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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중심을 다시 세우기

효도라는 이름의 무게

by B 비

지금의 대한민국은 후진국, 중진국, 선진국을 모두 경험한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시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세대 간의 갈등과 논쟁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고, 그 모습은 사회 곳곳에서 드러난다. 각 세대가 자라온 환경, 살아온 방식,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나에게 ‘효도’는 그런 시대의 갈등 한가운데 있는 주제였다. 나는 작년까지도 효도를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고 살았다. 무언가를 갖거나 경험하기 전, 가장 먼저 부모님을 떠올렸고, 부모님을 위한 선택을 우선한 후에야 나 자신을 생각했다. 돈이 생기면 내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부모님께 드리거나, 특정한 날이 아니어도 선물을 보내고,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을 기획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했던 모든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한 번 시작한 것을 멈추는 순간, 나는 ‘인색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나는 늘 내 것을 참으며 부모님을 우선했지만, 부모님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비싼 건 늘 내가 계산하게 했고, 언니와 동생에게는 돈을 못 쓰게 했다.


그 모습이 더 이상 괜찮지 않아 졌다. 예전 같으면 웃고 넘겼을 일이 마음에 걸리고, 속이 상했다. ‘왜 서운하지? 나도 바라는 게 있어서 그런가? 인정받고 싶은 걸까? 왜 이렇게 씁쓸할까?’라는 생각에 문득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우리를 키워주는 것 역시 언젠가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런데 그 논리는 나에게만 예외 없이 적용되었고, 다른 두 형제에게는 그러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늘 자기 자신을 먼저 챙겼고,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한때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과 큰 다툼 없이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오히려 더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어려움은,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죄책감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 마음을 상담사 선생님께 털어놓았더니, 선생님은 명확한 답을 주셨다.


“본인이 선택한 것에 책임을 다하세요. 본인이 선택한 가족(배우자, 자녀, 반려동물)처럼, 스스로 선택한 것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에너지를 쓰세요.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 까지 인생의 우선순위 안에 두는 순간, 결국 본인은 지치게 됩니다. 그리고 선택한 것들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는 신호예요.”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일상 속에서 그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이 요구하시기 전에 먼저 나서서 하려 하지 마세요. 요청이 있을 때, 그때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는 거예요. ‘지금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 돈, 마음의 여유가 남아 있나?’가 핵심입니다. 없는 것을 끌어다 쓰는 게 아니라, 남은 것을 나누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돌려받지 못하더라도 억울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에 기꺼이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스스로가 원해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한 일이니까요.”


선생님은 끝으로 이렇게 조언하셨다.


“항상 본인에게 집중하세요.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주말은 어떤 모습인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삶을 설계해 나가세요. 그러다 부모님이 ‘함께 여행 가자’고 말씀하신다면, 내 상황을 먼저 살피는 겁니다. 시간이 있는지, 돈은 충분한지, 마음과 육체적 여유는 있는지. 만약 어렵다면, 그 사실을 솔직히 말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했을 때, 정말 원하는 일이라면 부모님도 감당할 몫을 하실 겁니다.”


지금 나는 조금씩, 내 삶의 균형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모든 것을 부모님 중심에 두었던 삶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며, 내 감정과 에너지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저 내 선택을 존중하며,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만큼의 마음을 내어주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자랑스러운 딸로 인정받고 싶었던 나에서, 이제는 내가 내 삶을 돌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나로 성장하고 있다. 스스로를 잘 돌보며, 내 선택과 여유 안에서 드리는 마음이야말로 어쩌면 진짜 사랑이고, 진짜 효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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