학교에 입학 후 자취 시작.

잘 먹을 리 없지.

그렇게 열심히 키운 아들을
나라에서 “내놓으라” 하여 군대로 보내고 ㅠㅠ
훈련소 수료식 사진을 보니
많이 말랐더라.
하지만 원래 마른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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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다—
이 아이가 목표를 세웠단다.

“내가 이곳에 온 까닭은 몸집을 키우기 위해서!”

운동에 매달리고,
먹는 데 열중했다.

그 결과
키는 2cm 더 자라고,
몸무게는 10kg 늘고,
허리 사이즈는 그대로.

엄청난 근육맨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유지 잘하렴~!
너무 신기하다.
나는 배만 나왔는데. (사실은 온몸이 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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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 앞가림은 하더라는 거다.

단단해진 아이를 보며,
엄마는 여전히 신비롭다.

이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전혀 모른다. 그저 기도할 뿐.
뒤돌아 내가 저 나이였을 때를 떠올린다.

그래. 그땐 나도
이렇게 살았었지.
어슴프레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떠오르고
내 아이와 동갑인 젊은 날의 나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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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이대로 잘 자랐고,
앞으로도 잘 자랄 것이다.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아침 일찍,
잘 안 먹는 아이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어느 작가님의 글을 보고
또 이렇게
나의 욱아(育兒) 과정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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