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난중일기 08화

엄마의 다정,

by 세일러 문
이 녀석들은 지네야 뭐야, 슬리퍼들은 왜 이리 죄다 꺼내어 쓴담.
다음 사람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구먼.
쓴소리를 해 말어?
습관성 잔소리 폭격기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참자.
아침시간은 이해해 줘야지.


매일마다 인내심 테스트는 이어진다. 사춘기 호르몬이 스멀스멀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사십춘기의 호르몬도 스머r 고개를 들어 올리려는 것을, 지금은 때가 아니라며 id를 짓누른다. 평화주의자는 가정의 평화와 더불어 세계 평화를 기도하지만 때때로 전쟁은 기어이 오고야 만다. 아직까지는 이성으로 컨트롤이 가능해 다행이지 곧 이성을 잃고 폭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어 항시 조심하고 있다. 전쟁의 서막이 부디 한 쪽이라도 이성적인 통제가 가능한 시기에 차례로 열리길 바라며. 오늘은 엄마가 이성의 끈을 잘 붙들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 참아내기 퀘스트를 묵묵히 수행한다. 아니 정확히 말해, 묵묵히 정리하고 생각해 볼 여지는 갖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첨언은 잊지 않는다.


아침 시간엔 다들 정신없지? 엄마가 매일같이 너희들이 벗어던진 슬리퍼를 정리하고 있어. 잔소리를 할까 하다가, 너희도 바쁘게 사는 걸 알아서 이 정도는 엄마가 해주자, 하고 매번 정리하고 있으니, 알아는 둬. :) 좋은 하루 보내자~



호르몬의 노예들이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말대답과 부라림이 나올 기미를 문득문득 보인다. 불혹의 산을 넘자 거뭇거뭇 존재를 드러내는 눈가의 기미만큼이나 반갑지 않은 이 기미들. 몇 번이나 같을 말을 반복해야 움직이는, 어릴 적엔 잘하던 양치를 비롯하여 제 몸 돌보기도 대애충하는, 오로지 마이 웨이인 십 대 둘을 보니 한 숨이 나온다. 그럴 때마다 스르륵 놓치려는 정신줄을 단디 잡고 내리는 셀프 처방, 추억소환.



엄마에게도 너희가 엄마 생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지.


나의 존재가 아이들 생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손을 잡고 걷다가도 "엄마~." 다정히 부르며 얼굴을 들어 바라보던 아이의 맑은 눈망울엔 깊은 신뢰와 애정이 묻어났다. 허리춤만큼 자란 아이의 고개가 혹여 아파올까 쪼그려 앉아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며 "응?" 대답했던 순간, 나의 눈도 분명 맑고 반짝였을 테지, 인자한 미소는 덤이고. 그저 아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동적이었던 그 시절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가 버렸는지,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 세월도 참 급했나 싶다.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사랑이 마려워, 밥을 먹다가도, 변기에 앉아서도, 잘 밤에 누워 조잘조잘 떠들다가도 "엄마, 사랑해요." 사랑을 고백했더랬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눈코입에 마구마구 사랑이 써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마음을 꺼내어 보이고 싶어 소복하게 내려앉은 운동장 눈 위에도 사랑을 고백했던 시절, 그 가슴 벅차도록 황홀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


아이들은 평생의 효도를 어릴 때 한다니. 그래, 너희의 효도는 그날들로 충분했다. 이제 이 녀석들과 멀어질 일만 남았겠구나 싶어 뭉클한다. 멀리 가는가 싶다가도 엄마의 존재를 수시로 확인하고, 때로는 달려와 와락 안기던 녀석들이 점점 더 큰 세상을 향해 내달린다. 험난한 세상, 아이들도 저마다 잘 헤쳐가며 그리는 꿈을 이루어 가려 부지런히 삶의 내공을 쌓아 가는 중이겠지.


이제 아이들과 멀어질 일만 남은건가 싶어 뭉클한다. 야호


더 큰 세상으로 내딛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응원하는 엄마는 다짐한다. 아이들이 크면서 차차 채워갈 수 있는 부분들은 당분간은 엄마의 다정으로 채워주기로 말이다. 엄마의 다정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이 언젠가 타인에게도 기꺼이 다정을 베푸는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리차를 끓여 텀블러에 담는다. 아침도 든든하게 챙겨주고, 화장실 정리와 다정한 아침 인사까지 다정한 엄마의 퀘스트를 완수한다. 이어 아이들과 맞는 당연한 오늘과 사소한 아침 일상에 감사하며 가족 모두의 평안한 하루를 기도한다. 아이들이 바빠질수록 아이의 어린 시절과 뒷모습을 바라보는 날이 더 많아질 것 같지만, 괜찮다. 잘 성장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도 퍽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으니.

메멘토모리 & 카르페디엠
오늘도 다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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