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남편을 평생의 원수라고 합니다만, 남편을 부르는 아내의 호칭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끼도 집에서 먹지 않는 남편은 '영식님'이라는 존경의 호칭을 합니다. 0식입니다. 한끼도 집에서 먹지 않으니 부인은 편하고 남편은 행복하다 합니다. 진정 그것이 행복인가는 각자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아침만 먹는 남편은 '한식씨'라 합니다. 한끼를 먹으니 한식씨입니다. 아침은 먹지 않는 집이 많은 세상이니 저녁 한끼만 먹는 남편도 한식씨로 불릴 것입니다. 다음으로 일반적인 경우로 아침, 저녁을 집에서 먹는 남편이 많습니다. 이 사람은 아내가 반말로 부릅니다. 두식이, 두식아라 부릅니다.
많이 아시는 바와 같이 아침, 점심, 저녁을 집에서 먹는 남편은 거북한 호칭이 붙습니다. 세끼를 먹으니 '삼식이 세끼'입니다. 삼식을 하고 그래서 세끼라고 하는 말을 혼합한 것인데 듣기에 따라서는 귀를 거북하게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한마디 더 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요리연구가 이혜정 선생님이 방송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삼식 세끼를 먹는 남편인데 종종 간식을 챙겨주어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세끼에 간식을 챙겨먹는 남편은 '종종간식세끼'입니다. 방송용 말로 '종종간나이세끼'라고 하시던데 여러분이 판단해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삼식이든 종종간식세끼이든간에 부부가 함께 20시간을 같이 생활하시면서 아내의 존중을 받아낼 방법이 있습니다. 설거지입니다. 주방은 아내의 공간이라 합니다만 설거지를 좋아하는 주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아내가 조리를 하면 싱크대에서 큰 그릇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제자리에 두는 보조를 하면 됩니다.
잘잘한 것은 시간이 걸리지만 차분하게 하나하나 세제로 세척하면 됩니다. 다만 그 그릇을 있던 자리에 잘 두어야 합니다. 아내의 주방과 치과의사의 진료기구 세트와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수십개의 치과의사 진료장비가 가지런히 놓인 것처럼 아내의 주방도 다 제 자리가 있습니다. 그동안 몇번 그릇을 30cm이동시켜서 구박을 맞은 바가 있습니다. 이제는 절대로 주방기구를 이동하시 않습니다. 정확히 그 자리에 재배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식물쓰레기와 일반쓰레기를 자주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만 봉투비용이 아까워서 쓰레기봉투 옆구리가 김밥터지듯 담아둡니다. 그러니 몰래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위생을 위해 일찍 버렸다고 설명하면 됩니다. 봉투값 500원보다 병원비, 약값 5,000원이 더 크다는 점은 누구나 아시는 바이니까요.
왜 옷을 저리도 다려서 입어야 하고 양말, 내복을 차곡차곡 정리해야 하는가에 공감하지 않는 귀찮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세탁기에서 알람이 울리면 마른 세탁물을 꺼내어 거실에 뿌려주면 아내들은 좋아합니다. 건조까지 안되는 세탁기라면 탈수를 마친 옷가지를 꺼내어 빨래줄 인근에 가져다 주시면 남편으로서 할일은 90% 진행한 것입니다. 빨래줄에 너는 작업은 40대 전의 신혼급 부부가 하실 일이라 봅니다.
출근길에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나오는 양복 셀러리맨을 보게 됩니다. 셀러리맨인지 사업가인지 CEO인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양복에 음식물쓰레기 봉투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아마도 아내가 몸져 누워있거나 아내도 함께 일하는 직장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남편이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나온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아침 운동을 겸해서 운동복을 입고 일찍 나와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0분이면 가능한 일인데 넥타이매고, 미니스커트입고 음식물통에서 어려운 작업을 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사 나혼자 사는 것 같아도 많은 이들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잘잘한 움직임을 보고 나름 상상을 하고 있답니다.
오만가지 걱정을 한다고 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연구를 해보니 우리는 하루에 48,000가지를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액션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조상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 경우에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거나 '오만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고 기분에 맞지 않는다며 '오만상'을 쓴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부부는 요산요수입니다. 낙산낙수는 틀린 발음입니다. 지자요산, 인자요수입니다. 어진사람은 여유로운 산과 같아서 급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자는 물흐름과 같아서 돌돌돌 거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산기슭을 지나가는 계곡을 흐르는 물은 산의 높이를 알기 어렵고 물이 흐르는 계곡위 산은 물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모습으로 세상을 보고 자신의 눈높이에서 모든 것을 평가할 것입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에게 맞춰주기를 바랍니다만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생각에 따라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것도 과거 1980년대까지 통하는 사회적 질서입니다. 1988년, 2002년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국제스포츠행사가 열린 해입니다.
88올림픽은 우리사회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노조가 활성화되고 밖으로 나와서 큰 행동을 하였습니다. 회사 지붕에 올라가서 노사분규를 강하게 몰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민주화가 시작되었고 1990년대에는 제가 40년간 근무한 공직사회에도 큰 변화가 일었습니다.
혹시, 60전후의 세대는 사무실 책상위에 대형 재털이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1984년에 경기도청 새마을과 서무, 8급 공무원으로 전입되어 2년간 근무했습니다. 계장님, 사무관 5급 공무원 책상위에 놓인 재털이에는 하루 두번, 화분처럼 물주기 행사를 합니다.
우선 전날 비워둔 재털이를 다시한번 맑은 물에 씻어낸 후에 태슈 2장을 올리고 소주잔 반정도의 물을 부어줍니다. 그리고 책상위에 올려둡니다. 출근한 계장님은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운 후 재털이에 던지면 미리 뿌려둔 물이 스며들면서 피시식 불이 꺼집니다. 하지만 오전 11시경에는 재털이의 절반쯤 꽁초가 차오르고 물기를 머금은 담배꽁초는 초콜릿을 두룬 빼빼로처럼, 고슴도치 등가시 모양의 장식품이 됩니다.
양복점 재산사 손등에 거북이가 있습니다. 여러개의 바늘을 꼽은 양복점 장비를 상상해 보십시오. 바늘끝에는 여러가지 색상의 안전장치가 꼽혀있어서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계장님 책상위 재털이가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이 재털이는 점심시간에 다시 비워야 합니다.
오후 1시가되면 점심을 두신 공무원 간부들이 오후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담배를 피우십니다. 이 재털이는 4시간만에 한가득입니다. 혼자서 다 피우시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주변의 지인 계장님이 마실을 오십니다. 커피를 주문해서 드시고 그 입맛에 길들여진 담배를 피우십니다. 한번은 두세분이 동시에 연기를 품어서 천정의 소방센서가 울린 일도 있습니다.
이 재털이를 8급 공무원들이 처리했습니다. 여성공무원들이 관리했습니다. 당대의 공무원들은 이같은 작업을 당연시했고 간부들도 권력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보다 더 많이 바뀐 것은 2002년 월드컵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20년전부터 우리사회는 변했고 그 변화의 물결이 공직에도 영향을 줍니다.
공무원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공직사회의 변화가 과속을 해서 우리사회의 여러가지 상황과 비교하면 오히려 앞질러 나간 것은 아닌가 우려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혹시 이 말을 하고 젊은 공무원에게 욕을 먹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나름대로 젊은 고무원과 호흡을 함께하려 노력했다 자부합니다.
o...나눔에 대하여
2014년에 오산시청에 근무했는데 우리시가 2년 연속 청렴도평가 1위를 하였고 기획실장과 부시장이 청렴강사가 되었습니다. 원주시, 양평군, 지방행정연수원에 청렴강사로 뽑혀서 오산시의 청렴사례를 강의하였습니다. 근무시간중에 나간 강의이니 월급은 계산된 것이고 사무실 차를 타고 가서 말만하고 왔는데 큰돈을 줍니다. 여러번 가니 200만원이 넘었습니다. 수박을 사고 귤을 사서 부서에 보냈습니다.
어느날 부시장 관사에 계란2판이 있습니다. 아내가 장을 보러갔다가 떠리로 사왔습니다. 열심히 계란을 먹어도 줄지 않습니다. 새벽 6시에 계란 한판을 삶았습니다. 5*6=30 계란 한판은 30개입니다. 노랑보자기에 삶은 계란 한판을 들고 10분 거리를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의회사무과장님 책상위에 한판을 올리고 명함을 첨부했습니다.
오후에 의원임 한분이 전화를 해서 계란을 맛있게 먹었다 말씀하십니다. 과장님이 계란을 의원님께도 드린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서 다음날에는 시간을 서둘러서 2판을 삶아서 시청 직제상 의회사무과 다음인 기획감사실에 가서 책상위에 한개씩 나눴습니다.
이처럼 시청내 각 부서에 계란을 공급하는 공무원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주무관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동사무소에는 언제 보내주시나요?"
"본청이 마무리되면 가야지요"
그래서 30개들이 계란 20판 600개를 동시에 삶기로 합니다. 그 분량이 적지 않습니다. 솥에 계란을 넣고 다시 종이박스에 담는 과정도 이제는 노동수준입니다. 오후 3시경 구내식당의 대형솥을 빌리고 식당에서 가까운 부서에서 3명을 지원받았습니다. 계란을 삶는동안에 일행과 구내매점에서 간식을 먹었습니다. 많이 깨진 삶은 계란은 구내식당 여사님, 주무관과 나눠먹습니다.
그리고 삶은 계란을 승용차에 싣고 동사무소를 순회했습니다. 민원실로 들어가서 눈 마주치는 주무관에게 전하고 곧바로 나왔습니다. 예정없이 동장을 만나는 것은 예의가 아닌줄 생각합니다. 나중에 다른 동에 계란을 전할 즈음에 동장님 전화가 와서 잘 먹었다 하십니다.
시청에 근무하면서 전체 동료에게 삶은계란을 전달한 사례가 또 있을 것입니다만 아직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같은 계란삶기는 남양주시청에 발령받은 날에도 이어졌습니다. 3판을 들고가서 시장실, 부시장실, 의회사무국장실에 각각 나눠주고 계란 아래쪽에 이날저녁 부시장과의 만찬티켓을 붙이는 행운권행사도 열었습니다.
취임날저녁에 당첨된 주무관과 감자탕을 먹으면서 시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근무하는 방식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그리고 1년을 근무한 후에 공직을 명퇴하게 됩니다.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찬 공직이었고 흥미로운 일에 도전하는 기회였습니다.
o... 아는 만큼2002년에 당선한 정명근 화성시장 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고향 화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긴 시간동안 선거캠프에서 일했습니다. 2021년 8월부터 김희겸 행정안전부 차관의 캠프에서 시작한 선거업무 지원활동을 2022년 6월까지 이어가고 있습니다. 10개월여동안 휴일에도 출근하는 바쁜 일정속에 살다보니 아내에게 관심을 두지 못한것이 미안하여 융건릉을 가자 했습니다.
며칠전에 다녀온 막국수집을 목표로 그 맛을 올리기 위해 융건릉에 입장료 1,000원씩을 내고 들어가 오른쪽으로 걸었습니다. 장조, 사도세자, 뒤주대감으로 불리는 영조의 아들은 젊은 나이에 한여름 목조 뒤주속에서 아사, 질식사합니다.
조선왕조500년 안국동아씨에 나오는 영조는 최불암, 사도세자는 유인촌입니다. 수십년전에 흑백으로 방영된 드라마에서 뒤주속에서 유인촌이 상감마마 살려달라, 살려달라 하다가 마지막에 아버지! 아버지!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조 최불암은 방안에서 아들걱정을 하다가 문득 아버지라는 아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뛰어나가 뒤주를 열었지만 이미 사망한 상황으로 드라마가 방영됩니다.
역사드라마는 어느정도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이전역사인 태종이방원 드라마에서는 부인 원경왕후는 왕위에 오른 남편에게 강력한 한마디를 합니다."조선의 절반은 저의 것이옵니다"당대에 비록 왕후라해도 이런마을 할 수 있을까 상상해봅니다. 드라마 전개상 작가나 PD가 2022년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 봅니다. 그런 의미를 담아 이런 대사를 쓰고 실제로 배우를 통해 시청자에게 아내의 당당함을 표현한 것이라 봅니다. 부부가 이혼할때 판사님은 공동재산으로 기여한 부분을 따져준다고 합니다.
남편은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어들였고 그 월급을 타도록 내조하고 고생하며 함께 의논한 부인의 몫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는 효과도 있다고 봅니다. 아내는 그냥 같이 밥먹고 물쓰고 전기켜고 살아가는 동거인이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공유하는 동반자라 합니다. 동거인과 동반자의 차이는 천양지차입니다. 문간방에 세들어 살던 여성이 주인집 아들방을 차지하고 안방으로 들어옵니다.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에서도 그런 경우를 자주 봅니다. 가정사에서도 어머니의 권력이 높습니다. 투표하는 날이 다가오면 선거공보가 가가호호 도착합니다. 그날저녁 어머니는 자녀와 사위 며느리를 불러모은 후에 남편도 저쪽 구석에 앉으라 합니다.
선거 공보물을 한장씩 넘기면서 도지사는 김동연, 교육감은 임태희, 시장은 정명근, 도의원은 누구, 시의원은 누구, 정당투표는 어느당을 지정해 줍니다. 물론 요즘의 젊은이(MZ세대)가 쉽게 따라오지는 않을 것입니다만 혹시 모계사회의 파워가 느껴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인터넷] MZ세대는 1980년부터 199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M)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MZ세대는 2019년 기준 약 1700만 명으로 국내 인구의 약 34%를 차지한다. MZ세대는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한다. 특히 SNS 활용에 능숙한 MZ세대는 유통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MZ세대]에 대한 참고자료를 추가합니다. 스마트폰에서 검색하여 복사한 파일을 카카오톡으로 자신의 이름안에 첨부하여 발송합니다. PC버전 카카오톡에서 복사하여 그 파일을 여기에 첨부합니다. 시골나이 65세 1958년 베이비부머세대로서 최신 IT를 잘 활용한다고 자부합니다.
[베이비부머] Baby Boomer =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정책이 시행된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베이비부머들은 경제성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한국 경제발전의 주역들이다. 하지만 최근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들이 취업난을 겪으면서 취업과 결혼이 늦어져, 베이비부머세대는 노부모 부양에 대한 부담과 함께 자녀에 대한 지출의 부담까지도 지게 됐다.
1958년생이 Baby Boomer세대중에 처음으로 우리나라 출생 100만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후에 귀가한 병사들이 결혼을 하고 출산이 늘면서 1958년도에 100만이 태어났는데 마침 정유생 개띠였습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아이들이 태어나 밤새 울고 그 울음소리에 개들이 짖어대고 다시 개소리에 아기가 깨어서 울었다 합니다.
그래서 58개띠라고 합니다. 46년 70년 82년도 개띠이겠지만 유독 58년생만 '58개띠'라 호칭합니다만 이들도 64세 나이를 먹었습니다. 어느날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회갑을 지나 초로의 세대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58개띠라고 하니 88년도 이야기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쌍팔년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인가 합니다. 물론 2022년 기준으로 1988년은 34년전입니다. 하지만 88(쌍팔)년도란 1955년이고 단기로 4288년을 말합니다. 다시말해 전쟁이 끝난 직후였다는 말입니다. 2055년이 되면 쌍팔년도생은 100세가 되겠습니다만 100만이 태어난 1958년생중에 97세 장수를 하시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최근 송해선생님이 94세로 영면하셨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은 102세에도 강연을 하십니다. 하지만 많은 어르신들은 80~90세에 이르십니다. 다른 뉴스를 보니 대기업 자녀들중 일찍 별세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대기업자녀인데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대기업 총수급이기에 사망소식이 언론에 나와서 국민들이 대기업의 금수저중에도 아까운 나이에 돌아가시는 분이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너나없이 인생은 생노병사의 과정속에 있습니다. 순서가 다를뿐 1955년생이 장수하시고 1958년생중에도 단명하는 이가 많을 수 있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앨범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몇년전 평균 2명이던 "작고"라는 붉은 글씨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줄지는 않을 글자이기도 합니다만 늘어나는 추세가 빠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누구에게나 닥치게 될 "작고"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사실은 이 글은 책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였기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원고를 늘리는 강박관념속에서 쓰고 있습니다. 예능방송에서 분량을 확보했다, 분량을 잃었다는 말을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어떤 단어나 상황을 가지고 5줄 정도 글을 채우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할말이 있어서 시작한 단락인데 그냥 엉뚱한 럭비공이 되고 초보의 골프공처럼 문장이 튀어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좋아서 원고로 정리하면 문장의 수준은 저급하지만 외형상 보면 책으로 보입니다. 솔직한 마음은 책을 정독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마음이 편합니다. 한글, 한문장, 한단락을 고민하면서 읽고 앞뒤 문장간의 연결성을 음미하는 독자가 많았던 1970년대라면 이렇게 부담없이 성의없이 문장을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어려서 삼촌이 사주신 삼국지를 두번 읽었고 이 책은 동네 여러집을 돌면서 독서의 기회를 제공하다가 어느날 아궁이에서 장열하게 산화했습니다. 당시에는 활자책만 있고 그나마도 희귀해서 이장님집에 배달된 '새농민'이라는 책을 30가구가 돌아가면서 읽었습니다. 어느해에는 새농민책 표지에 공무원식의 "공람"이라는 서식이 그려진 것을 발견한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2022년 오늘은 인터넷의 글자정보가 풍성합니다. 세종대왕께서 지식재산권으로 훈민정음을 특허청에 등록했다면 우리는 매일 10,000원정도의 지식재산 사용권을 세종대왕 후손에게 납부해야 할 것입니다. 신문사는 18면신문을 인쇄하면 18만원을 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돈내지 않고 한글을 씁니다.
인터넷상에서는 세계 어느나라 문자보다 효율성이 높다는 한글을 편하게 풍성하게 쓰면서 지식재산권 비용을 내지 않고 있으니 세종대왕과 집현적 학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의 생각을 인터넷에 올리고 다른 이들이 게시한 글을 참고하면서 살고자 합니다.
부부가 발을 씻겨주는 행사를 보았습니다. 그 광경이 아름다워서 가끔 결행을 합니다. 뜨거운 물을 대령하고 수건도 준비해서 7분정도 지나면 수건으로 발을 감싸줍니다. 아마도 아내는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부부의 대화방식입니다. 그렇게 대화를 한다면 목청을 가다듬을 일이 없습니다. 아내들은 대부분 마음이 급하고 목소리 톤이 높습니다. 그래서 억양이 올라갑니다. 따스한 물로 목청을 가다음을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o...국내에서 활약하다가 미국에가서 크게 성공한 스포츠스타가 방송에 나와서 다른 유사한 입장의 저명인사와 나눈 대화중에 우울중에 대한 부분만 시청했습니다. 다른 한분도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형성한 분인데 중간에 어떤 일로인해 일을 접은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두분이 파트너로 동반출연을 하신 것으로 보았습니다.
스포츠스타의 이야기는 운동선수에서 은퇴하고도 한동안은 20층이 넘는 아파트를 걸어서 오르고 내리는 운동을 할 정도의 정신력을 지녔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부터인가 운동선수가 아닌데 아파트를 걸어서 오르내리는 운동이 필요한가에 대한 회의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스 운동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대목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방송이 나왔다면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지금은 선수가 아니지만 나름의 장년, 노후를 잘 지내고 있다는 해피앤딩이 기대되는 스토리입니다. 전체를 시청하지 않았으니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파악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다만, 주변에서 보기에 이처럼 유명한 스포츠스타도 그 영광의 시간이 지나면 슬럼프의 시기가 온다는 점에서 인생의 생노병사는 다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영화에서 수많은 부족이 창을들고 달려가서 프랑스군 총탄에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20대에서 30전후의 젊은 부족의 병사들이 식민지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군의 총검에 마주 싸우는 것입니다. 나름 당시에는 50세까지는 살게되는 평균수명의 나라라고 보이는데 젊은 나이에 쓰러져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한가득이었습니다.
안네의 일기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에서는 가스실에서 고통으로 인해 벽을 손톱으로 긁으며 사라져간 유태인들의 실상을 보았습니다. 안네라는 소녀도 어린 나이에 가스실에서 이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조선시대 어르신이 한분도 없습니다. 1910년생이면 112세인데 아마도 이제는 조선시대 어르신을 만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고조선, 발해, 가야,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사람은 세상에 없고 역사에만 남아있습니다. 우리의 100년이 열번 모여서 1,000년 역사가 축적되는 것이고 그 5번이 반만년 역사입니다. 올해 단기 4355년입니다. 반만년이 되려면 145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20세기에 조상들조차 우리를 반만년 역사라 했습니다. 2333+2022 = 4355년.
그러니 긴 역사속에서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인생을 둘러보면서 스스로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더러는 우울증에 힘들어한다 합니다만 지금의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 먼저의 역사에 태어나 살고 떠나신 분,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이 삶이 가치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가치있는 삶을 살고있다는 자부심을 한가득 가진다면 우울증은 사라지고 우쭐한 마음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노후에도 절대 지치지 않고 자신의 존재에 가치를 느끼면서 큰 일을 도모하거나 주변과 잘 어울리면서 생을 살아갈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지인이 우울증을 걱정합니다. 아마도 삶이 외롭거나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사가 힘들어서 우울증이 온다고 봅니다. 마약을 단속하는 경찰이 마약사범이 되었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청춘시절에는 살아가는 것이 바쁘고 즐거워서 우울하지 않았는데 나이 50을 넘기면서 인생을 하나 둘 정리하다보니 우울해지는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오늘 어느 모임에서 발언하는 중에 나이들어가는 것을 당연한 인생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 등산을 해보니 나이는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동안 등산에 게으른 것이 원인이 되어 젊은 일행보다 뒤쳐져서 걸었지만 결국은 형제봉 정상에 올랐고 하산길에서는 동료들과 발길을 맞췄습니다. 오르는 등산은 어려웠는데 내려가는 하산은 쉽다는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인생도 올라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쉬울 수도 있고 그런 과정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우울증이 온다는 것으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우울하다는 것은 스스로의 생각이고 그래서 우울함을 떨쳐버리는 운동이나 취미, 나만의 글쓰기 등 다양한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구상을 해보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살아가면 혹시 우울증이 올 수 있으니 자신의 자존심을 키우고 삶에 무게를 실어가자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하루하루가 의미있고 즐거운 나날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다보면 노년의 아름다움도 있을 것이고 멋진 삶을 개척하게 될 것입니다.
모녀의 대화를 들어보면 부자의 입장에서는 싸우는 듯 여겨집니다. 사람마다 집단마다 소통방식이 다르다는 점에는 공감을 합니다만 같은 상황을 마주하는 각각의 생각은 다른 듯 생각합니다. 자신의 주장을 많이 담아서 강조하다보니 강한 어조를 쓰게 된다고 봅니다. 강한 톤으로 이야기해야 자신의 의견이 상대에게 정확하게 전달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아내가 다른 지인과 나누는 통화를 들어보면 같은 이야기를 어떤 경우 5번 이야기하는데 상대방도 그 다섯번에 일일이 응대를 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면 전화를 끊고 다시한번 확인하는 차원에서 카톡을 보내는 저의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5번을 말하고 다섯번을 들으면 메모하지 않아도 그 약속일까지 머리속에 남을 것 입니다. 반복하면 기억되는 영어단어처럼 여러번 이야기하면 기억의 소자가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o...등산과 인생
산을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 합니다만 등산을 하고나면 반드시 하산을 해야 합니다. 산 정상에서 근무하는 구조구급 요원이나 3박4일 등정을 하는 경우라면 오늘 등산하고 그대로 머물 수 있지만 당일치기 등산가는 어느 방향이든 그 산을 다시 내려와 도시, 평지나 해안가에 자리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등산을 하면서 하산을 하면서 인생을 되짚어보는 기회로 삼습니다. 조금전에 힘들게 올라왔던 계단을 내려갈때는 참으로 수월합니다. 힘들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온화한 미로소 인사를 합니다. 열심히 올라가시면 정상을 만나고 그곳에서 잠시 머문 후에 다시 이 길을 따라 내려오시라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모든 등산객들이 그러합니다. 이는 마치 인생을 살아가면서 대략 60을 정점으로 생각하면 65세쯤에는 산을 내려오면서 열심히 땀흘리며 정상을 향에 걸음을 옮기는 50대 후반들의 모습을 보면서 10년전 자신의 모습을 겹치게 보면서 마음속으로나마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2시간전에 이 등산로를 오를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듯이 내려갈때에도 굴곡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산길의 오르막은 짧고 쉽습니다. 온몸이 등산으로 내공이 쌓여있기에 웬만한 하산길 오르막은 쉽게 잡아챌 수 있습니다. 운전할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 내리막에서도 가속을 해서 부드럽게 오르막을 지나가면서 이를 잡아챈다고 합니다. 자전거의 경우에는 더더욱 적정하게 발휘해야 할 테크닉입니다.
등산했다 하산하여 주차장에 도착하면 3시간전 그 차량이 주인을 기다리고 손목시계에는 13,638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통상 10,000보를 걸으면 온몸이 개운한데 조금 더 채웠으니 기분좋은 뻐근함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니 역시 집이 좋습니다.
인생은 늘 오늘을 살고 이순간을 맞이합니다. 과거난 기억되지만 갈 수 없는 공간이고 미래는 예측은 하지만 사전 방문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간이라고 하는 초침과 분침을 꾸준히 모아서 24시간을 걷고 숨쉬고 밥먹고 생각하며 보낸 후에야 다음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등산로를 걸었던 것은 지난 과거, 오전의 일이고 이런 기록을 남기는 시각은 그날 오후입니다. 벌써 2시간 이상이 또 지나갔습니다. 몸은 등산의 효과를 바탕으로 뻐근 시원하고 정신은 맑아지니 할말을 정리해서 훗날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는 아름답게 인생위에 축적되고 있습니다.
아내와 차를 타고 융건릉을 참배하고 주변을 산책하였습니다. 220년전 조성된 (정조대왕 1752~1800, 제22대) 두분 왕릉은 최근에 여러번 내린 비를 맞아 잔디조차 윤기있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관리된 소나무는 그 긴 세월의 축적된 연륜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잘 자란 소나무 숲길을 거니는 것은 아마도 화성권에서 가장 아름다운 힐링의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략 250년 전후의 소나무가 풍겨주는 중후한 멋과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떤 영향력이 이 길을 차타고 표사고 들어온 이유를 설명하기에 충분하고 조금도 손해스럽지 않은 이익스러운 일임을 자임하게 해 줍니다.
일상의 무료한 삶에서 잠시 외출하여 가까운 이곳에서 즐기는 늦은 여름날 오후의 멋스러움에 스스로 빠져드는 모습은 마치 남가일몽, 일장춘몽에 나오는 작은 이야기처럼 느껴지고 그런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여유스런 결정을 한 오늘의 산책에 큰 만족을 느끼는 바이기도 합니다.
다시 융건릉과 연결되는 용주사에 들어가서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대웅전에서 9배를 올리며 다시 삼성각에서 3배 인사를 하는 여유를 가져봅니다. 심야에 불탄효성전이 다시 건립되어 정조대왕의 효심을 우리의 가슴속에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넷] 용주사 효성전 [龍珠寺孝誠殿]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용주사에 있는 건물이다. 조선시대의 장헌세자(사도세자)와 정조, 효의왕후의 위패가 있는 곳이다.
용주사는 정조가 부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했기 때문에 일반사찰과는 달리 ‘효(孝)’와 관련된 건물과 유물이 많은데, 효성전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효성전에는 정조와 사도세자의 위패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위패도 있다.
내부 벽에 ‘부모은중경’의 내용이 도배되어 있으며, 건물 밖에 부모은중경탑이 세워져 있다. 용주사 효행박물관에는 정조가 출간한 불설부모은중경 판본이 보관·전시된다.
지인께서 선대에 이곳 융건릉의 능참봉 벼슬을 하셨다 자랑하십니다. 그래서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중 능참봉이 벌받지 않고 오히려 큰 상을 받은 스토리를 말씀 드렸습니다.
[인터넷] 정조는 "수원 능참봉은 한 끼에 닭 한 마리"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그래서 사도세자의 무덤을 돌보던 능참봉에 관한 민담이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가 이러하다.
왕씨 성을 가진 능참봉이 지나가던 점쟁이에게 관상을 보았는데 며칠 뒤에 죽을 상이라 하였고, 이어서 대책이랍시고 알려준 게 밤중에 묘를 껴안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혹은 밤중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나서 알려줬다고도 한다. 하여튼 이 말대로 하였다.
그런데 궁궐에 있던 정조는 비가 오는 것을 보고 문득 "내 아버지는 비 오는데 추운 무덤 안에 누워 계시는데, 능참봉이라는 놈은 따뜻한 방 안에 편히 누워 있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선전관을 보내 "능참봉이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불문곡직하고 죽여버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선전관이 와서 보니 능참봉이 기특하게도 비를 맞아 가며 무덤을 지키고 있었고, 돌아와서 그대로 보고하니 정조는 무척 기뻐하며 상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융릉에 송충이가 창궐하자 이를 본 효자 정조대왕이 "아무리 미물이지만 어찌 아버지의 산소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갉아 먹느냐"면서 송충이를 깨물어 죽이니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려 소나무에 있는 송충이를 모두 제거했다고 합니다. 효심을 강조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이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합니다만 그정도 미담은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젊은 청년들을 만나서 화성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융건릉과 용주사를 소재로 20분 정도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수원시와 의왕시 경계인 경기도인재개발원 인근의 지지대고개, 지지대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눌만 하겠습니다.
그렇게 평온하게 부부가 오후의 여유로운 산책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차분하게 저녁을 먹으니 이처럼 하루가 지나갑니다. 부부의 세월은 차분히 흐르는 강물, 비온지 일주일 지나 안정된 시냇물과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