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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지 Aug 23. 2024

고양이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유튜브와 인스타에 나오지 않는 고양이 집사의 삶

 아래는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기 전에 저장해둔 글이다. 나중에 다시 살펴보니 원했던 톤이 아니라서 발행을 미루게 됐다. 그래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였고, 최근에 '미야옹철의 냥냥펀치' 유튜브에 '수의사 속 터지는 쇼츠 고양이의 진실'이라는 영상이 올라왔기에 문득 이 글을 묻혀놓을 수는 없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문구 수정 없이 그대로 발행한다. 






 고양이를 키운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간다.


 항상 고양이를 곁에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은 있었던, '고양이 덕후'였다. 그러나 막상 키우려니까 고양이는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는 말들이 많아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다. 꼭 그럴 때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고양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영상이 뜬다. 영상 속의 고양이들은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컵을 깨거나, 크리스마스 트리를 넘어뜨리는 등의 사고를 친다.(이보다 더 많은 사건사고가 나옵니다.) 그걸 보고 나면 잠재적 집사들은 잔뜩 위축되어 막연히 동경하던 고양이와의 생활을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종종 손에 닿지 않는 저 하늘의 구름이나 별을 보는 것처럼 낭만을 되살려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번 생은 틀렸어,'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길로 접어들기 일쑤다.


 세상 일이  대부분 그렇듯이, 고양이 집사로서의 삶은 내가 원할 때 시작되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천재지변처럼 '들이닥치는' 것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늘 길을 가다가도 만날 수 있는 새끼 고양이에 대해 대비해둬야 하지 않을까. 이게 또 쉽지 않은 점이, 대비한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새끼 고양이란. 좀더 냉혹한 진실을 말하자면, 어느 곳 하나 다치지 않은 멀쩡한 고양이가 길 한가운데 뚝 떨어져 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니 고양이를 맞닥뜨릴 확률과, 영 성치 않은 고양이를 데려와 제대로 치료할 수 있는 확률을 곱해야 한다. 더더욱 쉽지 않다!


 불가능하다는 뉘앙스로 말하기는 했지만, 그런 희박한 확률을 뚫고 만난 고양이가 바로 우리집 '랑이'다. 랑이가 어떻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신묘한 우연과 행운의 조합이다. 아마 수천 수백 개의 평행우주 중에서도 랑이와 함께 하는 우주는 이것 하나 뿐이 아닐까. 어떤 우주에서는 랑이가 우리를 만나기 전에 죽었을지도 모르고, 또 다른 데서는 치료가 잘 되지 않아 고통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우주에서는, 안타깝게도 내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고양이 집사라는 부류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시도 때도 없이 고양이를 자랑함'. 나도 여러 방식으로 고양이를 자랑해왔다.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여자가 주변에 있을 때 은근슬쩍 내가 '고양이 보유자'라는 정보를 흘리는 것이 시작이다.(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나도 20대에서 30대 초반을 지나온 여자임을 밝힌다.) 그 밖에는 채팅방에 고양이 사진을 뿌리는가 하면, 블로그를 쓰거나 유튜브를 개설하기도 했었다. 그런 식으로 고양이에 대한 상념과 통찰(!)이 무르익었고, 이제는 사진과 영상이 아닌 텍스트 기반의 이야기를 펼치고 싶다는 소망에까지 이르렀다.


 고양이 자랑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면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다지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인터넷에서는 고양이가 밈의 왕이고, 도파민의 공급처일지 모르지만 그런 열광은 일종의 착시현상에 가깝다. 뭐랄까, 인터넷 헤비유저들이 어떤 성향인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단언컨대, 마이웨이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귀여움의 미학까지 챙기고 싶은 당신이라면, 고양이만큼 대상화하기에 좋은 동물은 없다!


대표적인 고양이 밈. 표정이 다양하고, 하루종일 놀고 먹는다.




 나도 집사 '워너비'였을 때는 웃으면서 그런 밈들을 검색했다. 그런데 신분 상승(?)이 있을 뒤에 봤더니 이게 뭐지, 이 낯선 캐릭터들은, 하고 새삼 심각해져버렸다. 슬슬 '고양이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냥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고양이한테 덧씌운 거 아니냐! 하고 살짝 억울한 감정마저 든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는 종일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집사를 약올리는 생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터넷 밖에서의 고양이 취급이 좋다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왜 20대에서 30대 초반 여자들에게만 고양이 얘기를 꺼냈겠는가. 그 외의 절대다수에게는 고양이는 무관심 내지 혐오의 대상일 가능성이 높다. 내 친구들은 너그러이 '남의 고양이' 자랑을 들어주고 박자도 맞춰주지만, 예전에 강아지를 키우던 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반응의 격차를 느끼곤 한다. 고양이에 대한 우리의 상식과 감상 수준은 여전히 인터넷 밈 안에 머무르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길고양이를 자주 접한 사람들일 텐데, 대다수가 고양이를 '박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얼마 전에도 누군가한테서 길고양이를 내쫓았다는 말, 누가 고양이 밥을 줬길래 싹 버렸다는 얘기를 들었다. 전부 개인의 의견이므로 존중은 하지만, 굳이 수고를 들여가며 버리는 행위를 할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하다.


 쇼츠와 릴스에 나오는 고양이들은 말하기도 입 아프다.(아니 타자 치기에도 손 아프다?) 10초에서 30초 짜리 영상에 나오는 고양이들은 비(非)집사들의 환상을 더욱 부채질한다. 너무 너무 순해서 집사가 뱃살을 만져도 애교를 부리는 '개냥이'. 아니면 일부러 괴롭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온갖 사고를 다 치는 악동(이걸 부르는 신조어도 있기는 한데, 비속어가 포함되어 있다.), 그 두 가지 세계관이 압도적인 '좋아요'를 받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릴스에 뜨는 고양이 훈련법이나 장난감 영상에 계속 혹한다. 그래서 틈날 때마다 시도해보지만 아직까지 성공률은 0%다. 뒤늦게 후회한다. 고양이는 제각기 달랐지, 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어마어마한 오해가 있고 그걸 바로잡겠다는 식의 엄포를 놓는 건 아니다. 그냥 어느 날 당신이 연약한 고양이 한 마리를 마주칠 수도 있고, 그 고양이는 당신이 인터넷에서 봐왔거나 주변에서 귀띔해주던 그런 고양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자주 사회적, 문화적인 영향을 가득 머금은 반사경을 통해 세상을 보는 듯하다. 반사경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면 좀더 세심한 접근이 좋지 않을까.


 겨우 한 마리를 2년 키웠으면서 고양이에 대해 운운할 자격이 있나 싶긴 하다. 그냥 팔불출 집사의 구구절절한 고양이 자랑일지도 모르겠다.(이제 약간의 개똥철학을 곁들인.) 아니면 2년 전의 초보 집사였던 나를 향해 날리는 충고일지도. 고양이는 단지 고양이일 뿐이다. 남들이 말하는 고양이도, 내 환상 속의 고양이도 아니다. 겪어보면 현실의 진짜 고양이가 백 배는 더 좋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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