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로지 Jul 28. 2024

고양이는 기억할 것입니다, 애옹

모기를 잡을 때 주의점

 모기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다.


 밤마다 모기 때문에 두세 차례씩 깨고 있다. 하루이틀이 아니라, 이제는 중간에 깨지 않고 쭉 잔 날이 언제 적인지도 가물가물하다. 계속 쪽잠을 잔 것처럼 개운하지가 않고 매일매일이 피곤하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서 출근하기도 싫고 일하기도 싫고 전화받기도 싫다. 이게 다 모기 때문이다.


 불교 교리 중에 ‘살생을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잘 알다시피 스님들이 채식하는 이유가 바로 이 교리 때문이다. 꼭 이런 얘기가 나오면 누군가가 질문을 던진다.

 “그럼 스님들은 모기도 안 잡나요?”

 질문을 받은 스님이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질문자가 모기 스무 마리가 있는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스스로 답을 깨우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모기를 한 번 발견하면 끝을 봐야지 직성이 풀린다. 위잉, 하고 귓가를 울리는 마찰음이 들리는 순간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안경을 쓴다. 그리고 사방을 샅샅이 뒤진다. 안타깝게도 그 5초에서 10초 정도 되는 시간 사이에 모기는 잘 안 보이는 곳으로 도망가 있기 일쑤다. 무슨 전시상황도 아니고, 자다 일어나서 바로 반격을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준비 과정을 한 단계라도 줄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눈이 나쁜 관계로 안경을 반드시 써야 한다. 전등을 켜는 것은, 뭐, 절대 생략할 수 없다. 깜깜한 밤중에도 모기가 보이는 체질이라면 신인류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슬프게도 이런 ‘모기와의 전쟁’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한 번이라도 일어나려고 하면 눈이 잘 안 떠지는 건 당연하고, 갑작스러운 운동에 놀란 심장이 힘겨워해서 머리까지 피가 잘 안 통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기의 기운이 느껴지는 그 즉시 눈이 번쩍 떠지고, 심장은 힘차게 펌핑을 시작한다. 야근이다, 심장아.


 종종 모기에 물려도 그냥 잔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신기할 따름이다. 누구는 숙직 당번을 선 하룻밤 사이에 열몇 군데나 모기에 물렸다고도 했었다. 평소에 헌혈을 습관적으로 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인내심이다. 나였으면 절대로 용납하지 못했을 상황이다. 차라리 ‘오늘 잠은 다 잤다’ 치고, 밤을 새우더라도 나타나는 족족 모기를 잡았을 것이다. 공간도 한정되어 있으니 잘 됐다. 나는 모기를 발견하면 방문을 닫아 퇴로를 차단한다. “Manners, maketh, man.”이라는 대사를 읊는 콜린 퍼스처럼.


 태어날 때부터 모기 헌터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본디 순하고 반격할 줄 모르는 박애주의자였다. 그러나 작년부터 귓가에서 웨앵, 거리는 소음을 참을 수 없게 되었다. 잠결에 손을 저어서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표시해도, 몇 분 뒤에(몇 시간도 아니고 고작 몇 분 뒤!) 환청인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왜 모기는 꼭 큰 소리를 내서 자기 존재를 알려야 하는 걸까? 아예 몰랐으면 아침까지는 평온하게 잘 수 있었는데.


 요즘은 소리보다 더 거슬리는 게 있다. 나이가 들어서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데, 모기가 물면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렵지도 않다. 물리는 그때부터 따갑고 얼얼하다. 그래서 자연히 잠에서 깬다. 모기 헌터, 출동.


 다행이랄까, 모기 헌터에게는 조수가 있다. 바로 우리 집 고양이 ‘랑이’다. 랑이는 벌레 잡기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러브버그 군단을 해치우며 1+1 대란을 막아내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랑이는 벌레 사냥이라면 자다가도 뛰쳐나온다.


 순서는 이렇다. 모기가 나를 문다. 아, 따가워. 하지만 아직까지는 잠에 취해 있다. 그러나 이 주제 모르는 모기를 귓가 근처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애앵, 애앵.

 “아아악!”

 짜증이 섞인 기합과 함께 일어나 불을 켠다. 안경을 쓴다. 고양이가 달려온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신나는 일이 벌어질까 기대하는 눈빛으로.


진정한 모기 헌터, 랑이



 가끔은 불이 켜짐과 동시에 고양이가 나타날 때도 있다. 스탠드 등을 켜자마자 그 밑에 고양이가 짠, 하고 앉아있던 적도 있었다. 살짝 소름이 돋았다. 내 행동은 고양이한테도 예측당하고 있었구나, 하는 심경이다.


 덕분에 헌터의 밤이 더는 외롭지 않다. 다만 고양이가 모기 잡는 데에는 별 소질이 없다는 씁쓸한 사실이 드러났다. 모기는 한 번 숨으면 잘 움직이지도 않는 데다가, 그다지 격동적이지 않아서인지 고양이의 사냥 센서에 잘 걸리지 않는 모양이다. 대신 랑이는 달밤의 체조를 하는 나를 지켜보며 흥미진진해한다. 뭔가 주객이 전도된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 열 번 중에 한 번쯤? 성공률은 낮지만 고양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 점은 내게 큰 위안을 준다.


 어느 날은 웬일로 모기가 나타나지 않았다. 보통 모기 때문에 깨는 시각은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 그리고 4시에서 5시 사이였다. 따지고 보면 제대로 자는 시간은 한 번에 2~3시간 밖에 안 된다는 것인데, 렘수면 주기로는 어떤지 몰라도 내가 느끼기에 수면의 질이 굉장히 안 좋았다. 단 하루라도 아침까지 쭉 자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따라 느낌이 좋다. 웨앵,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 계속 잔다. zzz...


 “애오옹!”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고양이가 침대맡에 앉아 있다. 고양이는 오늘도 성실히, 야근을 하러 나온 것이다.

 설마 하면서 시간을 확인했더니 새벽 한 시 반이었다. 아, 고양이가 자기 일정표에 모기 잡기 스케줄을 넣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는 게으른 모기 헌터를 보채는 거다. ‘왜 여태 자고 있어, 모기 잡아야지!’ 하면서.


 오랜만에 단잠을 잘 기회를 날려버려 너무 억울했다. 고양이한테 지금은 모기가 없지 않으냐, 내가 너 같이 낮에 잘 수 있는 줄 아냐면서 투덜거렸다. 고양이는 군말 없이 앉아있다가 조용히 가버렸다.


 그러다 네 시에 모기가 윙윙거려 잠에서 깼다. 이번에 고양이는 오지 않았다. 애옹.


작가의 이전글 실패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