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감정
그날 이후, 어딘가 모르게 그는 나와 서먹해졌다.
곧 떠날 거라는 걸, 나도 그도 알고 있어서일까.
우린 항상 선을 넘지 않으려 애쓰며,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며칠 후, 오랜만에 친구 콴에게서 연락이 왔다.
콴
“며칠 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이곳을 떠나.
마지막으로 특별한 기억을 남겨주고 싶은데…
사키한테 물어봐서, 그녀가 가고 싶다던 바다로 여행 가는 건 어때?”
그 말에 설레었지만, 왠지 모르게 멈칫했다.
나도 그가 떠나기 전에 좋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지만…
뭐가 두려웠던 걸까.
그날 오후,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러 나간 사키를 따라 나섰다.
나
“저기… 혹시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돼?”
그
“왜? 무슨 일 있어?”
나
“콴이 전에 말한 친구가 곧 떠난대.
같이 여행 가자는데… 너도 함께 하자고.”
그 (웃으며)
“좋아.”
곧이어 그는 되물었다.
그
“그건 그렇고, 오늘 학교 끝나고 뭐 해?”
나
“글쎄… 도서관 가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그
“그럼 나도 같이 가서 시험 공부나 해볼까?”
수업을 마친 뒤,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작게)
“집중이 안 돼.”
나
“공부해야지.”
그
“너도 하기 싫은 거 같은데?”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한국어로 노트에 작게 적었다.
공부해.
그리고 그의 이름을 적었다.
그는 내 노트에 일본어로 내 이름을 적어주었다.
공부는 결국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
“역시 안 되겠다. 저녁 먹으러 가자.”
나는 그를 내가 좋아하는 일식당으로 안내했다.
그
“이건 분명 일식인데… 일본엔 이런 메뉴가 없어. 근데 맛있다.”
나
“그렇지? 나랑 있으면 매일 맛있는 거 먹을 수 있지.”
그는 웃었다.
우리는 페리를 타고 강 건너 공원으로 갔다.
바람이 불었고, 강바람은 조금 차가웠다.
그
“춥지?” (나를 감싸 안으며)
“어때? 조금 덜 추워?”
그 순간, 확신했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구나.
나
“너, 마지막 연애가 끝난 이유가 뭐야?”
그
“학생 때 이후로 계속 일만 했어.
전 여자친구랑은 오래 만났지만… 서로 바빠져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지.
그런 감정으로 계속 만나는 건 미안하니까 끝냈어.”
그
“그러는 너는? 어떤 사람이 네 남자친구가 되길 바래?”
나
“책임감 있고, 일 열심히 하고… 재미있는 사람?”
그 (장난스럽게)
“나인 거 같은데?”
나
“뭐? 그런 멘트는 너무 바람둥이 같아.”
그
“나는 그렇지 않아.”
며칠 뒤, 콴과 그가 좋아하는 여자와 넷이 모였다.
여행 계획을 마무리하던 중, 그 여자와 사키가 일본어로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그녀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
“언니… 혹시 저 사람 좋아해요?
아까부터 두 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요.
사키는 말하지 말라 했지만… 사실 언니를 좋아한대요.
하지만 장거리는 언니를 힘들게 할 거 같고, 본인은 떠나야 하니까… 지금 이대로도 좋대요.”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우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을 직접 들으니 혼란스러웠다.
그의 말이 맞지만, 나도 그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직접 전하지 않은 그가 왠지 미웠다.
그와 콴이 돌아왔고, 나는 대화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지만 생각이 자꾸만 그쪽으로 흘러갔다.
집에 돌아오자 콴에게 전화가 왔다.
콴
“둘이 남았을 때, 혹시 무슨 얘기 들었어?
사키가 네 표정이 바뀐 걸 보고… 말이 전해진 거 같다고 하더라.”
나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더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때,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