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거품을 위해서

by 채선후

꿈을 꾸고 있을 때는 무언가 다가와도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사랑을 꿈꾸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다가오는 사랑은 좀 깊다. 거품도 꿈을 꾸며 흘러간다. 그래서 무언가 다가와도 잘 보이지 않는가 보다. 거품은 꿈에서 좀처럼 깨어날 줄 모른다. 다가오는 것에 자신이 꺼져가고 있어도 말이다. 나는 그런 거품이 바보 같았다. 거품은 사랑을 꿈꾸고 있다지만 글쎄, 내가 보기에는 안쓰럽다. 하지만 사랑은 바보 같은 거품도 별이 되게 한다. 까만 밤하늘이 아니어도 반짝이는 별! 그렇게 별이 된 거품은 아름답다.

거품! 거품! 거품에서 사랑을 떠올리게 된 것은 이청준의『별을 보여 드립니다』를 읽으면서다. 점점 거품도 일지 않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내게도 그런 거품이 흘러왔을까 싶을 정도다. 사랑! 사랑! 사랑! 잠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에서 꺼진 거품이 안쓰럽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 거품은 저만치 큼직한 부표가 턱하니 서 있는데도 거침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바보처럼.

난 바보 같은 거품을 둘씩이나 알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인어공주이다. 인어공주는 다시 인어가 되기 위해 사랑하는 왕자를 죽여야 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결국 바다로 뛰어들어 거품이 되어 사라져갔다. 그런 인어공주를 나는 바보라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바보처럼.

또 하나 바보 같은 거품은 그 애였다. 그 애는 부표와 같았던 내 주위를 삼 년간 머물렀었던 거품이었다. 그 애는 사랑을 꿈꾸면서 흘러왔지만 받아주지 못했다. 그러다 인어공주가 바다로 뛰어든 것처럼 멀고 먼 유학행에 뛰어 들었다. 분명 떠나는 그 애 가슴에서 물거품이 하얗게 일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좀 돌아가지 못하고서... . 바보처럼.

나는 그런 거품들보다도 더 바보 같았던 부표였다. 흘러가는 물길을 막고 있었던 부표. 거품조차 일지 않았던, 아니 거품을 걷어주지도 못했던 딱딱한 부표! 별을 바라볼 자격도 없는 부표! 그런 부표였던 나는 다가오는 거품이 두려웠다. 언젠가는 터질 거품이라 해도 내가 터트리기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거품이 내게로 와서 스스로 터진다 해도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제 인어공주 이야기도 희미해져 가고 그 애도 없다. 인어공주가 사라지면서 일었던 거품은 왕자가 바라보는 어느 하늘에 별이 되어 떠있을 것이다. 그 애가 떠나면서 일었던 거품도 역시 내 가슴에 별이 되어 떠 있다. 아마도 지금 나처럼 왕자는 별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 별들은 오원이 아닌 백 원을 주고 봐야 되는 망원경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청준의『별을 보여 드립니다 』에서 생뚱맞은 녀석이 망원경을 사서 강물에 띄워버린 것처럼 나도 망원경을 강물에 띄워 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 별은 망원경이 아닌 눈물을 반짝여야 볼 수 있는 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별이 보인다. 별들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기억이 점점 까마득해지고 있는 사이 별들은 그림을 그려놓았는가 보다. 눈을 감으면 별과 함께 했던 지난 일들이 밤하늘 가득 액자가 되어 걸려있다. 별이 된 너! 이제서 그런 별을 그리워하고 있는 나! 나는 이렇게 있다. 후회 속에 너를 담아두면서 말이다. 이제 나는 부표도, 거품도 아닌 물이 되어 가고 있다. 그 물속에 별도, 거품도, 부표도 모두 담겨 흐르고 있다.

지금! 백 원쯤 낼 수 있는 녀석에게 별을 보여주라는 이청준의 목소리가 나를 움츠려들게 하고 있다. 벌써 어둠이 먹물처럼 번지고 있는 저녁이다. 이곳 도서관 건물 밖에는 하얀 눈이 별처럼 반짝이며 내리고 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백 원짜리 동전을 모두 움켜쥐고 자판기로 갔다. 가진 동전을 전부 자판기에 집어넣고 싶었다. 별들을 몽땅 뽑아볼 기세로 말이다. 커피를 뽑아 들었다. 뜨거운 커피 김이 하얀 눈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자 한 발치 뒤에서 한 거품이 또 다른 거품을 만나 같이 흘러오고 있었다. 나는 그 거품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언젠가 그들도 별이 될 것이다. 아름다운 별!

어째, 오늘은 하얀 눈이 별이 되어 쏟아지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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