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난중일기 07화

kt 아들이 도서부원이 되었다.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 1.

by 세일러 문


스윗한 아들은 양파남이다. 까도 까도 나오는 양파 같이 까도 까도 매력이 나오지만, 여러 의미로 매력적이라... 상당히 곤란하다. 그는 항시 정도를 걸어온 엄마의 세상만사 포용 그 임계치를 우주와 같이 광활하게 만들어준 장본인이었으니, 그의 역사는 대충 이리 간추려질 수 있다. 몰래 숨어서 오독오독 크레파스를 맛보고, 그의 예술을 혼을 담기엔 스케치북이 고루해 미끄럼틀과 가구들이 예술의 장이 되었며, 양치할 땐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 안 벌리기, 맛있는 거 먹을 땐 안 불러도 귀신같이 식탁에 일등착석, 당근이 없을 땐 족히 열 번은 불러야 달려오던 녀석이었다. 어릴 적엔 그리 장꾸의 매력을 지녀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게 하더니만, 크면서는 엄마의 뜻에서 자꾸만 미끄러졌으니 렇게 시름과 주름은 깊어 갔다.


남편과 나는 애정을 가득 담아 그를 kt라 부르곤 했다. kt는 바로 꼴통의 이니셜. 아무리 애정을 담았다지만 아들을 kt라 불러온 탓에 아이는 번번이 미끄러졌던 것일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날마다의 일들에 엄마는 적잖이 당황했기에 ‘저 녀석은 왜 저럴까’ 매일의 수수께끼를 오래도록 고민해도 답을 구할 길이 없었다. 도착점을 두고는 항상 슬라이딩을 해 바지들의 무릎에 모조리 구멍을 만들고, 숙제를 한다며 책상에 앉았다가는 그대로 취침, 만화방에 가서도 뜨뜻한 온돌방에 누워 단잠 자기 일쑤, 글자는 항상 녀석에게서 멀었고 그저 놀고먹는 한량의 피가 흐르는 것만 같아 내심 엄마의 근심은 깊어갔다. 뚱땅뚱땅 피아노를 치고 피릴리리 리코더를 놓지 않는 흡사 베짱이 같은 아들 녀석이 그나마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것에는 감사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쉬움이 머물다 이내 이 베짱이의 겨울이 걱정되는 것은 매일의 수순었다. 쉬지 않고 불러줬던 자장가 때문일까, 감성을 충만하게 해 준답시고 음악과 함께 살았던 유년시절의 영향일까 아이는 음악에만 흠뻑 빠져 있었다.



아이가 있다면 부모로서의 고민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아이가 성장하면서는 어떠한 삶을 가르쳐 줄 것인지, 아이에게 어떠한 유산을 남겨주어야 할지... 조그만 손짓과 몸짓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던 배 안의 열 달을 포함하여 엄마로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그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세상살이 다양한 사건과 정보의 바닷속에서 나만의 육아철학을 갖기란 가히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내 삶을 가장 풍요롭게 해 준 것들을 돌아보며 두 가지 축을 세우고 나니 숨통이 좀 트였다.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 이것이 바로 내 두 아이 양육의 큰 축.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어 주셨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신은 얄궂다. 아들에게는 언어보다는 음표를 몰빵해 주셨고, 베짱이 아니, 아들의 겨울이 춥고 배고프지 않도록 장기전에 돌입했더랬다.


먼저 독서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슬며시, 곳곳에 책을 두어 아들의 눈에 책들이 띄게 했고, 어떤 분야의 책이 아이의 취향에 맞을지 몰라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고루 선정했다. 주마다 도서관에 들러 3인(두 아이와 나)의 최대 대여 권수인 15권의 책들을 빌려 탑처럼 쌓아두었으며, 에코백에 담긴 열다섯 권 책의 무게만큼 엄마는 생활형 잔근육도 얻었다. 팔뚝은 날이 갈수록 굵어지고 있건만 책에 대한 애정이 쉬이 생기지 않는 아들을 보며 속이 터질 것 같아 주기도문을 조용히 읊조렸던 날들었다. 아버지 저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래, 만화책이라도 읽는 게 어디냐 편식을 하더라도 독서를 하긴 하는 게 어디냐,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고, 그럼에도 한결같이 재밌다! 를 외쳐주는 딸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시간.


삶의 무게가 무거워져 점점 에코백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진 그즈음부터는 책 대출 대신 아이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출동하는 도서관 1시간 데이트로 바꾸었더랬다. 엄청난 규모의 책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공간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압도당한 듯하다 이내 책이 내뿜은 특유의 향기와 적당한 온도의 포근한 도서관 분위기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 책 저 책을 살펴보다 한 권을 꺼내어 도서관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책 속에 빠져있는 아이들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생기 넘쳤고, 책 속의 주인공을 따라 먼 여행을 떠난 아이의 모습은 예쁘기 그지없었다. 약속한 시간은 어찌나 빨리 흐르는지, 엄마, 조금만 더 읽다 가면 안 돼요?라는 독서광의 면모가 살짝 비칠 때면 일정에 여유가 있는 어느 날은 조금 더 읽다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집에 가서 읽고 싶은 책들을 골라 대출을 하며 밀당을 했다. 물론 아이들이 선택한 책의 무게를 스스로 지게 했고, 아이들은 본인의 선택과 수고만큼 책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는 듯도 싶었다.


책을 읽어줄 에너지마저 소진되는 어려움도 한 번씩 찾아오자 잠자리 독서는 오디오북으로 대신하여 책 읽어주는 다양한 리더들을 모시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멋드러진 연기와 사실적인 음향효과가 아들의 궁금증을 유발하시키면서 자극에 유독 취약한 아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책의 내용에 귀를 기울여 아들이 몰입하기 시작하니, 드디어 책 읽는 맛을 알아가겠구나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다만 전천당의 경우 과몰입의 부작용으로 잠자리 독서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고, 두 녀석은 각성상태에서 앵콜을 외치곤 했다. 물론 독서만큼 수면을 중시하는 엄마는 자비 없이 내일을 기약했으니 아이들은 궁금증을 뒤로한 채 잠들어 꿈속에서 그 후속작을 만들거나 다시 쓰는 작가가 되었다. 계획대로 되고 있어!


아이들의 독서 독립이 서서히 자리 잡으며 무엇보다 나의 독서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다시금 확보된 나의 독서 시간에 그간 읽고 싶지만 읽을 수 없었던 책들을 끼고 살자, 이 책 읽는 엄마의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했지 않는가.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엄마 좋고 애들 좋고, 일거양득 이상으로 그리던 집 구석 풍경을 이루어 가고 있다. 할 일을 마치고 나면 집 안 곳곳에서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서로의 감상평을 나누며 재미있게 읽은 책을 추천해 주는, 책에 대한 대화가 끊이지 않는 날이 오다니,,, 역시 우리네 삶은 가끔 흔들리기도 하고 시련을 겪기도 하지만 살아볼 만하다.



kt 아들의 책사랑은 올해 색다른 결실을 맺고 있다. 학교 도서관의 도서부원이 된 것. 지원서를 가져와 정성스레 작성하던 모습만으로도 감격스러웠는데 1차 서류 전형 후 이어진 면접과 작업능력 시험을 거쳐 정식 도서부원이 되다니, 무려 kt 아들이 말이다. 지정 요일에는 자기 쉬는 시간을 반납하여 봉사도 하고, 다양한 책을 가까이 하며 살고 있는 아들이 참 고맙고 기특, 대견하다.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로 자라길 기도해온 엄마의 바람을 타고 아이들은 순항 중다. 첫 장을 여는 기대감과 마지막 장을 덮는 완독의 뿌듯함과 함께 우리 아이들은 오늘도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을 것이다. 날마다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는 그들을 생각하니 가슴 벅차다.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책과 음악의 그 가치가 부디 언젠가는 아이들의 가슴에 잘 가닿길 기도한다. 지금이야 엄마 뜻대로 이런 삶에 스며들었다지만 어느 날엔가 책과 음악이라는 엄마의 유산이 꽤 괜찮은 유산이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

지난주, 아들과 우연히 같은 책을 빌려온 날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는데..... 운명처럼 이끌려 같은 책을 빌려온, 그날의 반가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시립도서관에서, 아들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왔던 ‘고요한 우연’.


정말이지 고요한 우연이라며, 서로를 마주 보고 환하게 웃은 그날의 기억도 한동안은 독서의 동력이 될 것 같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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