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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이 있는 정경

(그림책: 「우리 집 식탁이 사라졌어요!」)

by 안은주

테이블처럼 생긴 미니어처가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다. 말끄러미 들여다보는 아이의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지 않는다. 자그마해져 가다 감쪽같이 사라져 버릴 것인가. 제목을 훑고 얼른 책을 뒤집는다. 아니나 다를까.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테이블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이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다. 허리춤에 손을 딛고 선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바이올렛은 테이블이 그립다. 그 테이블은 가족과 일상을 공유하던 식탁이었다. 가족을 모두 앉힐 수 있을 만큼 넓고 큰 식탁에서 많은 일들이 펼쳐지고 만들어졌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는 과정이 흩어지며 분담되었다가도 완성된 음식을 먹는 장면은 늘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하루 여정의 종착지처럼 식탁은 가족 모두를 모이게 하는 마법의 탁자였다. 음식을 나누며 일과를 보고하고 생각을 전달하며 의견을 덧붙인다. 그러면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가족의 하루에 심정적으로 관여하며 위로하고 지지하였다. 그렇게 식탁을 중심으로 가족의 이야기가 하루하루 앨범처럼 쌓여갔었다. 그랬던 식탁이 이제 사라지려 한다.


바이올렛의 기억속에 가족과 함께 했던 시간들은 사과 한 알, 수저 세트, 식탁 위를 밝히던 촛불 등의 사물조차 너무도 선명한 색상으로 사진 찍히듯 저장되어 있다. 색깔은 그날 느꼈던 마음이자 곁에 있었던 가족의 따뜻함을 표현한다. 그래서 원래의 재료가 어떻든, 식탁마저 분홍색인 것이다. 가족 구성원과 사물의 특징을 살려 고유의 색상으로 잘 칠해진 또렷한 그림이 마치 컬러사진 같다. 앨범 속 사진을 늘려가길 기대하는 독자의 바람대로 다음 장에서도 컬러 그림이 이어지면 좋으련만.




가족이 모이지 않는 휑한 식탁의 모습을 그림은 흑백으로 표현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색으로 젖어드는 바이올렛색이다. 왠지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주인공 여자아이의 이름이 바이올렛인 것은 작가의 의도적인 작명임이 분명하다. 예쁘게만 불리었을 이름이 혼자 쓸쓸하게 앉아 식사하는 아이의 모습과 남보라색으로 채색된 그림에서 이중의 정서를 느끼도록 하고 모순을 감지하게 한다. 아이는 바이올렛이라는 예쁜 이름만큼이나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 고 독자는 생각한다.


가족을 모이게 했던 식탁의 마법 능력이 사라져 버린 것일까. 바이올렛의 옆과 앞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가족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비어있는 자리가 오래되어 부재의 무거움이 식탁을 땅 밑으로 꺼져버리게 한 것일까.





바이올렛의 가족들은 각자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느라 가족, 그리고 식탁에서의 일상이라는 정서를 잊었다. TV 속 세상을 감상하고, 휴대전화 너머 타인과 대화하며, 인터넷 바다에서 게임의 튜브를 타고 유영하는 사이 가족은 점점 잊혀 간다. 실상 혼자여도 즐김과 나눔이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가족들에게 식탁 이상의 유희거리가 생긴 것이다. 그 세계에 아직 접속하지 못한 바이올렛만이 유일하게 식탁의 추억을 상기하며 그리워할 뿐이다.


가족의 방을 기웃거린다. 바이올렛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 것보다 매체에 몰입되어 즐거운 표정을 짓는 모습이 더 서운하다. 그리고 바이올렛은 몹시 외롭다. 혼자 앉는 식탁이 나날이 작아지는 과정은 바이올렛의 외로움과 심리적 위축을 표현한다. 점점 작아지던 식탁은 표지에서 보여졌던 것처럼 바이올렛의 한 손에 들어오더니 급기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쓸모없어진 식탁의 제거는 바이올렛을 제외한 가족 모두의 마음속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라진 식탁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 위한 바이올렛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그림책은 이를 가족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식탁을 제작하는 것으로 그린다. 여기서 가족들이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모여들어 식탁을 만든다는 설정은 개연성이 없다. 영리한 작가는 바이올렛에게 전략을 귀띔한다.(물론 이 내용이 그림책에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애용하는 매체로부터 식탁 제작의 방법을 검색하도록 하고 각자 역할 분담하여 새로운 식탁을 완성하도록 한다. 가족들이 불평불만하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로부터 매체를 빼앗지 않으면서 오히려 그것을 잘 활용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흑백사진(바이올렛색)에서 벗어나 다시 컬러사진을 보여준다. 가족이 모두 함께여서 가능한 일이다. 새로 만들어진 노란색 식탁 주위로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다. 식탁을 만들던 이야기, 그간 나누지 못해 쌓여있던 각자의 이야기가 음료처럼 곁들여져 풍미 가득한 저녁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가족이 애용하는 매체 이야기도 추가되며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던 현대문명의 이기를 그림책은 비난하지 않는다. 가족을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지만 잘 이용하면 다시 모이게도 할 수 있다는 지혜를 보여준다. 어쩌면 매체에 점령당하지 않으면서 매체를 제대로 써먹는(활용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TV에 점령당하는 하루인가, 휴대폰에 지배당하는 일상인가, 인터넷에 발목잡힌 위락인가. 기계에 잠식되는 하루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일상과 즐거움 안으로 기계를 들여오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이 가짜 즐거움에 현혹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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