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당시에도 여성공무원 비율이 높았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후에 수원 집으로 갔다가 월요일 새벽 5시에 출발하여 동두천까지 97km를 달려가 시장님 주재 월요일 아침 8시30분 회의에 참석했다가 동사무소로 출근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료 여성 공무원이 포천시청 소재지 인근의 농협 웨딩에서 결혼합니다.
일요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포천으로 달려갔습니다. 늘 모든 행사에는 일찍 가는 것이 습관인지라 1시간 일찍 도착하여 잠시 기다린 후 신부를 만났습니다. 아직 웨딩드레스를 입기 전에 만난 신부는 동장을 데리고 시댁식구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시킵니다. 정말로 여러분에게 인사들 드렸습니다. 우리 동장님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동사무소 동장님입니다.
우리의 신부는 가족이 아주 멀리 있어서 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장을 친정 오라버니 급으로 시댁 식구들에게 소개를 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결혼식에 참석하여 이처럼 보람을 얻은 경우도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거리를 달려왔지만 참으로 기쁨이 한 아름이었습니다.
가끔 안부전화를 하면 사모님 인사부터 챙깁니다. 동장은 동료이니 올 수 있는데 동장님 아내가 동참하였으니 더더욱 기억이 난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할 때 나타나는 미국영화 슈퍼맨의 슈퍼맨 같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가서 큰 역할이 없어도 꼭 가야할 곳은 가서 축하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결혼식보다 상가가 많습니다. 백일 돌집은 만나기 어려운 만남의 기회입니다.
그 전에는 다른 남직원 결혼식에서 가족이 늦게 오는 바람에 20분 정도 신랑측 가족이 되어 봉투 받고 식권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결혼시작 1시간30분 전부터 앞 순서 접수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저쪽에서 관망하고 있다가 신랑 입장하면 1시간 남았지만 곧바로 접수대를 접수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신랑의 형님조차도 늦게 오셨습니다. 나중에 도착한 신랑이 크게 당황하기에 걱정 말라면서 접수상황을 인계했던 것입니다.
동장을 떠난 후에도 생연4동 어르신 칠순잔치에 가서도 역시 식권을 나누어 드리고 부족한 식권을 사무실에서 받아와 공급하는 등 예식장 도우미, 사무장 역할을 열심히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크게 좋아하시고 형제처럼 동생처럼 대하십니다. 어르신들이 순서를 기다려 인사를 하십니다. 동장 잘 지내느냐 안부를 물으십니다.
한번은 칠순잔치에 갔는데 자녀들이 어머니와 기념사진을 찍느라 손님접대를 하지 못합니다. 뷔페 직원들은 알콜에 불을 붙여서 맛있는 음식향을 피워줍니다. 그래서 나섰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식사를 시작하십시오. 우르르 몰려나가는 손님들을 본 칠순 어르신의 장남이 달려와 참 잘했다 합니다. 고맙다고도 했습니다. 나서기를 좋아해서 공무원 서기도 하고 서기관도 했나 봅니다.
소통은 마음이 통하는 것인데 식권을 나누어 드리는 일을 내가 해도 되나 안되나를 고민조차 하지 않고 즉석에서 필요하면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청년시절부터 상가에서 음식을 나르던 분이 장년이 되어 도의원을 하고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초심 그대로 국수를 날랐던 분의 이야기를 1992년에 들었고 그해에 그분을 만났습니다. 변하지 않는 초심이 이세상을 살아가는 무한의 경쟁력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