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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주 Nov 19. 2024

불운이 삶에 걸리적거릴 때

(그림책: 「불행이 나만 피해 갈 리 없지」)

   예기치 못한 나쁜 일을 불행,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일을 우리는 행운이라고 부른다. 살아가는 동안 얼마의 비율로 불행과 행운이 다가올까. 패턴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삶의 무늬는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 형태와 색깔, 명도와 채도를 갖는다. 수용하는 마음 상태에 따라 무늬를 이지러지게 하는 구김이 생기거나, 결이 매끄러운 문양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우리 삶에 다가오는 행운과 불행의 형태가 너무도 다양하고 무게도 제각각이다. 특히 불행은 이질적인 무늬를 직조시켜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기도 한다. 불행 앞에 견고해질 순 없을까.




   두세 걸음 앞에 맨홀 구멍이 있다. 뚜껑 없이 들여다보이는 시커먼 입구가 만약 빠진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결과가 발생하리라 예고한다. 그런데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이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림 아래 정서 된 제목처럼 구멍으로 빠지는 불행이 닥쳐올 것인가. 그림책 표지를 벗어난 얼굴이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위험을 눈으로 확인하고 건너뛰지는 않을까. 제목이 암시한 대로 맨홀에 빠지기 직전인 한눈파는 모습일까. 발밑 그림자를 왼편으로 따라가 뒤표지를 펼치면 앞표지와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자 끝엔 등을 곧추세우고 앉은 고양이 한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선 이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고양이의 예감은 무엇일까.


   세 장의 양면그림이 먼저 도입부를 구성한다. 주인공의 삶의 배경을 설명하는 그림들이다. 화목해 보이는 가족사진, 그러나 집을 나서려는 이의 등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이어서 다음장은 원경으로 화면이 멀어지면서 동네 전체를 비춘다. 그리고 마주하는 속표지에서 다시 한번 제목이 언급된다. ‘불행이 나만 피해 갈 리 없지.’


   노란 스웨터에 검정 운동화, 가방을 어깨에 메고 현관을 나서는 여자. 표지에 없던 얼굴이 드러난다. 생각에 잠긴 듯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 표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자의 생각들 혹은, 나지막이 읊조리는 말들이 타이핑되어 글 텍스트를 이룬다. 집을 나와 귀가까지의 하루 여정과 그 사이에 벌어지는 짧은 사건들, 그리고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여자의 생각들이 이야기로 전개된다. 


   집 밖으로 나오며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에 상처를 입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머리 위에 새똥이 떨어지고, 높게 쌓아 올려진 책더미가 골목을 빠져나오는 순간 옆으로 쏟아져 내린다. 진흙탕을 지나가던 자전거 바퀴가 노란 스웨터에 시커먼 오물을 튕기고, 도착한 도서관(으로 추측)은 하필 휴관이다. 걸터앉은 벤치가 무너져 내리는 백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여자에게 일어난다. 


   행복으로 가득했던 나날들이 있었고, 행운이 나를 선택함에 주저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불행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쉬어갈 새도 없이 자주 닥쳐오면서 여자는 생각한다. 불행이 자신만 비껴갈 리는 없을 것이라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연거푸 몰아치는 가운데 여자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진정시키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불행이 나만 피해 갈 리 없지.’ 


   사소한 운 없음이 불행의 감정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찰나, 넘긴 다음장에는 전반부의 가족사진과는 어딘가 달라진 사진들이 흩어져 있다. 다양한 밝음의 색감이 모노톤의 흑백으로 바뀌어 있고, 군데군데.... 사진에는 인물이 빠져 있다... 가족의 죽음과 부모의 이혼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행은 연달아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여자의 하루 동안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몇 번의 나쁜 일들과 그럴 때마다 되뇌었던 불행에 대한 생각들이, 좋지 않았던 이전의 기억에 연루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여자는 고개가 더 수그러진 모습이다. 

 



   이 세상에 행운과 불행의 구체적 사례는 나 하나이다. 나만이 그것을 행운 혹은 불행이라 이름붙일 수 있다. 심정적으로 동조할지언정 사태 안에서 온몸으로 체험하지 않는 한, 공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타인에게는 몇 퍼센트의 확률로 발생할 수 있는 일이 내게 닥치면 백 퍼센트가 되어 버린다. 그 백 퍼센트 확률의 사건을 감당해 내었던 시공간의 기억이 각인으로 남는다. 누구도 감히 ‘나도 그런 일 겪었어.’라고 말할 수 없는 나만의 특수한 삶의 데이터가 그렇게 쌓인다. 그것은 힘이나 위안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론 절망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삶 전체를 묶어버리기도 한다. 여자의 하루는 불행에 대한 상념으로 끝날 것인가.     


불현듯 섬광처럼 그리고, 조용히 생각 하나가 올라온다. ‘행운도 나만 피해 갈 리 없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그림책을 뒤집어 다시 앞표지로 돌아오면, 표지 위 보이지 않는 여자의 얼굴이 그려지면서 시선이 맨홀을 향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계속되는 불운의 여파에 고개 숙이지 않고 남은 삶을 똑바로 응시하며 살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불행이 애써 나만 피해 간 것이 아니라면, 행운 또한 일부러 나만 예외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일, 나쁜 일 어느 한쪽만 일어나는 삶이 아니어서 행운은 더욱 환희로 다가오고, 불행은 또 견디어 볼 만한 것이 아닐까. 




   쨍하지 않은 톤 다운된 색감의 그림이 어둡지만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반대로 재질은 만지면 살짝 거칠게 느껴지는 그림책이다. 주인공의 상념이 거름 없이 독자에게 전달되기에 효과적이다. 삶은 적당히 투박하다.


   아이보다는 성인이 읽으면 생각거리가 더 많을 이 그림책을 통해 나를 피해 갔었던 불행이 있다면 가슴을 쓸어내리고, 내게 오지 않았던 행운이 있다면 더욱 극적으로 만날 날을 기대하는 소박한 마음을 슬쩍 가져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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