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
호세 무히카 그는 우루과이의 제40대 대통령(2010~2015)이자,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우루과이 국민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우리에게는 아버지 같은, 가장 인간적인 대통령.”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호화로운 관저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그는 수도 외곽의 오래된 농가에 머물며, 기존 대통령 관저였던 수아레스 궁전은 겨울철 노숙자들을 위한 쉼터로 내주었다. 대통령 월급은 매달 12,500달러였지만, 그는 그중 90%를 기부하고 1,250달러 만을 생활비로 사용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보다 적게 버는 국민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의 전 재산은 낡은 폭스바겐 비틀 한 대가 전부였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권위와 화려한 이미지로 자신을 꾸밀 때, 그는 항상 작업복 차림으로 국민 곁에 있었다.
1935년,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 군부 독재에 저항하는 투파마로스라는 도시 게릴라 조직에 몸담았다. 그 결과, 체포와 고문, 그리고 14년이라는 긴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 시간을 회한이 아닌 성찰의 시간으로 여겼다.
“감옥은 나를 부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저는 인간과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출소 이후 그는 말과 정책으로 세상과 다시 마주했다. 그리고 2010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철학은 단순하고 분명했다.
정치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국민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도구여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연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먼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그의 정책은 늘 인간 중심이었다.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낙태를 합법화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인구 절반이상이 가톨릭과 개신교인만큼 그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종교적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는 국민들을 설득해 나갔다. 특히 낙태 합법화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낙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낙태를 할 수 없어 여성이 죽는 세상은 더 싫습니다.”
동성결혼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자유란 모두에게 동일해야 합니다. 나와 다른 삶의 방식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의 용기 있는 결정들은 우루과이를 남미에서 가장 진보적인 국가 중 하나로 만들었다.
그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살지 않았다.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정치를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가장 낮은 곳에 두었고, 그 자리에서 진심으로 사람들을 돌보았다.
어느 날 한 기자가 물었다.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사십니까?”
그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나는 가난하지 않아요. 가난은 욕심이 많은 거예요.” 호세 무히카의 삶은 말보다 진했다.
그가 선택한 단순한 삶, 그리고 그 안에서의 따뜻한 실천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