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만, 특별한 사건(?)이 있어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 오전 10시경에 관내를 순찰하는데 젊은이 한사람이 온몸이 흙 범벅이 되어 추녀아래 누워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다가가 보니 옷에 흙이 묻었고 얼굴에는 피가 나서 T-셔츠가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이 사람을 깨워서 동사무소로 데려가 얼굴을 씻기고 나니 정신을 조금 차리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합니다. 어제 저녁에 어디에선가 저녁을 먹으면서 술 한잔을 하였고 이제 정신 차려 보니 지갑은 없어지고 온몸이 피투성이 먼지투성이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들어보니 안보아도 비디오입니다. 무전취식을 하였거나 불량배를 만나 얻어 맏고 지갑을 강탈당한 후 밤새 길바닥에 누워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 입니다. 1983년경 연말 회식을 마치고 선배님 모셔드린다고 함께 나섰다가 수원 연무동을 방황하다가 어느 청년의 자가용에 태워져서 매탄동 아파트까지 공수되어 살아난 젊은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신이 목숨을 구해준 그 청년에 대한 은혜를 이 사람에게 갚으라는 계시가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늘 부채를 진 기분으로 살아왔는데 이참에 그 채무를 조금 갚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습니다. 물론 동장이라는 공무원이라는 사명감도 조금 작동된 것 같습니다. 사무관 초임이면 공직관이 어느 정도 성숙되는 시기이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수원 아주대 인근의 어느 카센타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집이 수원이라고 하자 한번 차가지고 오시면 싹~ 정비를 해 주겠다고도 했습니다. 수원까지 갈 차비를 주고 명함을 준 후 돌려보냈습니다. 고맙다고 멀쩡하게 인사 잘하고 돌아갔습니다.
한 달이 지났습니다. 당시 019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동장님! 저 지난번에 차비 주셔서 집에 갔던 아무개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네, 여기 의정부 경찰서입니다. 제가 여기 유치장에 있는데 저를 좀 빼내주셨으면 합니다.
세상에, 지난번 도움에 대한 감사전화가 좀 늦게 온줄 알고 받았는데 이번에는 경찰서 유치장이랍니다. 무슨 전생의 인연인지 지금 60이 가까운 나이를 먹었지만 평생 처음 유치장에 가게 되는 순간입니다. 의정부 경찰서는 오래된 건물이어서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사람이 들어있는 유치장이 어둡고 칙칙했습니다.
공중전화가 유치장 철문 옆에 붙어있으므로 경찰관이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어 송수화기를 창살 틈으로 넣어주어야 통화를 하는 구조입니다. 드라마나 방송에서 본 유치장을 상상하면 안 될 일입니다. 물론 1998년, 20년 전의 경찰서 유치장이니 지금보다는 좀 부족하다 하겠습니다만 그 당시에 처음 본 유치장에 대한 추억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담당 경찰관을 면담하니 이 사람과의 관계를 묻습니다. 한 달 전에 생연4동 관내에 쓰러져 있어 씻기고 차비주어 보낸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찰관은 비아냥은 아니고 존경도 아닌 표정으로 '동장님 참 대~단하십니다'라면서 인후보증인에 서명을 하라 한 후 내보내 주었습니다. 어제저녁에 무전취식한 9만원은 집에 가서 이 젊은이가 송금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밖으로 나와서 보니 흰색 T-셔츠가 붉은색으로 변했습니다. 2002년이었다면 붉은 악마라 했을 것입니다만 아직 월드컵 4년 전의 일입니다. 이 청년이 월드컵 붉은 악마 유니품의 창시자라 할 수는 없겠지요? 참으로 황당합니다. 함께 간 김 주무관에게 옷을 한번 사오라 해서 갈아입히고 또다시 차비를 주어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고는 이내 돌아갔습니다. 이 청년과의 인연은 이것으로 마감입니다.
다만 며칠 후에 궁금하여 아주대 인근에 있다는 카센터에 전화를 하니 형수되시는 분이 받습니다. 안부를 물으니 잘 있으며 별도로 할 말은 없다고 하십니다. 이른바 내놓은 삼촌이라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연락은 하지 않았고 전화가 오지도 않았습니다. 지금도 어느 서류철에 당시 적어준 전화번호와 이름이 남아있을 것입니다만 은혜를 갚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스토리는 동두천에서 양주 남면으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생연3동과 우리 4동 경계선 골목에 청년이 누워있습니다. 차를 타고 시청에서 돌아오는 길에 발견했습니다. 함께한 동료는 누워있는 모습을 보건데 약간 경계선으로 나누면 이분의 몸이 3동쪽에 더 쏠려있는 듯 보인다면서 그냥 가자고 합니다.
공무원의 자세가 아닌 줄 생각한다 말하고 우리가 잘 보호하고 케어하자 했습니다. 자는 사람을 깨워서 집을 물으니 양주군 남면 어디 목장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즉시 차에 태워서 남면으로 달렸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목이 마르다고 하므로 슈퍼가게 앞에 차를 세우자 청년은 "환타환타~~~"를 연호합니다. 이 와중에 음료에 나름 선호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래서 길바닥 청년에게 환타를 사주고 우리는 보리차물을 사서 마시면서 목장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주인의 말씀을 들어보니 목장에서 목부 보조로 일하는데 가끔 힘이 든다며 가출을 해서 며칠 근동을 배회하다가 돌아오곤 한답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수많이 들의 삶속에 아픔이 참 많은 듯 보였지만 또한 그래서 전에 생명을 구해준 신세를 조금이나마 갚으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계기를 만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