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기(歲寒期)

by 채선후

봄이 갇혔다. 아침부터 굵은 눈발이 어지럽게 날리고 있다. 입춘을 지나면서 날이 포근해 봄꽃이 막 피려던 찰나였다. 산천이 꽃으로 덮이는 게 싫은가 보다. 계절의 질투가 시작된 것이다. 꽃샘추위다. 하늘은 엊저녁부터 작심이라도 한 듯 눈을 마구 뿜어내고 있다. 집 앞 파릇하던 보리밭이 하얗다. 갓 피어나던 보리 싹이 눈에 갇혀 보이지 않는다. 동네 지대가 높다 보니 차들이 오르지 못해 길가에 세워 있다. 길 한복판에 트럭이 안쓰럽다. 엔진 소리만 시끄러울 뿐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트럭도 갇혔다. 냉랭한 것은 참 많은 것을 가둔다.

육지에서는 입동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된다. 겨울은 한자로 동(冬)이라 쓴다. 추워 언다는 뜻이지만 순우리말로 머무른다는 ‘겻다’의 뜻도 있다. 겨울이 추워서 어는 때라서 머무름이 긴 계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진도는 다르다. 좀처럼 얼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 중에서 가장 춥다는 소한에도 배추는 얼지 않는다. 지금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깬다는 2월 중순인데 이렇게 한 겨울보다 더한 폭설에 꼼짝 못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진도의 본격적인 겨울은 이렇게 계절의 질투로 갇혀 있는 지금부터가 아닐까 한다. 겨울이 아니라도 어쩔 수 없이 갇혀 있어야 되는 때를 나는 ‘세한기’(歲寒期)라 하고 싶다. 어쨌든 꽃샘추위로 갇혀있는 지금이 내게는 세한기다.

하루 종일 집에 있자니 세한도(歲寒圖)의 추사 집이 떠오른다. 추사 집! 밋밋한 집에 둥그런 창문 같은 문 하나가 있다. 그 문에는 문턱이 없다. 몸이 드나드는 문이 아닌 것이다. 정신이 드나드는 문이다. 세상이 가시울타리 안에 추사를 가뒀다지만 정말 갇혀 있기만 했을까. 그는 갇혀 있지 않았다. 그가 품었던 기개와 의는 붓을 타고 화선지 위에 글과 그림으로 풀어내려 멀리 중국 땅까지 전해졌다. 앉아서 달을 만진다는 말이 있다. 비록 갇혀 있다 해도 사리가 밝아 세상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면 그것은 갇힌 것이 아니다. 반대로 몸이 이곳저곳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해도 사리가 어리석고 흐리멍덩하여 세상을 살피는 것이 둔하다면 이것은 갇힌 것이다.

그러면 세상을 자세히 살핀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대상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 같은지 다른지, 지금과 후일에는 어떤 결과가 될 것인지를 빠르게 가려서 알아내는 것이다. 세한도의 굵은 노송을 보라. 굽어진 노송이 보고 겪지 않은 것이 세상에 무엇이겠는가. 온몸을 도려내는 세찬 추위에 얼어도 보았을 것이고, 폭설로 몸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갇혀도 보았을 것이다. 또, 뿌리 저 밑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에 말라도 보았을 것이다. 불어나는 장맛비에 잠겨도 보았을 것이고, 땡볕에 겉이 타들어가기도, 살가운 볕에 꾸벅 졸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 온갖 것을 겪었을 노송이 무엇에 흔들리겠는가. 세상에 대한 분노도, 원망도 다 사그라져 있는 노송, 그런 노송은 세상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자신을 가둔 세상조차 원망보다 안쓰러움이 크다. 그런 노송 끝 가지에 돋은 싹이 흔한 싹이겠는가. 세상이 노송을 가두었다면 돋은 싹은 세상을 돋게 할 것이다.

꽃샘추위가 꽃을 가두었듯 누군가의 질투로 갇혀 있기도 한다. 그때에는 홀로 얼어간다. 고독이 문고리를 타고 가슴에 담겨 있던 세상까지 얼어붙게 한다. 가슴을 얼리는 고독한 갇힘은 바깥을 얼리는 맹렬한 추위보다 더 독한 구석이 있다. 추사의 고독도 그러했다. 하지만 추사는 얼어 가고 있는 가슴의 문을 보온 덮개로 덮었다. 그렇다고 애써 보온 덮개를 찾아다 덮어씌우진 않았다. 가시나무 울타리 안에 갇혀 가슴의 문이 얼까 싶어 닦고 닦았을 뿐이다. 얼마나 닦았는지 문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너무 크면 보이지 않는다 했던가. 그 문은 아예 텅 비어 얼릴 것도, 녹을 것도 다 사라진 문이다.

텅 비어 있음은 무엇인가. 나와 맺어진 관계로 얼고 녹는 것, 열고 닫음, 있음과 없음과 같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인식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매이지 않는다, 머뭄이 없다고 하며 허공과 같이 텅 비었다 한다. 얼 것도 녹일 것도 없는 덮개는 얼마나 큰 보온 덮개인가. 추사는 그 덮개로 오그라드는 가지 끝에 싹을 틔웠는지 모른다.

혼자 갇힌 세한기에는 많은 생각이 달려든다. 문이 있다 없다, 가둔다, 갇혀 있다, 좋다 싫다, 이런 생각은 닦아 내야 할 것들이다. 생각할수록 마음을 시리게 한다. 버려진 ‘나’, 세상이 가둔 ‘나’가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버린 ‘나’는 얼마나 처절한가. 이런 생각이 들수록 쉬지 않고 문질러대야 한다. 닦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열심히 문지르다 보면 언제인가 얼어가던 문이 스르르 녹을 것이다. 차츰 녹아 없어지게 되면서 텅 빈 고요가 덮어진다. 그 고요가 홀로 있어도 다시 얼지 않는 보온 덮개가 되어 줄 것이다. 그때에는 고독이 고독이 아닌 것이며, 갇혀 있어도 갇힌 것이 아니며, 노송이어도 노송이 아닌 것이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눈은 쉼 없이 내린다. 어둑하게 물이 든 하늘에 하얀 솜이 펄펄 날리며 세상을 덮고 있다. 마치 컴컴한 방에 목화솜 이불을 덮어 놓은 듯하다. 밖을 내다본다. 겨울이 있음으로 푸릇한 송백이 보이고, 세한기가 있음으로 갇힘과 풀어짐이 보인다. 가둔 눈, 갇힌 아침 이런 말들은 생각의 찌꺼기일 뿐이다. 그 동안 내가 뱉은 생각을 찾아본다. 참으로 많은 찌꺼기를 뱉어 놓았다. 그득한 찌꺼기가 하얗게 이불에 덮였다. 논이 하얗게 눈이 쌓였다. 바람이 세게 불거란 예보도 있다. 내일도 집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래도 좋다. 뜨듯한 이불이 데워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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