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에서 미식으로
※ 이어지는 글은 흑백요리사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공개회차 및 출연진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미쳐 있다. 하나에 꽂히면 눈이 뒤집힌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고 다닌다. 새로운 회차 공개일이면 전날 밤부터 스탠바이하고 시청하면서 먹을 간식까지 챙겨놓는다. 그래서 재밌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면 한동안은 일상에 제법 활기가 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많아지고 있다. 방송에 대해 짤막하게 의견을 내자면, ‘백수저’니 ‘흑수저’니 하는 언어유희가 포함된 시점에서 예능 프로그램 이상으로 진지하게 여기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밀물과 썰물처럼 제작진의 ‘의도’ 대로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걸 즐기는 중이다. 너무 노골적인 파도는 별로지만.
가장 큰 충격은 무려 100명의 쉐프가 등장했는데 그 중에 가본 음식점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유명하다는데, 맛집이라는데. 나름대로 약속을 잡을 때는 좋은 곳을 엄선해 간다고 자부했는데, 이럴 수가, 세상은 역시 넓었다. 아니면 그냥 내가 돈이 없었을지도. 이제는 돈이 있어도 예약이 꽉 차 갈 수 없게 되었다. 이래서 방송은 양날의 검이다.
나는 음식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다.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식사를 하고 싶지만, 분위기만 좋으면 그만이다. 엄마 손맛에 대한 그리움도, 급식을 추억하는 마음도 없다. 참고로 우리 엄마는 한 가지 음식이 통한다 싶으면 그것만 주구장창 파는 스타일이다. 초등학생 때는 튀긴 조기가 매일 나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조기 냄새만 맡아도 식욕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히트곡이 탄생하면 그걸 따라서 비슷한 노래가 쏟아지는 바람에 마침내는 그 장르의 비트에 넌더리나고 마는 흐름과 같다. 그리고 내가 다닌 학교들은 밥이 맛없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때야 배고팠으니 아무거나 줘도 다 먹었지만, 꼭 내가 졸업하고나면 식당 리모델링 등을 이유로 밥이 맛있어졌다.
그래서 뭐든 맛있게 먹는 사람이 신기하다. 한창 먹방이 유행했을 때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틈새시장을 노려서 ‘밥맛 떨어지는 먹방’을 만들어보자고. 물론 실현되지 않았고 그걸 누가 보겠느냐는 타박을 들었을 뿐이었다. 하긴 잘 먹는 게 보기도 좋다. 먹방에서는 어쩜 그렇게 물리지도 않고 같은 음식을 몇 인분씩이나 먹는 걸까. 한 입 가득 담을 때마다 맛있다고 눈을 반짝인다. 너무 고소하고 육즙이 좔좔 흐르고 매콤한 향이 느끼함을 싹 가라앉혀주고 아삭한 배추가 입안을 마지막으로 정리해주고….
나는 요리에도 흥미가 없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최대한 손이 적게 가는 것만 고른다. 극단적인 예로, 전에 식이요법을 위해 바나나 케일 스무디를 만들려고 했었다. 마트에서 재료를 사오기는 했는데 막상 손질해서 믹서기에 가는 것도 귀찮았다. 그래서 바나나 따로, 케일 따로 씹어먹었던 적도 있다. 어차피 뱃속에 들어가면 다 섞이는 거 아닌가. 하지만 왠지 내 자신이 원시인 같이 느껴졌다.
‘음식은 정성이다.’ 우리 아빠의 모토다. 그 말마따나 요리도 많이 생각하고, 섬세하게 손질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참 피곤하고 지난한 과정이다. 주변을 보면 왠지 쓸데없는 고민인 것만 같다. 효율적인 작업 공정과 표준화된 조미료로 대량 생산하는 업장이 돈을 많이 번다. 유행하는 음식을 빠르게 많이 먹는 유튜버가 조회수가 높다. 아무튼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가치의 실현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무정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더 훌륭한 맛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기뻤다. 그런 곳에서라면 얼마든지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