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감정의 끝은 눈물이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도강록에서 당시의 울음에 대한 금기를 넘어 ‘맘껏 울어보자’며 눈물을 예찬했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가장 지극한 지점에서 자신의 한계를 수긍하는 세레모니를 눈물로 대신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물은 영혼에 내리는 여름 소나기’* 이므로 ‘울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한 어느 시인의 눈물 예찬도 있다. 마음의 들판을 적시고 거기에 깃들 생명들을 기다리기 위한 물길 대주기일까. 과연 메마른 논리의 자(尺)가 마음의 구석구석을 재며 가시떨기처럼 찔러올 때,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일시에 터져 영혼을 풍요의 들판으로 바꾸어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눈물을 마음대로 솟아나게 하거나 멈출 수 있을까. 이 글은 참을 수 없는 나의 눈물에 대한 단상이다.
어려서는 직접적인 고통 이외에는 눈물을 몰랐던 것 같다. 아주 원초적으로 아프거나 무섭거나 서러울 때만 울 줄 알았다. 그것도 자주 울지 않는 아이여서 어른들로부터 대견히 여김을 받은 기억도 있다. 그래서인지 운다는 것은 부정적인 느낌이 많았다. 울음은 참는 것, 눈물은 흐르기 전에 닦는 것. 그리고 더 어릴 적 기억으로는 눈가에 슬쩍슬쩍 침을 발라가며 우는 척을 했던 놀이도 있다. 또 눈물이 많던 그 시절의 대중문화의 영향이었던지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거울을 보며 억지로 눈물을 흘리는 장난도 했다. 여배우 흉내를 내며 엄마의 스카프를 두르고 거울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비련의 주인공처럼 눈물을 짜는 놀이였다. 생각해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눈물에 대한 다양한 개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고 봐 줄 수도 있겠다. 진심으로 울 일이 별로 없던 어린 날의 눈물의 기억은 이렇게 빈곤하다.
그러다가 이십 대 후반 어느 기도의 시간부터 나의 주체할 수 없어서 진정한 눈물은 시작되었다. 계기는 잘 모르겠다. 그저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기도만 하려면 본의 아닌 눈물이 먼저다. 슬픈 일, 괴로운 일이나 간곡한 소원이 있어서는 아니다. 그럴 만큼 매번 감동에 휩싸여 있지도 않은데 그냥 기도, 하며 눈을 감으려면 제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이것은 요즘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혼자 가만히 기도할 때나 여러 사람 앞에서, 혹 은 함께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잠시 마음의 중심점에 집중하며 내면의 소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진심을 쏟는 대화를 시작하려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막을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당혹스럽다. 남몰래 이건 뭘까 고민해 볼 때도 있지만, 따져볼 일은 아니다. 그냥 무조건 그렇다.
엄마는 내가 오십을 곧 앞두었을 때쯤 돌아가셨다. 그 나이에도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해 엄마에게 만큼은 종종 마구 신경질을 내곤 할 때였다. 엄마에게 너무나 내 맘대로 대하다가 겨우 미안한 마음이 일면 무슨 특혜를 베풀 듯 효도 비슷한 것을 하는 일도 생기기 시작하던 무렵. 심지어 나는 엄마 보다는 내가 얼마나 내 자식들에게 잘난 엄마인지 보라는 듯이 잘난 척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럽고 죄송하다. 나이만 들었지 감사와 사랑은 커녕, 외롭고 아름다운 존재, 엄마라는 여인을 이해할 꿈도 못 꾸던 철부지였을 때인데 엄마는 엄마 답지 않게도 우리를 두고 급히 돌아 가셨다. 그 후로는 그냥 엄마와 관련된 모든 것, 엄마를 연상하게 되는 모든 것에 대해 눈물이 난다. 좋아했던 음식, 화초, 유행가, 화려한 옷, 그리고 엄마가 그리도 예뻐하던 나의 아이들까지. 나의 엄마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엄마 이야기만 들어도 일단 눈물이 고이고 목소리가 흔들려서 민망하다. 순간적으로 몰려오고 쏟아지는 것이라 미리 대비할 수도 없고 나를 달래어 눈물을 그치게 할 수도 없다. 엄마, 하면 그냥 온몸의 습기가 응결하고 눈을 통해 넘쳐나야만 진정이 되나보다. 어쩌면 지금쯤 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엄마가 흐르고 흘러 내 속에서 나를 달래고 씻기는 중인지도.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 생겼다. 부끄럽게도 얼마 전부터는 글을 쓰려고만 하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잘 쓰려고 해서도 아니고, 글쓰기에 한이 맺힌 것도 아니다. 슬픈 내용을 쓸 일도 없고 심지어 유머나 위트가 있는 내용을 쓸 때에도 훌쩍거리게 된다. 굉장한 깨달음도 아닌데, 그럴 만한 훌륭한 내용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기도할 때처럼, 엄마를 생각 할 때처럼,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훌쩍이며 글을 쓰게 된다. 하도 뜬금없어서 이 같은 증세가 있는 사람들과 모임을 갖고 토론을 해보고 싶을 지경이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는 나에게 짝사랑의 옆얼굴처럼 항상 안타까우나 막상 말을 걸지 못하는 대상이었다. 속이 다 드러날까 봐서 시작도 못하는 연애 같은 것. 한 번 시작하여 그것이 의미로 남으려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나와 관련된 모든 존재의 에센스를 짜내는 아픔과 집중이 있어야만 하는, 그래서 자꾸 미루고 싶은 일. 그렇다고 매번 울며 할 일은 아니거늘.
이것은 무엇일까. 울보, 찌질이, 지나친 감상주의, 아니면 갱년기 증상, 이런 범주만은 아닌 것 같다. 순수한 영혼, 남다른 감성지수, 이런 것도 가당치 않다. 그러나 온전치 않은 내 마음 거문고의 하나 밖에 없는 외짝줄을 기도나 어머니나 글쓰기가 울리고 있음은 틀림없다. 두둥 울려서 그 울림이 눈물로 넘쳐나 진심을 대하는 나의 얼굴을 씻어주는 것은 아닐까. 칠레가 낳은 세계적인 자연미식요리사 베르힐리오(Vergillio)도 한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오는 손님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서브하면서 매번 많은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 않던가.
이쯤이면 어쩔 수 없는 것은 인정해 버리자. 눈물로 적신 들판에 울창한 생명이 자라 밀림을 이룰 때까지, 나는 울고 있는 나를 탓하거나 달래지 않으려 한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라 하여 최상의 선함은 물과 같다고 했다는데, 눈물도 물이어서 내 마음의 어둡고 거친 곳을 먼저 다 채우고 마침내 반듯한 평정의 미덕을 이루기까지 나를 채우며 저절로 흐르는 중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