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도르마무 채소.
살 때마다 가장 돈 아까운 채소를 꼽자면 단연 '상추'다.
사온 상추를 세척하다 쓸만한 부위만 남기고 잎을 하나 둘 떼어내다 보면, 처음의 절반만 남는 기적.
심지어 그 절반도 다 못 먹고 버리는 결말.
이런 도루마무 도돌이표를 몇 년을 되풀이하다 '화분텃밭'에 상추를 심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봄이면 화원 근처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상추 모종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어째서인지 이 나라 화원에서는 모종들이 흔하지 않다.
간혹 나오는 모종을 기다릴 수 없으니, 주로 화원이나 마트에서 씨앗을 사다가 화분에 뿌린다.
상추는 발아율이 높고 성장이 빠른 편으로 알려져 있지만 파종 후 최소 3개월은 지나야 마음에 차는 크기로 자라난다.
한 번이라도 수확한 뒤로는 성장세가 주춤해지기 일쑤라 비료와 물을 자주 챙겨줘야 한다.
굴곡진 잎의 생김새 덕분에 세척할 때 앞뒤의 흙을 잘 제거해 주어야 배앓이를 하지 않으니, 키울 때나 먹을 때 모두 '물'은 상추와 뗄 수 없는 요소이다.
또 상추 수액을 얼마나 빨아먹은 것인지 가늠도 안되게 통통하게 살이 찐 진딧물들과의 싸움도 만만치 않고,
제때 수확해 주지 않으면 기다랗게 키만 자라나고 이내 꽃대가 올라와 버리기에, 상추와의 눈치 게임도 쉽지 않다.
아무리 상추가 키우기 쉽다 하지만 정성이 안 들어가는 채소는 절대 아니다.
잘 자란다고 방심하고 내버려 두면 안 된다는 의미.
다른 잎채소들이 그러하듯, 상추도 물이 가장 중요한 성장 요소이고, 집사의 관심을 영양제 삼아 자라난다.
초록잎이 나풀거리는 상추잎은 수확하는 재미가 가득한 채소다.
큼직한 화분이 마땅치 않아서 알록달록한 공간 박스에 줄을 맞춰 심어 두었더니 옹기종기 모여 자라며 보드란 잎사귀를 키워 낸다.
'조금 이른가?' 싶을 때 가장자리 잎부터 수확하면, 가벼운 샐러드를 만들기에 알맞다.
간장을 조금 곁들인 상큼 짭짤한 샐러드가 밥상에 올라가면 고기반찬의 유무와 상관없이 입맛을 돋우는데 그만이다.
상추잎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라나면 쌈채소로 활용하는데,
화분텃밭에서 바로 수확한 상추의 신선도를 따라올만한 채소는 흔치 않다.
소쿠리에 가득 담아 부엌으로 가져오면 괜스레 부자가 된 듯 웃음이 난다.
ai 이미지 같은 이 비주얼을 무엇으로 대체하겠는가?
세척의 번거로움은 금세 잊고 어느새 소쿠리가 넘치도록 수확해 버리곤 한다.
상추를 수확하는 날에는 강된장과 삼겹살이 식탁에 오른다.
네모 네모 한 모양으로 각을 잡아 썰어낸 양파, 애호박, 두부, 그리고 구하기 쉬운 골뱅이를 곱게 썰어 다슬기를 대신해 준다.
다슬기보다 식감이 부드러운 골뱅이는 한국에서야 강된장 재료가 될리 없지만, 식재료의 수급이 제한적인 해외에서의 삶은 대체재를 찾는 것이 일상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강된장과 골뱅이는 의외로 그럴싸한 조합으로 요리가 된다.
국물이 자작하게 끓여낸 구수한 강된장에, 앞뒤 노릇하게 챡챡 구운 삼겹살을 화분에서 키워낸 상추와 함께 먹는다.
상추쌈이 하나, 둘 입으로 들어갈 때마다 소주를 한 잔 곁들여야 하나 내심 고민하게 된다.
먼 나라에 살지만 이렇게 한국 정서 가득한 상을 차려내면 단출한 부부의 식탁에서 고향의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상추 하나로 이런 소꿉놀이 같은 재미가 생긴다.
화분텃밭에서 상추를 키울 때는 여러 종류를 섞어서 재배하고는 하는데, 더러는 수확기가 겹치기도 하고, 종류마다 텀을 두고 키워내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상추'라는 큰 틀 안에서 그 식감과 맛이 다른 종을 즐길 수 있기에, 먹는 재미가 풍성해진다.
상추는 햇빛을 좋아해서 오전 일찍 물을 흠뻑 주고 일조량이 풍부한 곳에 위치해 둔다.
진딧물 말고는 별다른 병해충도 없고, 벌레들에게는 씁쓸한 맛 때문인지 사악한 민달팽이도 오지 않는다.
이 녀석의 가장 큰 적이라면 물부족과 진딧물 정도일 것이다.
물 관리는 식집사가 항상 하는 일이고, 진딧물을 제거하는 것은 통풍이 잘 되도록 하단의 잎을 자주 제거한 후 찬물 샤워로 벌레를 떨궈주는 정도로 관리가 가능하니 예민보스인 다른 식물들에 비해서는 식집사의 노고가 덜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수확기가 완연해지고 주말 아침마다 상추잎을 뜯어내다 보면 상추는 거름을 필요로 한다.
주로 계분과 겨, 부엽토를 섞은 웃거름을 추가해 주는데, 더러는 액비로 부족할 수 있는 영양소를 더해준다.
물방울이 송송 맺혀있는 상추잎을 찬찬히 살펴보다 누렇게 시들거나 바람과 물에 꺾여버린 잎들은 제거해 주는 것도 필수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영양을 보충해 주고, 매일 아침 물을 흠뻑 주면 나머지 일은 상추 스스로 알아서 해 낸다.
씁쓸한 맛으로 자체 방어를 하며 벌레를 물리치고, 종일 햇볕을 맞으며 잎을 키워낸다.
그러다 날이 무더워지고 성장이 주춤해지면 부드러운 흙 사이에서 상추를 뽑아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잎사귀만큼이나 그 뿌리도 여리고 부드러운 상추는, 뿌리 제거도 수월한 순둥이라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채소를 위해 자리도 쉽게 내어준다.
더러는 상추자리에 양배추나 배추 같은 잎채소로 채우기는 하지만, 상추가 잘 자라던 자리는 일정기간의 휴지기를 거친 후에 다시 상추로 채워내는 일이 흔하다.
나름 상추 명당이었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상추를 심었을 경우, 일조량이나 환경 문제로 성장이 더뎠던 경험이 있어 생겨난 습관이다.
우기철이 다가오고 날이 험해지면 화분에 직파하던 상추 씨앗은 모종판에 자리한다.
의외로 모종판에서 새싹을 관리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어설픈 식집사인 나는 좋아하지 않는 일이지만,
세숫대야로 퍼부어버리는 듯 한 이 지역의 장맛비를 이겨내려면 별수가 없다.
모종 기간을 통해 어린 상추의 몸집을 키워놔야 정식 후에도 극한의 날씨를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키워낸 상추는 다시 우리 부부의 식탁으로 돌아오는 순환 과정을 거치다가 지인들의 집으로도 보내지는데, 내가 키운 채소와 과일들을 지인들과 나누는 과정에서의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은 이 재밌는 취미 생활을 끊을 수 없게 한다.
언제나 그렇듯 직접 키워 세척한 잎채소를 먹으면 직접 키워낸 식집사도, 그것을 맛본 지인들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이곳에서도 다양하고 싱싱한 수경재배 채소들이 마트 야채코너를 채우고 있지만, 그 맛은 집에서 키워낸 것과 같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부활절 연휴가 오기 전에 처음 시도해 보는 종류의 상추 씨앗 파종을 할 생각이다.
상시 키우던 종류의 상추들과 더불어, 외국에서 온 것이 분명한 모습을 한 상추들을 섞어 심어 화분텃밭에 다양한 얼굴을 더할 예정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재밌을지 눈에 선하기에 더 셀레이는 선순환이 계속된다.
나의 '화분텃밭'에서 자라나고 있는 모든 식물들은 나의 노고 0.2%와 99.8%의 운으로 자라난다고 생각한다.
날이 좋아서, 흐려서, 더워서, 그리고 비가 내려서 만들어진 수천만 번의 우연과 운이 겹쳐진 후에 내 식탁으로 오기까지 그 모든 모습과 과정을 함께해서 즐겁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결과를 내어 줄지 알면서도 모르겠는 이 독특한 관계가 오래도록 유지될 듯싶다.
https://www.youtube.com/shorts/a10tVQG7m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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