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 2.
아름다운 것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나란 사람은 지나가는 구름이나 길가의 작은 풀꽃도 그냥 지나치질 못한다. 예쁜 소품들, 아름다운 풍경, 고운 사람들, 아름다운 마음, 이야기 등등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아름다움들로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아름다움의 끝판왕은 음악일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 어떤 아름다움도 내면의 깊은 곳이 찌르르 울리지 않는다만, 음악은 다르니까.
잘 어우러진 화음, 플랫과 샵의 반음, 장조와 단조의 예상치 못한 전개들로 인해 조화와 부조화가 절묘하게 아름다운 선율을 이루니 가슴 한 구석이 뜨거워지다가 그 뜨거움이 점차 말초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번진다. 가뜩이나 뜨거워진 가슴이 마구 뛰다가 절정에 다다르면 어쩐지 울 것 같은 기분마저 들곤 했다. 진한 감동의 순간과 존재할 영원을 넘나들며 마음 깊이 침투하여 가장 뜨거운 울림을 주는 음악, 이 음악에 대한 낭만은 사는 내내 뜨거웠다.
아이를 품던 순간부터 내 아이가 책과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자라주길 간절히 바랐고, 엄마의 간절한 바람에 보답이라도 하듯 두 아이는 책과 음악에 스며들고 있다. 참으로 감사하고 다행인 일.
90년대에서 요즘 유행하는 최신 가요까지, 간혹 연주곡들도 즐겨 듣는 폭넓은 음악 취향을 부모와 사는 터라 남매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성장했다. 잘 밤엔 품에 아이들을 안고 토닥토닥 토닥여주며 자장가를 불러주었으니,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족히 수십 번을 다녀올 즈음 아이들은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유년 시절을 비롯하여 평생을 이곳저곳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으로 하여 남매는 잠재적 뮤지션으로 자라났다. 특히 아빠의 애창곡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는 차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남 90년대 가요도 흥얼흥얼 따라 부르는 남매, 나는 이들에게서 간지가 좀 흐르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살아보지 못한 그 시대의 감성을, 엄마 아빠의 청춘을, 다 알지 못해도 직감에 의지하여 그 시절 노래와 그 감성들을 조금씩 알아가니, 종종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나의 아이들과 하는 시간여행은 참 즐겁다.
음악은 그 음악을 직접 가지고 놀 때 더 깊이 빠져드는 것 같다. 피아노를 제법 치고 살았고 중학교 3년 동안 CA로 가야금부를 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기에 악기를 하나 더 배웠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은 늘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의 아이들에게 피아노 외의 악기 하나는 평생의 선물로 벗 되게 하리, 마음을 먹게 된 이유가 바로 그 아쉬움에 있었던 것.
큰 아이 햇님이는 피아노 1년의 경험치로 악보를 읽는 능력을 획득하면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얼마 안 되는 정보력으로 일주일에 한 번 바이올린 레슨을 달에 10만 원 하는 곳을 찾아내 실행에 옮겼다. 레슨 선생님이 간혹 바뀌는 경우가 생기긴 했지만 전공이 아닌 취미로 하는 것이니, 꾸준히 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주 1회 바이올린 연주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작은 시간들이 모여 어느 정도 연주 실력도 갖추게 되었고, 햇님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섬세한 감정선과 기쁨을 알아가는 듯하여 기쁜 요즘이다.
물론 그 안에 지지부진한 슬럼프의 시기도 있었지만, 선물이니 강요나 푸념을 흘리지 않도록 잘 참아냈다. 참으로 값비싼 선물이었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진행 중일 매달의 선물임에도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햇님이를 레슨실에 들여보내고 차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요즘은 그리 기다려지는데, 작게 들려오는 아이의 연주를 듣다 보면 잘 가듬어진 아이의 바이올린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뜨거워지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둘째 별님이 또한 입학과 동시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누나와는 다른 악기를 시도하려 오래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나도 여생을 보다 충만하게 살아보겠다며 오랜 꿈인 첼로를 시작했고, 한동안은 아들과 같은 악기를 하는 로망을 꿈꾸며 첼로를 같이 할까? 하는 생각도 했더랬다. 첼로의 무게가 이고 지고 다니기엔 상당했기에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어떤 악기가 좋을지 계속되었던 고민. 그러다 작년, 나의 입단이 쏘아 올린 작은 공으로 운 좋게 교사앙상블의 전공자 선생님들께 별님이가 클라리넷 레슨을 받게 되었다. 본디 피리(리코더) 부는 베짱이였던 데다가 저음을 좋아하는 아들의 음악적 취향도 반영, 오랜 고민과 운때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그리하여 선생님들의 다정한 지도 하에 별님이도 일 년 만에 클라리넷의 맛을 기쁘게 알아가고 있으니 엄마는 그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중이다.
물론 이 일련의 과정들이 매일 순항을 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나태의 욕구와 싸우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싶은 별님이가 투정을 부렸더랬다. 선생님의 일정과 아이의 학원스케쥴로 인해 토요일 오전에 레슨을 받고 있고, 가뜩이나 엄마 아빠를 따라 일찍이 등교하는 통에 아침잠이 부족한 별님이가 토요일 아침잠도 클라리넷 레슨에 반납해야 했던 터라 별님이가 볼멘소리를 할만했다.
"별님이 그러면, 악기 그만둘까? 엄마가 전부터 얘기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의 선물이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그럼 엄마도 땡큐지. 레슨비도 아껴. 데려다주고 데려 오고 하는 수고도 아껴. 근데 그건 알아둬~ 악기를 연주하며 느끼는 행복감도 못 느끼게 되고, 나중에 너가 어른이 돼서 후회할 수 있어. 성인이 되어 악기를 배우려면 그만큼 시간도 절약, 돈도 절약해야 해. 배우는 시간은 지금보다 더 걸릴 거고. 잘 생각해 봐~."
계산이 빠른 둘째는 벌떡 일어나 레슨 받으러 갈 준비를 마친다. 나는 여직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리드로 부는 클라리넷, 별님이는 어려서 그런지 짧은 시간 안에 삑삑 닭을 잡는 횟수도 줄고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눈을 감고 아이와 선생님의 합주 소리를 듣고 있다. 멋진 공연장에서 음악가의 연주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곤 한다. 물론 전공자 선생님의 훌륭한 연주를 바탕으로 들리는 아이의 연주 소리는 아주 희미하지만, 도치맘의 낮은 기대치는 아이의 연주를 항시 과대평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레슨을 받고 나오는 아이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다. 그래, 그것이 음악의 힘이다. 너를 지켜주고, 너를 행복하게 해 줄 평생의 친구가 바로 음악이기도 할 것이란다. 차문을 여는 아이를 반가이 맞으며 마중곡을 플레이하니 익숙한 세기말의 발라드 전주가 흐른다. 이내 들려오는 감미로운 목소리.
"오늘 하루 어땠나요? 괜찮았나요?"
이제는 세월이 흘러 빛이 바랬지만 추억을 입고 있는 노래, Day by day. 그 시절의 충만한 필로 둘은 떼창을 부른다. 우리식의 하교 인사를 마치고, 이어 다음곡 옥상달빛의 '수고했어, 오늘도'를 부르는 동안 차는 집에 도착하니, 나름 분주하고 피곤한 하루였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였다며 몰랑몰랑한 감성으로 귀가하는 늦은 오후... 엄마의 성실한 음악 선물은 오늘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