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일이다. 아이의 카톡 프로필 디데이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두근반, 세근반 엄마의 마음도 떨렸다. 주말부터 딸아이와 쉬엄쉬엄 싼 가방을 최종 점검한다. 잠옷과 양말, 이튿날 입을 옷을 큰 파우치에 넣고, 세면도구를 지퍼백에 담아 옷 파우치와 같이 배낭에 넣는다. 지갑과 휴대폰을 넣을 힙쌕도 아이 허리 사이즈에 맞도록 허리끈을 조정하고 작은 물티슈도 하나 넣는다.
친구들과 떠나는 첫 수학여행을 한 달 전부터 아이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 험한 세상에 두 아이를 내놓으며 덤으로 거대한 쫄보력을 함께 잉태한 엄마의 마음은 싱숭생숭하다. 웃으며 보내주어야 하는 이런 타이밍에 요녀석은 꼭 눈치 없이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햇님, 안 갔으면 좋겠어.....
자기 전 잠자리에 누워 아이를 가만 바라보다 얼굴에 붙은 머리칼을 떼어주며 말한다.한때 서른 명을 웃도는 십 대 아이들과 경주로, 공주로 수학여행을 해마다 다녔던 전직교사도 자기 아이 앞에서는 이런 어리광을 부린다. 하필이면 주말밤 엠비씨 잔혹범죄시리즈를 보았다는 궁색한 첨언을 해두지만, 그냥 해본 말치고는 사심이 조금 들어있는 어리광이다.
엄마~ 과잉보호에요. 꺄, 수학여행 재밌겠다. 히히월월
아이는 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족보다 친구가 좋을 나이이지 않은가. 그리고 무려 꿈과 환상의 나라 롯데월드와 서울스카이를 포함한 서울나들이 코스라니. 친구들과 1박 2일을 보내며 야무지게 체험도 하고, 짬이 나는 시간에 지락이(요즘 금요일 밤 8시 40분 티비엔 지구오락실의 여성 멤버들을 칭한다.)들처럼 영지타임을 비롯한 게임들을 할 생각으로 아이는 들떠 있다. 그래, 그러니까 아이이지. 너는 즐겁기만 해라. 엄마가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응원할게. 음소거로 마음을 다스린다.
분리불안은 딱히 아이가 아닌 엄마가 느끼고 있다. 어른이 되는 동안 수많은 참사를 목도했기에 많은 걱정들을 떠안고 살기도 한다. 그저 남들보다 얇은 귀와 출렁이는 마음을 가져 피해자들의 고통에 더 경청하고 감정이입하게 된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얼마 전 김초롱 님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책을 읽고, 어쩌면 나 역시도 세월호 사건 당시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사람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배가 무섭고, 여행도 무섭고, 세상도 무섭다. 특히 요즘처럼 가족 여행이 흔해진 시절에 수학여행은 아예 안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아이들 기준 이기적인 쫄보만랩의 엄마에게 디데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사는 시간도 즐거워 마음이 편안한 시절이다. 주말보다 평일이 편하기도 하고, 내 인생 사는 재미로 아이들이 독립할 시기가 오더라도 빈 둥지 증후군은 못 느끼고 지나갈 것 같다는 얘기도 종종 한다. 유난하게 건강식을 해먹이고 0교시부터 12교시에 버금가는 놀이들을 하며 아이들과 살 부비던 독박육아 풀휴직 6년의 세월이면 충분했다고. 복직 후 아이 둘을 데리고 학교를 다녀 모두가 하교하고 난 시간에도 집에 가질 않는 아이 둘이 내 교실에 있었기에 충분했다고. 그렇게 가까이에서 붙어 지낸 시절을 통과하고 나니, 이제는 내 삶을 좀 더 잘 살아봐야지 생각이 들었더랬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도 너무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너무 많았다. 보고 싶은 사람도, 맛있는 것도 너무 많은데 내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가 유한한 것이 유일한 탈이라며 ... 허허 웃던 찰나, '수학여행'이라는 이벤트에 잠들어 있던 쫄보력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버렸다. 너무도 당황스럽게도 반갑지 않은 그 녀석이 말이다. 역시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한 치 앞도 모를 인생길이여......
아이는 잘 성장하고 있다. 엄마의 과잉보호를 짚어 낄낄댈 만큼. 이제는엄마가 참어른으로 성장할 일만 남은 것 같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것을 기억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밤. 씩씩한 엄마, 괜찮은 어른이 되어야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아이의 앞날을 기도해 줘야지.아이는 엄마의 기도와 응원을 먹고 날로 날로 자랄 것이다. 부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앞으로도 안전하기를, 때때로 모진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내 아이가 잘 견뎌낼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해 주기를 기도하며 주섬주섬 짐을 싸는 밤이다.
*연재를 시작했을 그즈음의 날들은 하루하루가 전쟁처럼 느껴졌습니다. 연재를 하는 동안 두 계절이 지났고, 쓰는 이로서 성실 발행의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있음에 늘 무거운 마음이 한 켠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스럽게 저희 가족은 조금씩 성장하고 성숙하여 마침내 휴전을 맞이합니다. 종전이라 단언하지 않고 또 혹시 찾아올지 모르는 그날의 여지를 남겨 두지만, 이제는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날들을 맞이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 희망을 품고 연재를 마치며, 함께 해주시어 감사했습니다. : )♡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