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일까
어렸을 때 읽은 책에서 개와 고양이는 서로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사이가 좋지 않다고 했었다. 대표적인 예로, 개는 기분 좋을 때 꼬리를 흔드는데 고양이는 공격 태세를 취할 때 꼬리를 흔든다. 반대로 꼬리를 세우는 행동은 고양이에게는 기분이 좋음을 나타내고, 개의 경우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와 고양이는 서로의 감정을 반대로 해석하니, 자꾸만 소통의 오류가 빚어져 앙숙이 되고 만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굉장히 일리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해 둘은 절대 만나면 안 되는 사이처럼 여겼다. 그런데 더 크고 나서 보니 주변에 개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는 집이 많았다. “개랑 고양이랑 같이 키우면 서로 싸우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잘 지내는데요.” 하는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하긴, 잘 지내지 않았으면 여태 같이 키웠을리가 없다. 다시 생각해보니 개나 고양이나 ’반려동물‘이라고 묶여 불리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은 엄청나게 다른 종이다. 다른 종의 동물끼리 만난다면 서로 말이 안 통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잘 지낸다니 시간이 지나면 어찌저찌 타협점을 찾는 모양이다. 내 주변의 경우를 보면 대체로 고양이가 개를 ‘등한시’한다는 결말이 많았지만.
개는 혀를 내민 채 입을 벌리고 있으면 웃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 눈이라도 감고 있으면 사람의 웃는 얼굴과 꽤나 비슷하다. 진짜 웃음인지는 알 수 없다. 편안한 표정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웃는다’고 하기에는 너무 인간 중심적인 해석 같다. 개가 웃어야 할 이유는 아무 데도 없다. 사람이라고 해서 웃음이 전부 긍정적인 의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개의 긍정적인 표정은 우리가 알아차리기 쉬운 면이 있다.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개를 더 친근하게 여긴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반면 고양이는 웃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꼬리나 몸짓만 봐도 대충 알 수 있다. 호불호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고양이의 ‘존재’ 그 자체다. 비위에 맞지 않으면 고양이는 바로 자리를 떠버린다. 여담이지만 사람도 싫은 자리에서는 훌쩍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웃지 않는 걸 떠나서, 기분이 좋을 수록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물론 인간의 편협한 시각으로 볼 때 험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요리보고 조리봐도 그 외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다. 고양이 앞에서 신나게 재롱을 부리고 있으면, 고양이가 날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만족감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보면 시큰둥하고 어딘가 적개심까지 느껴져서 등골이 서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날 못마땅해하는 임원들 앞에서 월말평가를 받는 아이돌 연습생이 된 기분이 된다.
아무튼 행복한 표정이라고 하니, 애써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흔히들 말하는 고양이의 귀여운 표정은 동공을 크게 열고 앞발을 턱밑에 모은 자세다. 영화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 캐릭터의 필살기 말이다. 사실 그 표정은 고양이가 겁을 먹었다는 뜻이다. (사냥할 때도 검은자위가 커지기는 하는데, 구별하기 어렵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귀여운 얼굴은 정작 고양이에게는 긍정적이지 않은 의미인 것이다. 심드렁하고 ‘띠꺼운’ 얼굴의 고양이가 행복한 고양이다.
그러고보면 웃음이 꼭 행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많이 웃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통념이 있지만, 반대로 우울증에 걸려도 억지로 웃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세상이 더욱 그런 것 같다. 아마 진정한 웃음의 부재와, 사회적인 압박에 의한 기계적인 웃음의 강요로 벌어지는 비극이 아닐까. 예전에 나는 내가 행복하고 밝은 사람이란 걸 증명하기 위해 많이 웃곤 했었다. 하지만 그걸 증명하려고 하는 순간부터 서서히 행복은 쪼그라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기 입으로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에게는 회의적인 눈길을 던지는 편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누군가는 행복의 비결은 행복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뇌는 부정적인 경험을 되살리는 데 더 특화되어 있으니, 내 현실을 헤집어볼수록 안 좋은 면이 부각되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일 끝나고 치킨에 맥주 먹으면 그게 행복이라고 하는데, 언뜻 공감은 간다. 그러나 행복보다는 일시적인 만족감에 가까워 보인다.*
행복은 인생을 설계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다. 결국 내가 살아온 길을 되짚어보며 왜 이런 선택을 내렸냐고 묻는다면, “행복하려고” 그랬다는 것이 궁극적인 답일 테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딱히 불행하지 않으니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글을 쓸 때 행복한가? 그런 질문도 수없이 던져봤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다른 방향이므로 다음 기회로 넘기도록 하겠다.
내 행복은 무엇일까, 타인의 욕망을 벗어난 내 고유의 원천은 무엇일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몇 가지는 확실히 알고있다. 행복은 억지로 잡을수록 멀어진다. 그리고 고양이는 편안하면 동공이 작아져서 무섭다.
*이 글을 다 쓴 뒤, ‘행복은 일시적인 것이다‘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인생은 대체로 행복하지 않은 시간의 연속이 아닐까? 흠, 좀더 고민해볼 내용이다. 내가 더 좋아하는 문장은 이렇다. ‘역사의 곡선이 정의로운 방향을 향해 굽듯이 인생의 곡선도 행복을 향해 굽는다.’(『슈퍼노멀』, 맥 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