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 속에서 배운 것

부모도 완전한 사랑을 주지 않는다

by B 비

나는 결혼을 전제로 약 2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가 있었다. 다른 부서였지만 휴가가 겹치거나 우연히 들켰는지, 어느 날 선배가 단체 대화방에서 “너 누구랑 사귀지?”라고 농담하듯 물었고, 내가 얼어붙은 듯 대답하지 못하자 결국 회사 전체에 우리의 관계가 알려졌다.


남자친구는 나보다 여섯 살 많았다. 나는 그에게 많이 의지했고, 결혼을 서두르던 그는 내 부모님께도 잘했다. 집에 컴퓨터가 고장 나면 부모님은 나보다 오히려 그에게 전화를 하셨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건은 뜻밖에 찾아왔다. 어느 날 회사에 출근했을 때,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 안에 내가 얽혀 있다는 직감이 스쳤다. 불안하게 하루를 보내던 중, 남자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전날 부서 회식 자리에서 여자 후배의 뺨을 때렸고, 곧 징계위원회가 열릴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남자친구에 대한 두려움, 피해자에게 느껴지는 미안함, 모두가 알게 된 상황에 대한 수치심이 뒤섞여 몰려왔다. 나는 그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했다.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실수라도 하면, 그 손이 나에게도 올 수 있겠구나’였다. 안전하게 헤어져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여자 후배가 선을 넘었다 해도, 회식 자리에서 뺨을 때린다는 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


그 일은 합의와 징계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나는 이직 준비를 했고, 회사를 옮기며 그와 어렵게 이별했다. 같은 직장에서 계속 얼굴을 보며 관계를 끝내는 건 쉽지 않았고, 동료들이 모두 아는 상황에서 회사 생활을 이어갈 자신도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이 희미해질 즈음,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그때 그 사람과 결혼했으면, 아마 지금쯤 맞고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 그 일이 있어서 정신 차리고 헤어졌지.”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 지금 애 셋 낳고 잘 살더라. 부모에게 잘하는 그 남자친구가 지금 너밖에 모르는 외국인 남편보다 낫지 않았을까?”


순간 멍해졌다. ‘무슨 뜻이지?’ 나는 곧바로 되묻지 못했다. 혹시 엄마의 말은,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나에게 잘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뜻일까?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효도를 한다면 그게 자식에게 권할 수 있는 혼처자리라는 것일까? 그럼 결국 자식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우선으로 두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나를 괴롭혔다.


엄마의 속마음은 알 수 없다. 그걸 나 역시 다시 무슨 말이냐며 되묻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 엄마는 “집안의 기둥 같은 자식이 결혼한다고 하면 부모들이 반대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곧 나를 두고 한 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부모님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몫을 희생하며 효도했지만, 정작 부모님은 내가 폭력적인 남자와 결혼하는 위험보다 ‘효도를 멈출까’ 하는 걱정을 더 크게 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5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대화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존재이고, 부모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라는 쓰디쓴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깨달음 덕분에, 결국 나를 감싸고 지켜줄 수 있는 건 나 자신 뿐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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