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 11

장난속 진심

by Mimi

전날, 강바람이 차가웠던 탓일까.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 가지 않고 이불 속에서 한참을 잤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밤.

휴대폰 화면에 그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사키: 뭐해? 오늘 왜 학교에 오지 않았어? 무슨 일 생긴 거야?

나: 아니, 몸이 좀 피곤해서 쉬었어.

사키: 그랬구나… 걱정했어.

나: 하루 종일 자고 나니까 괜찮아.


다시 폰을 내려놓고 또 잠이 들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다시 울리는 알림.


그: 그렇구나. 푹 쉬고 얼른 나아.


그냥 거기서 대화를 끝내도 됐을 텐데, 왠지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답장을 보냈다.


나: 뭐해?


그리고 놀랍게도, 평소엔 답이 느린 그에게서 바로 메시지가 왔다.


그: 너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어.


나: 거짓말ㅋㅋㅋㅋ

그: 진짜야. 나는 항상 너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어.


나: 너는 항상 바람둥이 같은 멘트를 해.

그: 나는 바람둥이가 아니야. 너에게만 그러는 거잖아.


나: 그러니까 왜 나한테만 그러냐구.

그: 너는 나의 이상형이니까.

당신은 나의 ‘베이글녀’입니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훗날 알게 됐다. 그는 그저 ‘귀여운 나의 이상형’이라는 말을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을 뿐인데, 번역이 엉뚱하게 된 거라고.


나: 뭐라고? 베이글녀? 그건 나 아닌 것 같은데.

그: 당신은 나의 이상형이야.

나중에 나의 신부가 되어줘.

티파니앤코, 오케이?


나: 아니, 까르띠에 정도는 가져와줘.


그는 그 모든 말을 한국어로 또박또박 노트에 적어 보냈다.

나도 일본어로 답장을 적어 보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창밖이 밝아졌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다.

‘어른이 된 후, 이런 감정을 느껴본 게 도대체 얼마 만일까.’


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연애는 나에게 형식적인 것이었고, 어른스러워야만 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유치해본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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