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방금 자리가 났고 난 자리에 앉았고 얼마 안 가 내릴 건데 , 내 앞에 마치 몇 해를 기근에 헐떡인 듯 마르고 작은 아가씨가 선다.
쇼핑백을 들었는데 아마도 쇼핑 마치고 귀가 중이신 듯.
무거워도 보였으나 들어준다 하면 안 줄 것 같아서 조용히 있자니
이 아가씨 살짝 다리를 벌려 쇼핑백을 내려놓고 양쪽다리로 지지한다. 무거운가 보다...
맞은편 임산부 석은 비어있다.
.......
라떼는 말이다... 오가는 등하굣길에 얼마나 많은 가방을 무릎에 얹어봤는지 아나?
운 좋게 자리가 나서 앉으면 이 사람 저 사람 가방이 착착착 무릎에 쌓여 어떤 날은 숨쉬기도 힘들었고 앞이 안보인적도 있다.
하루는 비가 오는데...
난 버스 뒷문 바로 앞에 앉았고 그날 가방은 무슨 쌓기 대회라도 열린 마냥 무릎 위에 쌓여있었다.
버스가 좌회전을 하면서 동시에 문이 열리고.. 열리면서 열개는 족히 쌓인 가방 들 사이 (아마 정가운데쯤)에 있던
누구 것 인지도 가늠이 안 되는 가방이 쏘옥 미끄러져 빠지더니 계단을 그대로 통과, 진흙진창이 땅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지는데..
난 나머지 가방을 사수해야 했고 떨어지는 가방도 사수해야 했고 내 몸뚱이도 추슬러야 했고(만원 버스니까) 아주 정신이 아득했던 기억이 난다.
필사적으로 악을 써서 가방을 서있던 자들에게 건네고 특공대처럼 뛰어내려 가방을 건져 올렸고 가까스로 버스에 올랐다.
그땐 정신없어 눈치채지 못했지만 모두가 기다려준 듯.
슬픈 건 정작 가방의 임자는 어디에 있는지... 아마 이사태를 모르는 게 분명했다.
버스에 올랐으나... 가방은 쵸코퐁듀에 적신 무엇처럼 진흙천지. 그대로 진시황 무덤에 봉인해도 될 것만 같았다.
옷소매로... 그랬다, 옷소매로 팔꿈치로 원피스자락으로 가방을 마구 닦았다. 어쩐지 응원의 함성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집 앞 정류장에 도착한 난 그 모든 가방을 후임자에게 인계했더..언...
언제부터인가? 가방 받아주는 게 어색해진 이 현실 말이다.
#그땐그랬지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