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험, 통과의례
의예과 1학년 1학기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파업으로 인하여 1년 반이 지체되었기에 남은 6개월동안 1년의 진도를 나아가야만 하는 학생과 교수 모두 마음이 바쁘다.
같은 뜻을 향해 움직이지만 서로 바라는 것은 다르다. 오나라. 월나라의 동맹과도 같은 상황이고 또 나당연합과도 같은 상황이다.
정말 순식간에 예과 생활이 끝났다. 우리 학교는 의예과가 2학년 1학기까지다. 2학기부터는 해부학, 신경과학, 발생조직총론 등등 본과 과목에 해당하는 묵직한 과목들에 정진한다. 하루하루 공부하고 집학교를 반복하면 일상이 끝난다. 군대에서 훈련받고 제설하고 하루일과로 가득찬 날보다도 더 빠르게 시간이 압축되어 흘러가는 기분이다.
忙中閑 한중망이기에 바쁜 시간 속에서도 여자친구를 만나는 남자동기들도 보였다. 그리고 어차피 소홀해질 것이고 원래부터도 큰 마음이 없었기에 정리하는 여학우들도 보였다.
학생의 본질은 공부다. 근데 우리는 본과부터 학생의사다. 학생일까? 의사일까? 둘 다일 것이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의사의 본질을 가지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결국 의사인 척하는 학생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시험은 모두 정답이 있다. 학생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될지언정 말이다. 학생이 일으킨 모든 문제, 사고, 그리고 성과 모두 교수님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대부분 그 안에서 해결된다는 편안함, 안락함 또 온정이 있다.
내가 만난 모든 의사는 기본적인 냉소를 가지고 있었다. 비동의할 인원들도 있겠지만 아파서 병원을 갔을 때 내면의 차가운 벽을 나는 종종 느낀다. 같은 의대생 관문을 거치면서 나도 점점 나의 말이 곤두서는 것을 느껴간다. 온정은 팔이 안으로 굽을 때만이다.
해부학을 하면서 처음 땡시를 치면 아마 많이 당황할 것이다. 하지만 2번째부터는 금방 적응하여 자신의 위치를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땡시를 잘보는 팁들이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야무진 애들이 더 잘보고 덜렁대고 실수하는 이들은 결국 틀린다. 2분법으로 정오와 희비가 나뉜다. cbt는 참 재밌는 시험이다. 내가 무언가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컴퓨터 앞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조금은 낯설지만 이것또한 금방 적응하게 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그래도 그나마 약간의 미소를 가지지만 표정이 밝은 극히 소수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자신감은 떨어지고 자신을 점점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doxa를 가르칠 수 없다. 결국에는 logos를 가르쳐야 한다. 결국에 내 생각과 가치관, 사상은 나의 고유한 것이어야 하고 인성을 함양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기에 지적 성장을 통하여 덕의 향상을 유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불완전한 것 같다. 나의 경험상 대다수의 의사는 아니 인간은 자아실현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나 또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