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蛇嶺)

by 채선후

나는 아침이면 길에 있다. 애들 학교가 읍내다 보니 좀 멀다 싶은 길을 운전한다. 운전 실력도 그리 좋지 못해서 줄곧 앞만 보고 달린다. 그래서인지 무엇이 있어도 잘 보지 않게 되고, 보았다 한들 기억이 나지 않는 편이다. 집에서 자동차로 오 분 남짓 달리다 보면 산 아래턱이 볼록하게 튀어나오고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 연달아 이어지는데, 사령(蛇嶺)이다. 죽음이 많은 고개인가 싶어 지나다닐 때마다 긴장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蛇)’는 뱀을 뜻하는 말이었다. 옛날엔 뱀이 많았던 고개였는가 보다. 어찌 보면 사령(蛇嶺)부터 야트막한 산들이 뱀이 기어가듯 이어진다. 길도 똑바로 펴지지 않은 뱀 허리를 닮았다.

봄이건만 쌀쌀하다. 논밭은 아직 겨울을 간직하고 있다. 논두렁은 쥐불을 놓았는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꾸불꾸불 기다랗게 늘어진 것이 정말 뱀 허리 같았다. 지난 가을 배추 밭에 있던 물 호스도 그랬었다. 사령 길을 지나면서 작년 배추 심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가을볕이 화려했었다. 난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싫다. 가을이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 그런데도 배추 심는 날이면 왜 그리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은지 모르겠다. 도서관 핑계를 대고 싶어도 일손 부족한 농사일에 그럴 수도 없고, 이상하게도 모든 상황이 배추를 심게끔 돌아가고 있었다.

배추 심는 날이면 더욱 늦장이다. 일부러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자꾸만 꼼지락거리게 된다. 모방 마루에 걸터앉았다. 장화를 댓돌 위에 놓고, 바짓가랑이를 구겨 장화목으로 집어넣었다. 장화는 헐렁거렸는데 왜 이리 더디 들어가는지. 어머니가 쓰시던 챙이 넓은 흥농 농약 모자를 썼다. 느그적 밭으로 향했다. 이미 동네 어매 몇 분이 심고 계셨다. 아버님이 동네 사람을 맞췄다고 했는데 어매들이 일하러 온다는 뜻이었는가 보다.

배추밭에 쏟아지는 가을 햇살은 다 되가는 연탄불 같다. 밑동은 다 타고 윗동만 달랑달랑 남은 연탄 위에 마른 오징어처럼 허리가 오그라든다. 배추밭에선 모두가 둥근 모양에 스티로폼 재질 의자를 허리띠처럼 찬다. 앉으면 엉덩이 밑으로 의자처럼 놓아진다. 그러면 배추 심을 때도 허리가 덜 아파서 요긴하다. 배추밭에서는 철퍼덕 앉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 손은 점점 기계가 된다. 호미로 흙을 한 번 긁어내고 그 자리에 어린 배추모를 놓는다. 그런 후 흙을 위에 덮어 다독인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니 속도가 붙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심다 보면 아프다는 말을 놓치게 된다. 그러다 정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오면 그때서야 어매들은 소리를 한다. 입은 노랫가락을 따라 합창하면서도 손은 재빠르게 호미로 흙을 파고, 어린 배추를 넣고, 흙을 덮은 후 눌러주는 동작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다. 한 고랑을 한 사람씩 맡아 심는다. 내가 제일 가장자리 자리다. 제일 늦게 왔기 때문이다. 어매들은 벌써 긴 고랑 반을 넘게 심고 있었다. 난 이제 겨우 두 걸음 정도 심었는데 허리가 아파왔다. 모두가 아파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노래를 더 크고 빠르게 불렀다. 노래가 지치면 말끝마다 염병을 크게 내뱉는다. 염병하네! 염병도 성에 안차는가 보다. 지랄은 더욱 컸다. 누구네 집 아들 오면 김치도 주지 말라는 말을 하면서 지랄 염병을 연달아 내뱉는다. 유독 컸다. 배추 모가 줄어들 때마다 흙 긁어대는 호미 소리와 목청껏 질러대는 지랄과 염병하네 소리는 커진다. 귀가 다 아팠다. 발끝이, 쭈그린 허리가, 흙바닥 긁어대는 팔이, 점점 온 몸 전체가 아파왔다. 차마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매들처럼 ‘염병하네’ 이 소리는 따라 하지 못했다. 아버님은 내가 허리 펼 때를 알고 계셨는가 보다. 허리가 끊어질 정도가 되자 부르셨다.

“아가! 저기 양수기 모터를 잠그고 오너라.”

“예.”

아이구 소리가 나올 뻔한 입을 꽉 다물며 천천히 허리를 폈다. 펴지질 않았다. 숨도 뱉어지지 않았다. 허리를 꽉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따갑고 마른 볕이 쏟아졌다. 나는 밭 끝까지 가야 했다. 아버님 장화는 커서 걸을 때마다 저벅저벅 거렸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물 호스는 원을 그리며 총을 쏘듯 물을 쏴댔다. 점점 물총에서 멀어졌다. 허리가 펴지고 있었다. 허리가 거의 다 펴지려 할 때 잠깐 고개를 숙였다. 순간 화들짝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커먼 뱀이었다. 여태 보지 못한 뱀이었다.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죽음이란 단어가 스쳤다. 미친 듯이 소리쳤다.

“어-머나! 뱀이야! 뱀!”

눈앞에서 죽음을 직감했는데 등 뒤에서 걸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매들은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다. 죽음까지는 아닌가 싶어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시 눈을 크게 뜨고 한 발짝 가까이 갔다. 아이 팔뚝만할까. 굵다랗고 시커먼 것이 늘어져 있었다. 또 한 발짝 다가섰다.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순간 눈이 찔끔거렸다. 바늘 구멍만한 틈으로 터져 나온 물줄기가 눈덩이를 간질거렸다. 뱀이 아니었다. 물 호스가 샌 것이다. 죽음이 물 건너갔다.

양수기 물을 잠그고 오면서 배추밭을 보았다. 어매들이 보이지 않았다. 밭이 밭을 심고 있다고 해야 될까. 그녀들 손이 밭이었다. 어매들은 여전히 배추를 심고 있었지만 흥농 모자만 고랑마다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평생 아픔을 흥농 모자로 누르고, 흙으로 덮으며 어매들은 밭이 되어 가고 있었다. 호미 끝이 닳아지도록 뭉친 흙을 으깨어 어린 배추 모를 다독여 배추로 키워낸 그녀들이지만 밭을 벗어나면 누구도 북돋아 줄 이 없는 싸늘한 시집살이일 뿐이니까. 배추 밭은 그녀들에게 자신의 아픔을 뭉개어 스스로 거름이 되어 뿌리는 곳이었다. 밭은 등골이 구부러져도 내뱉지도 못한 아픔이 녹아 흐르는 언어였다. 자신의 아픔을 스스로 호미 끝으로 뭉개며 식구들에게 거름이 된 언어가 바로 배추밭이었다.

사령(蛇嶺) 길에서는 배추밭이 보이지 않는다. 올 가을엔 배추를 심지 않을 거란 아버님 말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저 번 어느 날인가 다 갈아엎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배추를 심으려면 한참 멀었는데, 허리는 벌써 뱀처럼 구부러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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