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게, 따뜻하게 나의 속도대로
결혼 후, 내가 만든 가족과 태어나 자란 가족(원가족)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결혼 첫 3년이 그랬다. 내 시간과 에너지는 늘 원가족에게 먼저 향했고, 아이를 갖는 일조차 자연스레 미뤄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는 늘 예민해 있었고, 남편은 그런 나를 조용히 지켜봤다.
상담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신 적 있다.
“원가족은 이전 직장과 같아요. 오래 다녔고, 수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했고, 산전수전 공중전도 함께 겪었죠. 그래서 그 시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그 전 직장을 만족하고 좋아하진 않아요. 누군가는 직장과 내가 결 이 맞지 않아서, 적절한 때 인정받지 못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원하는 상사에 지쳐서, 결국 이직을 선택하기도 하죠. 원가족도 비슷할 수 있어요.”
“이직을 하고도 이전 직장 동료와 잘 지내는 사람도 있고, 오랜만에 연락하며 안부를 나누는 경우도 있죠. 중요한 건, 지금은 새로운 회사를 만들었고, 새로운 동업자와 함께 운영해 가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부터는 남편과 어떻게 회사를 꾸려나갈지, 구성원을 늘릴지, 앞으로 10년, 20년 후를 어떻게 그려갈지 이야기하고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해요.”
선생님은 이어서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이전 직장 동료들 혹은 친구들분들과 자주 연락하며 지내세요?”
나는 대답했다. “정말 감사한 분에게는 명절 즈음 안부를 묻는 정도예요. 제 경력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을 땐 연락드리기도 하고요. 친구들과는 생각날 때쯤 서로 안부를 물어요. 이제 시시콜콜 연락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러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본인 성향 자체가 누군가와 자주 부대끼는 걸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어머님은 자주 연락하시고, 종종 아버님에 대한 감정을 당신에게 쏟아내시잖아요.”
“네. 그러시죠”
나는 어머니와 함께 나누는 대화 중에 행복하거나 편안했던 순간이 거의 없었다. 어머니의 삶이 고단했기에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나 역시 밝은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기쁜 일이 있어도 자랑처럼 보일까 봐 입을 다물게 되고,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점점 피로하게 느껴졌다. 만남이 즐겁다가도, 어느 순간 내가 상대의 기분을 맞춰야 한다는 의무감에 지쳐 돌아오곤 한다. 기분 좋은 만남도 있지만, 온전히 편하거나 즐기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 진짜 감정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선생님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렇게까지 맞춰가며 살아오셨다니, 함께 계신 분들은 정말 행복하셨을 거예요. 남을 배려하는 건 절대 나쁜 성격이 아니에요. 오히려 저는 참 따뜻하고 깊은 마음을 가진 분이라고 느껴져요. 다만, 본인이 너무 지치지 않도록 만남의 빈도나 에너지 쓰는 방식을 조절해 보는 것도 좋겠어요.”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기쁜 이야기를 했을 때, 그걸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을 한 명, 두 명 찾아가며 좋은 일도 함께 나누는 경험을 해보세요. 처음엔 어색할 수 있지만, 해보시면 정말 잘하실 거예요.”
생각이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모든 감정을 능숙하게 다룰 순 없지만, 혼자가 편한 순간도 있고, 누군가와 나누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도 있다는 걸,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천천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