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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지 Aug 11. 2024

나는야 자전거 라이더

운동이라 하기엔 뭣하지만

 요즘 주변에서는 운동을 많이 한다. 슬렁슬렁 하는 게 아니라 헬스는 기본으로, 다른 종목의 운동 한두 개를 더 한다. 상당히 본격적이다. 대체 다들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오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일 년 가까이 운동을 쉬고 있다. 전에도 대단한 운동을 한 건 아니지만, 꾸준히 신체 기능 향상을 위해 노력했었다. 체력이 부족하던 때에는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고 따라했고, 유산소가 필요하다 싶으면 조깅을 했다. 그밖에 필라테스 등으로 조금씩 자신감을 얻은 뒤에,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보고자 복싱 체육관에 등록했다.


 왜 하필 복싱이었냐면, 화가 많았던 20대에 꼭 해보고 싶었던 운동이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치고 때리면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릴 것 같았다. 살이 쭉쭉 빠진다는 얘기에 혹하기도 했고.


'좋은 경험'


 결과부터 말하자면 ‘좋은 경험’이었다. 그 뒤로 체육인들에 대한 깊은 경외감을 심장 한 켠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내 한계를 깨닫는 귀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푸쉬업을 할 때 없는 팔근육을 쥐어짜다가 바닥에 고꾸라져 본 사람만이 안다. 남이 보기에는 망신이고 몸개그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다음 세트를 건너뛸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것을. 한계를 뛰어넘은 평행 우주의 나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 것임을.


 복싱 전후로 했던 운동이 또 있는데, 바로 발레였다. 발레는 또 뭐냐, 필라테스를 하다가 번뜩 떠오른 영감에서 출발했다. 당시 필라테스는 체형 교정을 위해 다니고 있었지만 효과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십 년 넘게 거북목과 굽은 어깨로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제대로 발레를 해서 고쳐보자는 생각을 했다. ‘제대로’라 함은, 발레가 아무래도 더 헤리티지가 있으니까 본격적인 느낌으로 잘 해보자는 다짐이었다. 사람의 몸은 나이가 들수록 안으로 말리는 경향이 있는데, 발레는 그런 관성에 반하는 운동이라는 얘기를 들은 영향도 있었다. 일종의 안티 에이징을 위해서랄까. 아무래도 복싱을 할 때는 시시각각으로 에이징이 되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 노선으로 가보기로 했다.


 초보 클래스에 주 1회 수업이었다. 복식장의 지옥훈련에 익숙해진 뒤로 체력 문제는 전혀 없었다. 유연성도 상위권이었다. 가끔 선생님이 등을 오래 누르고 있으면 인대가 늘어나버리는 상상을 하기는 했지만. 바를 잡고 하는 발 동작도 용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음에도 얼추 순서를 익히면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출석 만에 장벽을 만나고 말았다. 내가 지금까지 운동에 별 취미가 없었던 아주 근본적인 이유… 그냥 운동신경이 꽝이었다. 점프를 하래서 했는데 그게 아니라고 했다. 다른 수강생들은 그냥 뛰는 것 같은데 통과였고, 나는 자꾸 재시도를 권유받았다. 여유 있게 스트레칭하던 범생이가 졸지에 반 꼴찌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용기를 내어 뛰었다. 선생님이 다시 시범을 보였다. 뛰었다. 다시, 뛰고, 이번에는 좀 되는 것 같다가, 또다시 원점으로.


 몸을 쓰는 센스라는 게 제로에 가까웠다. 여러 번 쪽팔림을 겪은 후에야 나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와, 진짜 못한다!’


 아무튼 그런 나라도 자신 있는 활동이 하나 있다. 자전거 타기다. 꼬꼬마 때부터 동네를 자전거와 롤러 스케이트로 휘젓고 다녔었다. 좋은 자전거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적당한 것을 구하면 거의 내 몸의 일부처럼 조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핸들 안 잡고 타기에 성공은 해 보지 않았으니, 완벽한 자전거 마스터의 경지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제 나이도 있고, 안전상 안 하는 게 좋겠죠.)


나는야 (어린이용)자전거 라이더~ 도시를 달리는~


 스무 살이 되고나서 십 년 간은 자전거를 안 타다가, 불쑥 이 년 전에 하나 장만했다. 차를 몰아야 하는 나이에 갑자기 자전거를 샀다 하니 주변에서 좀 황당해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별다른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고, 슬슬 책 좀 많이 읽어볼까 싶어서 도서관을 다니는데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 탈것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마침 생일도 다가오고하니 큼직한 바구니가 달린 작은 자전거를 산 것이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 속도를 최대치로 내려고 하기 때문에 장해물이 많은 길에서는 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아예 바퀴를 작은 것으로 골랐다. 처음에는 미니벨로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작았고 어쩐지 유행도 지난 것 같아서 포기했다. 대신 깔끔하고 귀여운 자전거를 인터넷에서 찾아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하고보니까 리뷰에 ‘초등학생 딸이 너무 좋아해요^^’ 같은 말이 대부분이라 좀 머쓱했다. 그래도 배송도 잘 왔고 아직까지 튼튼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도서관까지 자전거를 타다보니 ’한 발짝씩 걷기‘가 너무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출근도, 퇴근도, 외출도 모두 자전거로 하고 있다. 내심 이제는 배달 알바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동네 한정으로) 웬만한 오토바이보다 빨리 도착할 자신이 있는데.


 다만 바퀴는 작긴 작다. 비교해보니 따릉이 기본형보다도 작은 바퀴였다. 어린이용 따릉이와 같은 크기였으니, 과연 내 자전거는 어린이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 자전거를 타고 한강까지 다녀왔으니(왕복 세 시간), 자전거의 능력치를 골수까지 쪽쪽 빨아먹고 있는 셈이다.


 아무래도 자전거를 열성적으로 탄 기억이 이십 년 전이라 그런지, 종종 과거와 비교할 때가 있다. 일단 확실히 예전에 비해 차가 많아졌다. 사람도 많아졌는데 노인 인구의 비중이 꽤 높다. 지나간다고 벨을 울려도 딱히 신경쓰지 않아들 하신다. 그런데 다섯 명 중 한 명은 세월에 따른 노화가 나타나지 않음에도 벨소리에 반응이 없다. 누구냐면 음악을 24시간 내내 즐기는 타입이다.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소리를 못 듣는다는 뜻.) 나도 헤드셋을 사고는 싶은데 가격 대비 마음에 드는 것이 아직 없다. 만약 내가 헤드셋을 끼고, 앞에 걸어가는 사람도 헤드셋을 낀다면 우리 둘다 아무 경적 소리도 못 듣겠지 싶다. 보행자가 우선이니 어떻게든 내가 피해야겠지만.


 그리고 최근에 생긴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라면 전기자전거다. 길 여기저기에 서 있는 걸 보아하니 따릉이처럼 대여료를 내고 쓰는 공유 자전거인 듯하다. 나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충전금액이 다 되면 저절로 뚝 멈춰버리는 시스템일까? 왜 아무데나 서 있는지 그 사정이 궁금하다. 자전거도로 중앙을 묵직하게 가로막고 있는 걸 볼 때면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이 기회를 빌어 생각나는 한 가지를 더 말하자면,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만의 고충이 있다. 종종 쓰레기통과 자전거 바구니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테이크아웃 음료수 같은 것들이 주로 버려져 있었고, 가장 더러웠던 것은 코로나 시절의 일회용 마스크였다. 이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투덜댄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남자들은 껄껄 웃으며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총 두 명이었는데, 그들이 각각의 범인이었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는 아니고, 제발 남의 자전거에다 쓰레기 버리지 마시죠.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전거를 정말 많이 탄다. 자전거도로는 예전에 비하면 잘 정비되어 있고, 공원에는 공기주입기도 있고, 이래저래 수리할 수 있는 가게도 많다. 몇 달 전 홍콩을 다녀왔는데, 언덕처럼 오르막내리막으로 이루어진 도시라 자전거 타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곳에서는 호버바이크가 먼저 대중화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오토바이인가?



덧붙이는 말: 발레가 내 이미지에 어울린다는 말을 몇 번 들었는데 굉장히 솔깃했다. 이 참에 다시 시작해볼까 싶기도 하다. 참고로 복싱은 정말 안 어울린다는 혹평일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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