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시끌시끌하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의 말소리뿐만 아니라 웃음소리까지도 시끌시끌해진다.
“엄마! 저, 오늘 새 책 받았어요! 공책도 새로 사 주세요!”
작은 아이가 책가방 가득 새 책을 짊어지고 와서는 소리치고 있다. 그 큰 목소리는 여러 의미가 있다. 오늘 새 친구들이 많이 생겼고, 재미있었던 일들을 말로 다 못하니까 잘 알아서 들으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우리 아들들은 수다스럽지 않다. 나 역시 수다스럽지 않은 엄마다. 아이들은 수다스러워지고 싶을 때면 크게 껄껄댄다. 큰 웃음소리는 무슨 말을 해도 내 웃음을 막지 못할 정도로 기분이 좋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딸들이라면 아무리 많은 이야기일지라도 재잘거릴 테지만 우리 아들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목소리로, 웃음소리 크기로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 낼 뿐이다. 그래서 나 역시 아이들과 함께 큰소리로 웃어 주는 것으로 아들들의 말을 듣는다. 나는 아이들이 받아 온 새 책들을 정리했다. 새 책이 들어오면 그 만큼 버려야 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책장 안에서 그 간 썼던 공책이며, 이것저것 버려야 될 스케치북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보관하고 싶은 그림들은 따로 선별한다. 버려야 할 공책들을 한 번 펼쳐보았다. 아이들이 써 놓은 글자들이 시끌시끌해 보였다. 아들들의 글씨는 얌전히 칸 안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삐뚤삐뚤한 것이 아이들의 들썩거림처럼 보이고 있다. 버릴까 말까 하다 몇 권을 다시 주워 담는다. 스케치북도 정리했다. 스케치북 안의 그림들도 역시 시끌시끌해 보였다. 아이의 그림에는 학교 풍경화, 축구하는 운동장, 산과 나무를 그린 풍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난 유난히 아이들 그림을 좋아한다. 직접 그려대는 것에는 별 재주가 없어서 인지 내 눈은 펼쳐진 그림에 번뜩인다.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리기 시작한 스케치북을 모으고 있다. 아이들의 그림 속에 늘 변하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있다. 푸른 하늘 위에 흰 구름, 시냇가에 물고기, 둥글둥글한 산과 초록색 나무들이다. 왜 다른 것들은 그리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림을 잘 못 그린다. 어릴 적 나 역시 그려대는 것은 몇 가지 정해져 있었다.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산과 나무 그리고 파란 하늘위에 흰 구름을 그렸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림과 조금 다른 것 같다. 내가 그린 산과 나무는 반듯하게 색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풍경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산과 나무는 시끌시끌하다. 나무를 칠한 초록색 물감과 크레파스는 삐뚤삐뚤하다. 하지만 나는 삐뚤거리는 색칠에서 아이들의 수다가 들리고 있다. 수다스럽지 않은 수다가 물감위에, 크레파스 위에 잔뜩 묻어 있었다. 아이들의 입은 조용히 색을 칠할 수 없을 정도로 참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입이 참을 수 없었던 것처럼 붓을 잡은 손도 참지 못하고 시끄럽게 색칠했던 것이다. 산에게, 나무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이가 오는 소리는 시끄러운가 보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말이다. 커가면서 아이들이 알게 되는 단어도 늘어난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써 먹을 요량인지 늘 시끄럽다. 물어보는 것도 많고, 내가 하는 말을 꼬짓꼬짓 캐묻다. 그럴 때면 말수 적은 나는 정말 귀찮다고 그만하라고 한다. 내가 들어주지 못할 때면 그림을 가만히 두지 않는 것 같다. 급하게 말을 걸 듯 급하게 색을 칠하다보니 아이들의 그림은 삐뚤빼뚤 엉망이다. 작은 아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모두 말을 해야 될 친구로 생각하는가 보다. 책장에서 버릴 것들을 치우고 있는 사이에도 아이는 시끌시끌하다. 아이가 화분 속에서 기어 나온 개미를 붙들고 중얼대고 있다. 나는 얼마나 중얼거리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엉덩이를 높이 치켜들고 기어가면서 개미들을 붙잡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개미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다고 하니?”
“창문 밖에서 사탕 냄새가 나서 왔대요!”
“뭐라고? 하하하!”
우리 집에는 사탕이 없었다. 사탕 냄새는 바로 아이의 냄새일 것이다. 아이의 몸에서 나는 단내를 맡고 개미가 어딘가 있는 작은 틈새로 들어왔을 것이다.
아이들이 나이를 먹는 소리는 시끄러운 만큼 귀엽고 예쁘다. 그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이는 그 눈이 귀엽고 예쁘다. 들리지 않는 것까지 듣는 그 귀가 귀엽고 예쁘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것과도 쫑알쫑알 대는 그 입이 귀엽고 예쁘다. 아이의 모든 것이 다 귀엽고 예쁘다.
나는 바짝 하늘로 솟은 통통한 엉덩이를 한 대 두들겨 주었다.
요 예쁜 것이 내년이면 어떻게 변할까? 또 무슨 말들을 그 입에서 할까?
이렇게 아이들에게 나이는 시끄럽게 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오는 나이는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하다. 올 때도 조용히 오지만, 갈 때도 조용히 간다. 언제 오고, 갔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이 먹는 것도 모르고 있다. 요즘은 누군가 나이를 물어보면 생각이 잘 나질 않는다. 남편의 나이도 조용히 오는가 보다. 갈수록 남편도 말수가 줄어들고 있다. 우리 부부는 조용하다. 남편과 나의 조용함은 얼마나 오래 가는지 간혹 시끄러운 시험을 치룬다. 바로 싸움이다.
신혼 때 아이들은 정신없을 정도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 때 우리도 지긋지긋 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싸움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줄어들었다. 요즘은 거의 싸우지 않는다. 싸우는 날을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시끄럽게 싸워대던 그때는 정말 살기 싫었다. 모든 게 싫었다. 남편이 싫었고, 아이들도, 세상 모두가 싫었다. 어른들을 말씀하셨다. 그럴 때가 바로 어렸을 때라고! 지금 와 생각하면 내가 어렸던 것 같다. 어리다고 생각하는 만큼 남편에 대해서 아이들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소리 높여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좀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자기 좀 알아달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많이 자라야 되는 나이는 시끄러운가 보다. 많이 싸웠을 때 남편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남편도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때 많이 자랐던 것 같다. 왠지 시끌시끌했던 그 때가 그립다. 왜 그렇게 많이 싸웠는지 웃음이 나온다. 지금 아이가 개미를 보면서 쫑알쫑알 대듯이 그렇게 시끄러웠다면 좋았을 것을!
모두에게는 나이가 있다. 가버린 나이는 곧 남아있을 기억이 된다. 어떤 기억은 오랫동안 시끌시끌하게 입속에 남아 있지만 어떤 것은 금방 사라진다. 나는 아이의 지금 모습들이 내 입속에서 오랫동안 남아 있었으면 한다. 시끄럽게 떠들고 장난치는 모습들을 오랫동안 내 입속에서 남아 있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어른이 되면 내 입이 시끄러워지길 바란다. 하지만 남편과의 싸웠던 기억들은 내 입속에 남아 있지 않다. 아니! 차마 입에 담아두기 싫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의 싸웠던 일들을 친구들에게도 잘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 둘 남아있는 것들이 줄어들고 있는 나이가 되니 그마저 사라질까 아쉬워지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남겨질 모든 기억들은 입속에 담아두고자 한다. 그 기억이 좋든, 싫은 것이든 모두 담아두고 싶다. 내 생각대로 될 것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영원히 담아 두고 싶은 기억도 점점 옅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먹는 나이에는 속으로 삼켜 사라지는 망각함께 담아두고 싶은 기억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망각을 넘어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옅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그렇게
있는 것이다. 씹어 삼키지 않고 그대로 담아두고 싶은 시간인 것이다.
점점 시간은 내 살 속으로 파고 들어오면서 주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어디 내 살 뿐이겠는가!
시간은 나보다 남편의 살을 더 좋아하는 가 보다. 남편 살 속을 얼마나 파고 들어왔는지 남편의 주름이 부쩍 늘었다. 어깨도 많이 쳐지고 있다. 그 모습이 안쓰럽다. 시름을 혼자서 지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미안하다.
내가 어찌해야 되는가?
오늘 저녁은 김치전에 막걸리로 달래주고 싶다.
‘자기야! 사랑해~ 우리 건강하게 웃으면서 살자!’
그러면 남편의 굵은 주름이 환해질 것이다. 그리고 남편은 막걸리 한잔을 들고 시끄럽게 말 할
것이다. 나는 그런 남편의 말들을 담아 둘 것이다.
입속에, 가슴속에 오래오래 담아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