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거리에 핀 꽃」)
그림책이 말을 건넬 때, 글이 아닌 그림의 목소리인 경우가 있다. 그림에서 서사를 발견할 때 그 목소리는 내 말이 되고 나를 통해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림으로만 구성된 책, 글이 없는 그림책에서 이야기 작가의 역할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이야기의 진위, 재미나 감동 여부는 개의치 않아도 된다. 같은 그림에 대한 감상평이 제각각이듯 이어지는 그림들에서 엮어지는 이야기 또한 개별적 ‘그림읽기’의 결과물로 각양각이하다. 그려진 것들이 무엇인지 눈으로 훑는 ‘그림보기’에서 나아가 그림들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는 사건을 찾아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서사가 만들어지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그림읽기’이다. 경험과 앎의 배경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독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거리에 핀 꽃」은 글 없는 그림책이다. 글이 없는 대신 독자가 최대한 그림으로부터 이야기를 찾아보도록 화면 분할을 이용한 컷 형태의 그림이 많다. 일종의 만화 그림 같은 방식이다. 그림의 역동성을 강조하여 독자가 인물의 움직임과 사건의 전개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작가의 의도이다. 하나의 그림보다 여러 개의 그림에서 인물은 더 자주 움직이고 사건은 단서를 더 많이 남긴다.
흑백영화의 필름을 닮은 첫 장면에서 빨간 외투를 입은 자그마한 아이가 있는 오른쪽 하단으로 시선이 쏠린다. 빨간 옷을 따라 시선은 자연스레 옆 장으로 이어지고 아홉 개로 분할된 무채색 그림의 컷 안에서 빨간 옷을 입은 아이의 움직임은 더욱 선명하게 부각된다.
아빠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면서도 아이는 구석구석 거리의 풍경을 놓치지 않는다. 키 작은 아이의 시야에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피어난 민들레가 들어온다. 가만히 향을 맡으며 소중히 손에 민들레를 쥐어 드는 아이. 걸어가는 동안 아이는 아무도 주의해서 보지 않는 이런 꽃들을 유심히 살피며 손에 그러모으고 향을 맡는다. 무채색 화면 속, 그림은 아이의 옷과 꽃들에만 색을 입히고 이를 단서로, 계속해서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아이가 거리의 후미진 구석에 핀 꽃을 놓치지 않으려 할 때, 아빠는 잠시 걸음을 멈추어 기다린다. 아빠가 잠깐의 볼일로 아이의 손을 놓을 때, 아이는 보도블럭 사이에 피어난 꽃을 발견하고 손안에 모은다. 이렇게 아이는 아빠와의 한나절 외출에서 다발을 만들 만큼의 꽃을 얻는다. 거리에 아무렇게나 핀 꽃들이 아이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꽃다발로 다시 태어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빠와 아이의 뒷모습이 양면 가득 그려진 동네 풍경 속, 오른쪽에 조그맣게 드러난다. 이야기의 첫 장면과 동일한 화면 배치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도 서사는 만족스럽다.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는 이름 없는 꽃들을 소중히 모아, 가슴에 품고 가는 아이. 아이의 관점으로 귀중함과 가치 있음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거리에 핀 꽃은 아이에게 충분한 의미 존재가 된다. 이러한 메시지도 뭉클하다. 하지만 그림은 그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간다. 이야기의 2부라고 생각되어지는 이후의 전개는 1부와 흡사한 그림 표현 방식을 따른다. 그림은 여전히 무채색이며 빨간 옷을 입은 아이를 쫓아가도록 한다.
걸어가다 버려진 죽은 새를 마주한 아이. 새 앞에 쪼그려 앉는다. 손아귀 속, 꽃 몇 송이를 뽑아 죽은 새 위에 올려놓는 아이. 여기서부터 그림에 색 변화가 일어난다. 무채색이었던 새가 채색으로 거듭나고, 아이의 행위가 이룬 결과인 듯 이후의 모든 그림은 색을 입는다. 아이의 꽃 나눔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공원 벤치에 누워 잠든 이와 주인의 손에 이끌린 개에게로 계속되고 집에 도착한 후에는 엄마의 머리를 장식하는 쓰임으로 이어진다. 어린 두 동생의 머리에도 몇 송이씩 가만히 얹어주고는 마지막 남은 한 송이를 자신의 오른쪽 귀에 살포시 꽂는다. 이렇게 이름 없이 거리에 핀 꽃들은 아이에게 거두어져 새로운 의미 존재로 살아나고 나눔과 쓰임으로 그 의미는 더욱 확장된다.
이야기가 끝나고 뒷면지(뒤표지와 연결되는 지면)에서 아이가 무수한 풀꽃들 위를 성큼성큼 걸어간다. 앞면지(앞표지와 연결되는 지면)에는 풀꽃 그림만 있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거리에 핀 꽃’이 앞면지 그림이었다면 누군가 보아주어 존재를 확인받은 ‘거리에 핀 꽃’은 뒷면지 그림이다. 아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나름의 이유로 존재한다는 선량한 믿음을 가졌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아이의 순수함은 무지이기에 앞서 상대를 향한 관심이다. 이름 없는 풀꽃들이 모여져 다발을 이루고 누군가의 마음에 행복감과 따뜻함을 전달하기까지, 아이는 그 어떤 사소한 것에도 관심을 놓치지 않았다. ‘거리에 핀 꽃’은 사소함으로 대변되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놓치는 것들을 말한다.
우리는 화원에서 가꿔진 선명한 색의 탐스러운 꽃에서만 아름다움을 찾는다. 나눔의 대상을 이해관계로 상정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키워진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 받을 것을 전제로 나누는 것, 모두 당연한 이치이지만 무감동하여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목적 안에 가두어진 삶에서 사소함은 줄곧 쓸모없음으로 버려지고 우리의 소소한 감정도 함께 절제된다.
이 그림책에서 아이의 작은 마음 씀과 작은 행동들은 소소한 우리의 마음들이 결코 작거나 하찮지 않음을, 잔잔한 온기로 삶의 온도를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거리에 아무렇게나 핀 꽃들이 우리 마음의 균열을 바로잡을 질서를 내포하고 있다는 해석은 비약이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이 그림책에서만큼은.
글이 없는 그림책은 그림을 읽는 이의 정서와 이전 경험, 그리고 지닌 가치에 따라 무수한 서사를 낳는다. 글이 없으니 그림을 더 세밀하게 속속들이 파고들게 되고, 세부적인 사물들까지 서사의 내용으로 끌어들일 소재가 된다. 오늘 생각한 서사가 내일 읽었을 땐 다르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글 없는 그림책은 수수께끼 같으면서 묘하게 도전감을 불러일으킨다.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손짓하는 이 그림책을 독자의 첫 글 없는 그림책 읽기로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