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상담 없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착한 내 새끼야. 내 얘기를 다 들어주는, 친구 같은 딸.”
그 말처럼 엄마는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내게 털어놓았다.
신혼 초 아빠의 도박과 음주운전 사고부터 부부싸움, 부부 사이의 민감한 문제, 아빠의 외도까지, 어린 나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들 속에서 자란 나는 어느 순간 결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남자는 변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존재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아빠의 피가 나에게도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더 싫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아빠를 단순히 ‘아빠’로만 볼 수 없었다. 엄마의 남편, 누군가의 매몰찬 배우자로 보게 되었고, 그 시선은 점점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주말도 없이 일하며 묵묵히 가족을 책임지는 아빠의 모습 속에서도, 나는 늘 복잡하고 불안한 양가감정을 느꼈다. 엄마가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 무게를 나에게까지 나누게 했고,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고스란히 내게 투척하듯 버리셨다.
엄마는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거나 다스리기 위한 상담을 받아본 적도 없었고, 자식의 마음에 상처가 남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들 때문에 내가 참고 이혼도 안 하고 버텼다”며, 자신의 고생을 몰라주는 것 같다고 섭섭해하곤 하셨다. 하지만 그 말에, 나는 답답하고 억울하고 또 미안한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그 누구도 엄마에게 결혼과 이혼을 강요한 적은 없었는데 엄마가 너희들 때문에 버텼어하면 아무 할 말이 없었고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언니와 처음으로 서로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며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 무거운 감정의 짐을 나에게만 쏟아냈다는 걸. ‘착한 딸, 다 들어주는 딸, 마음이 넓은 딸’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점점 곪아갔다.
세상이 곧 엄마였던 내게, 엄마가 만들어준 세상은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버지를 믿을 수 없게 만들었고, 그 세상은 너무도 혼란스럽고 아팠고 불안했다. 만약 내가 다시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착한 아이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가 너무 힘들어할 때, 넌 엄마를 위로해주지 못해도 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감 때문에 힘들다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모두가 처음 살아보는 삶 속에서 엄마도, 나도, 서로 기대고 부딪히며 어설프게 자라온 것 같다.
지금도 완전히 다 치유된 건 아니지만, 나는 이제 엄마의 감정과 나의 감정을 조금씩 분리해 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엄마의 삶을 이해해 보려는 지금의 내가 조금 더 건강하고 단단해졌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안의 그 어린 내가 조용히 웃으며 이렇게 말해줄 수 있기를.
“그땐 많이 힘들었지만, 잘 견뎠어. 지금의 나는, 너 덕분에 여기까지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