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도슨트, 루브르 박물관> 서평
올해 8월 루브르 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최대한 다양한 나라를 가고자 여행의 '질'보다 '양'을 추구했던 교환학생이었고, 이 당시는 귀국 막바지 즈음이었기에 가이드 투어는 쳐다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설명을 듣고 싶어 5유로, 한화로 약 7000원에 루브르 박물관이 제공하는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습니다. 루브르 오디오 가이드 소프트웨어가 내장된 닌텐도 3DS를 빌려주는데 신기하더라구요.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냐는 생각에 한 작품도 빠짐 없이 눈에 담고자 했습니다. 전시관 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걸어다녔으며, 오디오 가이드의 개별 작품 설명을 거의 모두 다 들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워낙 박물관 자체가 방대하고 작품이 셀 수 없이 많았기에 약 3개월이 지난 지금, 제게 남은 건 유난히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작품과 그때 제법 지쳤다는 기억이네요. 아, 그리고 그때 프라고나르의 '빗장'을 보고 싶어 같은 길을 돌고 돌고 돌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는 기억도 제게는 아주 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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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좀 버리고 핵심 작품만 관람해 보았다면 보았던 작품은 모두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미 없는 생각이 머리에 맴돌던 중 이 책 <나만의 도슨트, 루브르 박물관>을 읽게 되었습니다. 대표작 25선을 선별해 작품을 이야기해주는 이 책이 제게 '심야 라디오'처럼 느껴졌습니다. 차분히 조근조근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심야 라디오 말입니다.
잔잔하게 작품을 읽어주는 저자의 모든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저자 서정욱은 렘브란트가 여러 번 그렸던 <엠마오의 만찬> 중, 23살에 그린 작품과 42살에 그린 작품을 비교하기 위해 23살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42살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비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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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자화상은 화가가 관람객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그림 곳곳에 드러납니다. 관람객을 의식하는 것은 화가의 배려일 수도 있지만, 심하면 개성이 사라질 수 있죠. 중년의 자화상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그린 작품보다 생기는 덜할지 몰라도 차분한 인상을 줍니다.
152p
다시 <엠마오의 만찬>을 살펴볼까요? 23살의 렘브란트는 성경에 기록된 일화를 완전히 이해한 다음 관람객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렸습니다. 이토록 화가가 친절하게 보여주니 우리는 편할 수밖에 없죠. 한편 42살의 렘브란트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엠마오의 만찬>을 꾸밈없이 그려나갔습니다. 관람객이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개의치 않았죠. 덕분에 우리는 그림을 읽기 위해 더 자세히 살피고 골똘히 생각해야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로부터 '예전보다 실력이 떨어졌다는' 평을 듣기도 했던 렘브란트의 그림이 '오래 보아야 하는 그림'이었음을 당시 초상화를 비교하며 알려주는 저자의 이야기에 저는 렘브란트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짐작하기 위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그림을 천천히 감상하는 시간은 정신 없이 루브르를 헤맸던 시간도 다시금 기분 좋게 떠올리도록 만들어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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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차분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흐름에 몰입하게 만들어줍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작품이 있는 페이지로 몇 번이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작품은 머리에 스며들고, 낯설던 작품은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특히나 작품을 깊이 즐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작품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는 작품을 천천히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잠들기 전 침대에 기대 책을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루브르의 작품을 잔잔히 오래 즐길 수 있는 심야 라디오와 같은 책, <나만의 도슨트, 루브르 박물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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