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울릉도, 깔쌈하더라

2박 3일 울릉도 여행, 첫날의 기록

by 세일러 문

매해 아빠와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간다. 올해는 벼르고 별러 울릉도다. 여행에 대한 탐이 없는 아빠는 그래도 울릉도는 평생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 말씀하곤 하셨다. 직하고 성실한 노동으로 땀 흘려 농사를 짓고 손주들 소식 듣는 낙으로 사시는 그 마음을 알기에 아이들 현장 체험 학습을 신청하여 날 좋은 5월, 함께 여행을 떠났다.


가족과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은 처음인지라, 혹여 뱃멀미로 고생들은 하지 않을지...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의 총책임자로 이것저것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후훗 이번 여행은 믿는 구석 덕분에 한결 가벼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멀미약과 여행사 패키지, 그렇다. 이번 여행의 든든한 믿는 구석은 키미테와 파란투어다.



강릉항에서 7시 배를 타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하여 6시에 안목항에 도착했다. 아이들도 자신들의 최애인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여행인 데다가 생애 첫 현장 체험 학습을 써보는 것에 신이 나 재잘재잘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3대가 함께 하는 여행은 살뜰히 아이들을 챙겨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셔 모처럼 엄마인 내가 편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엄마인 동시에 딸이고, 딸인 동시에 네 사람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유일한 사람임에 은근 긴장되는 부분도 있다.



그런 긴장감 + 아침으로 대신할 김밥을 야무지게 말아 왔던 터라 배에 오르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김밥을 까먹고 아이스크림 후식까지 야무지게 들고 막 잠이 들었댔다. 꿀렁꿀렁 동해를 가로질러 울릉도를 향하는 배 안에 좌손자 우손녀 나란히 앉아 아빠는 어쩜 그리 아이들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쓰다듬시는지... 사랑은 대를 거듭할수록 더 깊어지고 진해지는구나, 싶다. 자라면서도 내게 늘 다정한 아빠였지만, 지천명과 이순을 지나 고희를 막 넘은 할아버지가 되니 살아오신 세월만큼 둥글어지셔 다다다정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나는 만큼 다정하고 따뜻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아마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시간 정도를 가니 보이는 섬. 날도 좋고, 멀리 보이는 자연 그대로의 섬 모습에 여행의 기대감이 폭발했다. 두근두근. 세 시간 반의 항해로 드디어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예약해 둔 파란투어 여행사과장님께서 반가이 맞아주셨고, 준비된 버스에 올라타 첫 일정인 독도투어를 위해 도동항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둘째 날, 독도투어가 계획되어 있었는데 아쉽게도 둘째 날의 비 예보로 현지 기상상황에 따라 여행일정을 조율해 주신 여행사 과장님이 아주 베테랑 같고 믿음직스러웠다. 또한 기사님이 들려주시는 울릉도에 대한 설명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여 맛깔으니, 패키지여행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기사님의 주옥같은 입담을 들으며 작고 고요한 어촌 마을의 경치를 눈에 담았다. 어느새 도동항에 도착, 산채비빔밥을 먹으러 음식점에 들어갔다. 살짝 결정장애가 있는 나님은 둘째 날 저녁을 제외한 5식을 포함한 여행패키지에 오른 것이 얼마나 든든했는지, 그저 가라는 곳에 가고 먹으라는 것을 먹는 간만의 타의적인 삶이 아늑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우리의 삶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으로 때론 그로 인해 얼마나 피로해지는가, 그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살짝 얹어지자 이 여행이 더 즐겁게 느껴졌다.


우리, 독도에는 입도할 수 있을까

하늘뿐만 아니라 바람과 파도도 도와야 입도가 가능한 독도, 오죽하면 삼 대에 덕을 쌓아야 갈 수 있다 하는 말이 있단다. 여행사를 통해 미리 구매한 태극기를 받아 들고 독도땅을 직접 밟아 태극기를 휘날릴 준비를 하는 남매의 뒷모습은 사뭇 비장했다. 하늘빛이 좋아 입도에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잠깐 설렜지만, 울릉도로 올 때보다 더 꿀렁꿀렁한 승선감에 이내 불안해졌다. 이어 승선한 독도행 크루즈는 동해상에 발효된 풍랑주의보로 출항 15분 만에 회항해야 했고, 아쉽지만 우리 삼 대는 덕을 더 쌓아 다시 오자며 다음을 기약했다.



패키지 버스를 기다리며 해안산책로를 걸었다. 강릉 바다의 느낌과는 또 다른 울릉도의 바다. 수심이 깊어 비릿한 바다 냄새도 나지 않고, 물빛도 짙지만 맑다. 세월의 풍파를 맞아 온 절벽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함께 하고 있는 나의 가족들 덕에 마음도 므흣했다. 할아버지 허리춤에 간신히 차던 남매는 언제 이리 성장하여 할아버지 어깨만큼 자랐는지. 또 어느 만큼의 세월 후에는 아이들보다 작아질 아빠의 마른 몸을 바라보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힘도 없거니와, 이제는 인간의 생애가 한 계절이 가면 한 계절이 오는 것처럼, 너무도 당연스럽지만 조금은 슬프고도 아름답게 스르륵 지나 것만 같다.


곧 반가운 9806 버스를 타고 섬일주를 시작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며 만났던 절경들은 살면서 문득문득 그리울 것 같다. 거북바위, 얼굴바위, 사자바위, 버섯바위, 곰바위, 코끼리바위 자체로도 멋지고 웅장했으며, 그것들을 설명해 주시는 기사님의 입담 덕분에 보는 재미가 배가되었다. 이제 쪼매 가면 사자가 한 마리 나올 거거든요, 보인다 보인다!! 어디? 웅성웅성. 아닌데~ 아직 아닐 텐데~ 각도도 아직이고, 잠깐 차를 요렇게 돌려줄 테니까 잘 보셔야 해요. 자자, 보인다 보인다. 사자를 만나는 찰나의 순간을 놓칠 새랴 버스 안의 서른 남짓한 사람들이 초집중력을 발휘했고, 그렇게 우리는 기사님의 안내에 따라 울릉도의 사자와 곰, 거북이, 코끼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고대했던 나리분지에 도착. 교과서에서만 봐왔던 나리분지는 비가 곧 쏟아질 듯 습기를 가득 머금은 물안개의 신비로운 아우라를 휘감고 있었다. 정차하여 한 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주시면서 기사님께서는 씨껍데기술과 삼나물을 추천해 주셨지만, 연로하신 부모님 앞에서 고주망태가 될 수 없었기에 우리는 옆길로 샜다. 나리분지의 예쁜 카페에서 삼 대는 사는 얘기를 나누며 운치 한 스푼을 얹은 따뜻한 커피와 울릉도 마들렌을 먹었다. 여행지의 낯섦과 신비로운 풍경, 수년을 함께하며 살아온 시간, 서로에 대한 애정이 뒤섞인 달콤 구수한 맛이었다.


나리분지의 예쁜 카페


섬 투어 마지막 코스인 삼선암. 울릉도 해상 비경 중 으뜸으로 꼽는 만큼 삼선암은 아름다웠고, 기사님께서 들려주신 삼선암의 전설이 재미있어 기억에 남았다. 울릉도의 절경을 너무 좋아한 세 선녀가 울릉도 바다에 내려와 목욕도 하고 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막내 선녀가 자꾸 언니들에게 놀러 가자고 꼬드기고, 하늘에 다시 올라가야 하는 시간에도 늑장을 부리자 아버지인 옥황상제의 노여움은 커져만 갔다. 결국 세 선녀를 바위로 만들어 버리셨는데, 나란히 서 있는 두 바위가 언니 둘이고 멀찍이 서 있는 작은 바위가 막내 선녀 라 한다. 막내에 대한 옥황상제의 노여움이 가장 깊었던 이유로 막내 선녀 바위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아 오래도록 홀로 외로이 서 있다는 전설. 언제고 먼 훗날, 함께 할 작은 아이들에게도 이야기 할머니처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였다.



섬사람들의 유머와 지혜, 애환을 조금씩 알 수 있었던 첫날의 여정이었다. 울릉도의 아름다운 풍경만큼, 살짝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다정한 이 섬사람들도 그리워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올수록 비구름이 다가와 다음 날 온종일 강풍 & 비예보의 불안이 엄습했지만, 이것 또한 추억이라며 우천으로 인한 일정 취소를 대비해 울릉화투를 샀다. 그렇게 깔쌈한 울릉 화투로 얼룩진 둘째 날이 비구름과 함께 우리에게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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