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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낳지 않는 이유

요즘 아이들의 소원은 왜 '돈'일까

by B 비

조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보낸 사진 몇 장을 보다가 마음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아이들 작품들을 사진으로 정리해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보내주셨는데, 조카의 카드보다도 다른 아이들의 소원이 더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절반이 넘는 아이들이 소원으로 ‘돈’을 적어 놓았다.

“엄마 아빠가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계약을 많이 따냈으면 좋겠어요.”

“돈이 많아져서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솔직하다 생각했지만, 곧 마음이 복잡해졌다. 아이들이라면 더 신나고 장난스러운 바람을 쓸 줄 알았는데, 이런 현실적인 소원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 어린 마음에 ‘돈’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너무 커 보였다.


그 와중에 조카의 소원에는 그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아직은 이 아이가 세상의 팍팍함보다는, 자기만의 동화 같은 세계 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언니가 그만큼 고생하고 있구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조카는 외동이다. 언니가 이혼하기 전 외동으로 키우기로 마음먹기까지, 참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시댁은 손녀가 있으니 두 번째는 손자일 꺼라며 둘째를 원하셨고 육아 방식 차이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조카는 선천적으로 폐가 약해 천식과 폐렴을 겨울마다 달고 살았다.


언니가 종종 말했다. “아이 둘이 동시에 아프면 차라리 같이 눕혀놓고 돌보기라도 하지… 하나만 아프면, 아픈 아이 돌보느라 나머지 한 아이는 손도 못 대.” “둘을 케어하면서 집안일하면서 회사도 다닌다는 건 불가능해. 현실적으로 안 돼.”


이혼한 지금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생활비는 빠듯하고, 저축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이가 커가며 사교육 문제, 대학 진학, 결혼 자금까지 생각하면 마냥 막막하다며, 그 와중에 다들 노후 준비는 또 어떻게 해가고 있는거냐며, 스스로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고 했다.


언니는 부모란 이름아래 아이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정말 많은 것을 포기하고 감내하고 있었다. 세상은 점점 더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고, 그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어느새 세상의 무게를 감지하고 있다.


왜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 걸까? 왜 많은 부모들이 둘째를 낳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걸까? 이건 단지 개인의 선택이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현실이, 사회가, 부모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이 하나를 낳고 기른다는 건 이제 단지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갈 시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병가, 맞벌이 부부 혹은 한부모 가정을 위한 믿을 수 있는 보육 시스템, 교육비 부담 없는 공교육 환경… 이 모든 것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둘째를 또는 아이를 낳는 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 되어버린다.


많은 부모들이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랑하니까 낳는다. 한 명은 너무 외로워 보여서 둘째를 낳아야 한다.’라는 말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저 아이 하나를 제대로 지키고, 웃게 하고,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을 뿐인데 그 바람조차 너무 큰 짐이 되어 돌아오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누가 선뜻 ‘한 명 더’라는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을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여전히 기적 같은 일이지만, 이제는 그 기적을 감당해 낼 조건이 너무나 버겁고 무거워졌다는 사실. 그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진짜 현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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