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운 공원의 아침
며칠 뒤, 집들이에 왔던 친구 중 한 명의 생일 파티가 있었다.
우리는 다시 기숙사에 모였다.
생일 축하 노래, 웃음소리, 게임.
그리고 서로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시간.
그의 차례가 되자,
그는 짧게 말했다.
“그냥… 즐기고 싶어서.”
그뿐이었다.
더 알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가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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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고,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이 쉬는 몇몇은 남아 영화를 봤다.
그러다 모두 잠들었고,
한밤중… 그는 나를 깨웠다.
“큰일 났어. 새벽이야. 막차 끊겼겠다.”
아침 첫차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그는 덧붙였다.
“너는 집이 가까우니까, 가고 싶으면 데려다줄까?”
평소 같으면 집에 돌아갔겠지만,
나는 말했다.
“아니, 그때까지 같이 기다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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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던 우리는 처음으로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 “그나저나 너는 호주에 왜 왔어?”
나 : “글쎄… 너는?”
그 : “나도 뭐, 비슷한 이유 아닐까?”
그러다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그 : “일본에 와본 적 있어?”
나 : “응, 꽤 많이.”
알고 보니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는
내가 마지막으로 갔던 여행지였다.
그 : “그곳은 어땠어?”
나 : “따뜻했고, 거리가 예뻤고, 음식이 맛있었어. 사진 찍을 곳도 많았어.”
그는 내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 : “사진 있어? 보여줘.”
사진 하나하나마다
그는 “여긴 어디”, “여긴 내가 자주 가던 곳”이라며
모든 장소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침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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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하나둘 일어나자
다 함께 아침을 먹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와 방향이 같았던 나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나 : “앞에 내가 자주 가는 커피숍 있는데 가볼래?
호주에 와서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야.
아침에 커피 사서 공원에 앉아 마시는 거.”
그 : “나도 커피 마시고 싶어. 공원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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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서 공원으로 향했다.
호주의 겨울과 봄 사이,
살짝 쌀쌀한 공기와 따뜻한 햇볕.
강가 앞 벤치에 앉으니, 기분이 참 좋았다.
나 : “여기 너무 좋지?”
그 : “응,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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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었다.
나 : “이제 둘뿐이니까 말해줘. 호주에 온 이유가 뭐야?”
그 : “그 전에 너는?”
나는 내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고,
남들이 대학에 가는 나이에 이미 사회인이었던 나.
한국 사회에 지쳐 매일 경쟁하듯 살았고,
더는 20대를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호주로 왔다고.
그는 잠시 놀란 듯 말했다.
그 : “나도야. 나도 너랑 같은 나이에 일 시작했고, 매일 일만 했어.
내 젊음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어.”
그 말이 멋져 보였다.
나는 그저 휴식이 필요해서 왔지만,
그는 이미 돌아가서 다시 시작할 일자리까지 정해놓고 온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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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마지막 연애는 언제야?”
그 : “2년 전. 그 이후로 계속 일만 했어.”
그의 외모와 성격을 생각하면 의외였다.
그 : “너는?”
나 : “한국에서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이곳에 오면서 적응이 힘들어 기다려주는 게 부담스러워서 헤어졌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 : “그럼 이곳에서 남자친구 만들 생각은 있어?”
나 : “좋은 사람이 있다면… 하지만 아직 바빠서.”
그 : “글쎄, 난 곧 브리즈번을 떠나니까.”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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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왜?”
그 : “세컨드 비자 따러 농장에 가야 해.
이미 농장주와 이야기해서 두 달 후에 떠날 거야.”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나 : “그럼 그동안 좋은 추억 많이 만들자.”
그 : “응,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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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벤치에 앉아 있던 우리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밤을 새고도 피곤한 줄 모르고 대화하던 그 순간,
아마도… 그날이 우리 이야기의 진짜 시작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