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 반란법, 찰리 커크

by 황혜경

지난 주말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워싱턴 기념탑 방문 날이었다. 아이가 DC에 처음 간 날 높게 솟아있는 워싱턴 기념탑을 보더니 올라가보고 싶다고 해서 줄 서서 기다리면 올라갈 수 있을 줄 알고 찾아갔다. 하지만 허사였다. 미리 예약을 하거나 아니면 아침 8시 반부터 나눠주는 현장 발권을 해야하는데, 나이 지긋하신 visitor center 직원이 이미 아침 일찍 동났다고 했다. 예약을 알아보니 방문 예정일자 한 달 전 오전 10시에 예매창이 열린단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오전 10시 알람을 맞춰놓고 정각에 접속해도 티켓을 예매할 수가 없었다. 예약창이 아예 안 열리거나 아니면 이미 마감됐다거나. 수시로 예약 사이트를 들락날락해서 겨우 얻은 주말 티켓이 바로 지난 주말 오전 11시 티켓이었다.


과거 어학연수 시절부터 따지면 워싱턴 기념탑은 오며 가며 수도 없이 많이 봤다. 하지만 한 번도 전망대에 올라갈 생각은 안 했는데 아이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올라가보는구나 싶어서 방문 당일날은 아이보다 내가 더 신이 났더랬다. DC는 사설 주차장 주차료가 너무 비싸서 2시간짜리 스트릿 파킹에 성공하려면 예상 시간보다 30분 정도는 일찍 집에서 나서야 했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원하는 곳 주변에 차를 세우려면 몇 바퀴를 빙빙 돌아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는 길도 막히지 않고 운 좋게 워싱턴 기념탑 부근에 주차 자리도 금방 생겨서 기분 좋게 기념탑으로 향했다. 날씨도 쾌청하니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DC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아뿔싸! 아침 9시부터 열려있어야 할, 30분 단위로 방문객들을 받아 소지품 검사를 해야할 입구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셧다운이었다.


싸한 기운이 뒷목을 스쳤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디 물어볼만한, 국립공원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타주에서 온 듯한 단체 관광객 무리가 가이드 설명을 듣고 있길래 주변을 얼쩡거리다 잠깐 틈을 노려 가이드에게 상황을 물었다. 연방정부 셧다운때문에 기념탐도 문을 닫은 게 맞다고 했다. 하필 엊그제부터 문을 닫았단다.


뉴스에서는 정부 셧다운 관련 소식이 계속 나오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당장 다다음 주로 예약해둔 국회의사당과 의회도서관 투어도 혹시나 싶어 예약 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셧다운 때문에 모두 취소됐다는 공지가 떴다. 미국에서 가장 최근에 있었던 셧다운은 지난 2018년부터 2019년 사이였고(트럼프 1기) 35일간 이어졌다고 한다. 이번에는 얼마나 길어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몇 달 갈 수도 있다고도 했다. 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의 갈등의 골이 그만큼 너무나 깊다는 거다.


한국은 예산안이 시한 안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도 정부 기관이 문을 닫거나 공무원이 일을 안 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이 나라는 공무원이 출근을 안 한다. 그야말로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나와서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중에 셧다운이 풀리면 근무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밀린 월급은 받을 수 있다는데 그것도 약간 직급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한 상원의원실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지인은 셧다운 시점부터 출근을 못하고 있는데 자신은 나중에 셧다운이 풀려도 월급을 받지 못한다며 속상해 했다. 상원의원실 직원 중에는 자신처럼 출근도 못하고 임금도 못 받는 인턴같은 직급과 출근은 해도 되지만 일단 임금은 못 받고 나중에 보전받을 수 있는 직급이 있다고 했다. 지인은 졸지에 백수가 됐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셧다운이 풀리면 복직은 가능해서 일단 미시간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가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셧다운 상황에도 아이들 학교는 정상 운영중이다. 학교는 주로 주정부와 주교육청에서 예산을 담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반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불편으로는 주정부가 관여하는 국립공원이나 박물관이 문을 닫는 것 그리고 여권 발급이라든지 사회 복지 서비스 수급 등 차질이 빚어지는 것 정도인 듯하다. 연방 정부가 국립공원 입장료를 통해 벌어들이는 하루 수익금만 해도 수백만 달러라는데 어휴, 관계자들 입장에서는 셧다운이 하루하루 길어질수록 입안이 바짝바짝 탈 것 같다. 이곳은 이제 가을 시작이라 단풍 구경오는 관광객들로 대목일텐데 말이다. 아니, 밀린 월급도 나중에 다 나오겠다 어쩌면 none of my busisness라며 느긋하게 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8년만에 재연된 이번 셧다운의 표면적인 원인은 소위 '오바마 케어' 보조금 연장과 메디케이드 삭감 문제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지만 이면에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깊어지고 있는 양당 간의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DC 소재 대학교 정치 관련 연구진들과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어서 물어봤더니 지금처럼 정치 양극화가 심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예전에는 의회나 청문회에서 양당 인사가 사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하더라도 끝나고 나면 서로 악수하고 웃고 농담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버린단다. 예전에는 텍사스 의원도, 메사추세츠 의원도 가족들을 DC로 데려와 살면서 당이 달라도 가족간의 교류도 하며 지냈지만 지금은 의원이 되어도 가족들을 DC로 데려오지도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찰리 커크의 죽음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공화당 진영에서는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과 비교하며 하나의 역사적 변곡점처럼 보고 있는데 실제로 그런 것인지 묻자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찰리 커크와 마찬가지로 불과 몇달 전 미네소타주 하원의원 부부가 정치적 암살을 당했는데 그때 트럼프 대통령은 대체 무엇을 했느냐며 비판했다. 우리나라도 정치 양극화가 더이상 벌어지기 힘들만큼 극에 달했지만 미국도 그에 못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그 혐오를 먹고 사는 정치.


지금 시카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반란법' 발동 카드까지 꺼내들며 군대 투입을 강행하려고 해 긴장감이 팽팽한 것 같다. LA와 DC에 이어 세번째 군 투입인데, 모두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대도시라는 특징이 있다. 이미 DC에서는 시내 곳곳에서 총을 들고 군복을 입은 군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히 소심해지고 긴장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같은 일반인들의 일상이 지장을 받거나 하는 건 없다. 위화감이 좀 들긴 하지만 한편으론 안전한 느낌도 든달까? 특히 버지니아에 살고 DC에는 가끔 가는 이방인 입장에서는 더 그렇다. DC시내에서 쫓겨난 노숙인들이 대거 버지니아로 넘어왔는지 원래 주요 사거리에 한두 명 있던 노숙인들이 서너 명으로 늘어났다는 것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은 내게 괜찮냐며 안부를 묻는데, 마치 남한이 북한의 핵 위협과 잇단 미사일 시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DC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도 셧다운은 좀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 나에게 이 지역 가을을 만끽할 기회는 (아마도 남은 평생) 이번밖에 없는데 셧다운으로 국립공원 방문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 아쉽다. 비싼 대학원 등록금과 DC 생활비에 허덕이는 나의 지인도 얼른 인턴 업무에 복귀해 월급을 받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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