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綠)

by 채선후

점(點)은 작은 흔적이다. 그 간 흔적이 마지막 용트림 되어 끄트머리에 점(點)을 찍는 것이다. 자신을 다 하고 용트림하듯 마침 점을 찍을 수 있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게 찍은 점은 녹(綠)이 된다. 녹(綠)은 서서히 제 살을 부수어 간다.


올 봄. 파란 잎들이 넓어지기 시작할 때 그 규모를 자랑하던 유람선 한 척이 팽목 앞 바다에 멈춰 섰다. 그리고 수백의 사람들을 태우고 서서히 바다 속으로 잠겨 갔다. 세월호는 그렇게 팽목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수학여행 길에 오른 수 백 명 학생들도 따라 잠겨 버렸다. 철선 한 척으로 푸른 생명들이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아직 제 잎이 얼마나 넓은지 펴 보지도 않은 어린 싹들이라 안타깝기 그지없다. 참으로 수많은 안쓰러움으로 찍은 어린 마침표! 그 마침표는 그들 스스로 찍은 것이 아니기에 그 안타까움은 참으로 크다. 팽목은 그러한 점들이 찍혀 있는 곳이다.


녹! 녹! 녹! 철은 빈틈이 생기면 녹이 슨다. 간수(看守)에 게을러 물을 제대로 닦지 않는다든지 하면 녹(綠)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녹(綠)은 제 몸을 차츰 부수어 간다. 세월호는 점점 녹(綠)이 되고 있다. 녹(綠)은 많은 빈틈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빈틈 말이다. 철은 녹으로 마침 점을 찍을 수 있다지만 사람 일도 그와 같을 수 있다고 보기에 참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무더위가 한 점을 찍을 무렵 이곳, 진도로 이사했다. 이사 한 곳이 팽목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동네이다. 지난 4월부터 언론을 뜨겁게 달군 팽목. 그곳이 늘 궁금하였지만 선뜻 발길이 돌려지지 않았다. 주말에 모처럼 마음먹고 팽목 등대가 보이는 산언덕에 올랐다. 작은 섬들은 둥그런 점이 되어 푸른 물결 위에 떠 있었다. 나는 천천히 팽목 저 너머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저기 어디쯤에 철선이 잠겨 있을 것이다. 눈앞에 고운 점을 그리고 있는 섬들 저 너머 수많은 사람들의 고뇌가 된 세월호는 고철덩이가 되어 누워 시뻘건 녹물을 뿜어내고 있을 것이다. 푸른 가을이 물결 따라 잔잔히 흐르고 있는 가을 오후.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만 한 팽목이었다. 허나 물결은 어린 수많은 눈물이 되어 반짝이는 듯 했다. 유족들의 애끓는 눈물. 그 눈물들이 뿌려진 곳인데 마냥 유랑자처럼 감상만 할 수는 없었다.

단풍 색이 짙어지고 있다. 그 아름다운 빛이 물결 위로는 차마 내려앉기 싫은 것처럼 푸른 바다 빛은 슬퍼 보였다. 이미 바다 속으로 스러져간 생명들을 두고 어찌 말을 해야 될지 안쓰러움도 짙어졌다. 팽목에 흐르고 있는 녹(綠)이짙어지려 했다.


팽목. 세월호 사건이 어찌 팽목만의 일이겠는가. 역시 팽목에 흐르고 있는 녹이 팽목만의 녹이겠는가. 팽목은 우리 모두의 땅이기 때문이다. 팽목에 흐르고 있는 슬픔 역시 우리 모두가 품어야 할 슬픔이다. 그러니 거두는 일에도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거두라 하니 돈을 쥐어 주라는 뜻이 아니다. 요즘 세월호 보상금 문제로 한창 시끄럽다. 세월호가 출발하기 전 과적한 것도 따지고 보면 돈 때문이었고, 해결책을 두고도 시끄러운 것도 돈 때문이다.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마치는 이와 같은 일들이 짙은 녹이 되고 있는 요즘. 가슴까지도 돈으로 얽어매어 버린 현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우리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녹(綠)일 것이다. 솔직히 마음이나마 진심으로 유족들을 위로하기도 겁난다. 진심도 돈과 엉켜 바라볼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이 녹슬어 가는 소심한 내 자신을 들키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고 있다.


마침표는 또 다른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스러지게 하고 있는 녹(綠)을 단도리 해야 할 때이다.눈으로 보는 것, 귀로 듣는 것, 입으로 말하는 것, 손과 발로 만나는 모든 인연들에 녹(綠)을 묻히고 있는지 스스로가 점검해야 할 때이다. 그간 우리 스스로 흘린 탐(貪), 진(嗔), 치(癡)로 녹슬게 한 것들을 같이 벗겨내야 한다. 그래서 더 맑고 맑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녹(綠)으로 수 백 명 귀중한 생명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더없이 반짝이고, 넓어져야 어린잎들까지 녹슬게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아이들이 이 시대를 더욱 빛내는 녹슬지 않는 범람과 같은 그릇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길을 터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흔적이 크나큰 용트림이 되도록 스스로를 단도리 해야 할 것이다. 두 번 다시는 우리가 흘린 녹으로 아이들에게 마침 점을 찍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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