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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기준과 나의 기분

이해받고 싶은 감정과 서운한 감정

by B 비

좀 우울한 이야기지만, 나는 30살까지만 최선을 다해 살고 그 이후에는 삶을 마감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내 삶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서른이 되던 그 해 "새해 복 많이 받아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내게 복처럼 들어온 사람이 있었다. 연애가 시작된 것이다.


친구처럼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 곧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기에, 나는 그 사람에게 별다른 마음이 없었다. 지금은 남편이지만, 당시엔 그저 친구였다.


그런데 친구로 지내던 시절, 종종 그런 생각은 했었다. '이런 다정한 남자와 결혼하는 여자는 참 좋겠다.'


그랬던 그 사람이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나는 곧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라 짧게 남은 두 달 동안, 다른 친구들과 다 같이 보지 말고 일대일로 만나보자고 했고, 그렇게 둘만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그 사람은 정말 따뜻한 사람 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내 기분을 살펴 바이올린을 켜줄 주 아는 다정함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부모님께 이야기하면 분명히 좋아하실 거라 믿었다. 늘 안정적인 직업, 착한 성품, 그런 사위를 바라던 부모님이니까.


그런데 엄마에게 들떠 처음 그 이야기를 꺼냈던 날 엄마의 첫마디는 이랬다. "외국인은 효도할 줄 몰라. 별로야."


나는 엄마와 2년 만에 만났기에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딸 너무 축하해! 드디어 좋은 사람을 만났다니 너무 기쁘다."이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 엄마에게서 들은 말은, 딸의 행복보다는 엄마가 기대한 '사위상'과 '효도'에 대한 기준이었다. 그때부터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얼마나 효도를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의 나는, 그날의 엄마의 말을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딸아, 엄마가 엄마의 가치관과 기대의 렌즈로 너를 보느라, 처음엔 그런 말이 툭 나왔던 것 같아. 엄마도 미숙했어. 그만큼 너를 걱정한 방식이었고, 그 걱정이 서툴게 표현된 거야. 사실은 엄마도 진심으로 축하했어."


그리고 나는 나만의 작은 지혜도 하나 얻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이나 중요한 사건을 부모님께 이야기할 때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내 마음을 꺼내 보여주는 연습을 하기로 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엄마 나는 지금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음에 너무 행복해, 외국인이어서 엄마아빠와 언어적 장벽이 좀 걱정은 되지만 내가 더 열심히 할게 나는 내가 느낀 이 감정을 한번 믿어보고 싶어. 너무 좋은 사람이거든' 내 마음을 먼저 꺼내 보여주면, 부모님도 쉽게 부정적인 말부터 내뱉긴 어렵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제 안다. 그때 엄마의 대답이 내게 상처가 된 건,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받도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 사랑을 내가 나에게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아주 든든하게, 아낌없이 줄 것이다. 내 인생의 주도권도, 내 감정의 주인도 이제는 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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