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날

#2. 죽음이라는 모자를 쓰고

by 채선후

2022.11.3. 날이 맑고 볕이 따뜻한 아침이다. 요즘 가을 볕은 노랗다. 노란 볕에 늘어져라 낮잠이 몰려오곤 했다. 파랗고 맑은 하늘아래 쏟아지는 볕이 세상 노란 꽃잎을 물들이는 거라 생각을 하면서 아침 밥상을 차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맑고 볕이 따뜻한 아침이다. 요즘 가을 볕은 노랗다. 노란 볕에 늘어져라 낮잠이 몰려오곤 했다. 파랗고 맑은 하늘아래 쏟아지는 볕이 세상 노란 꽃잎을 물들이는 거라 생각을 하면서 아침 밥상을 차렸다. 전화벨이 울렸다.

"점심 차리지 말게. 점심 약속이 있네."

여름 동안 전국일주를 했다던 00씨 내외가 내려왔다는 것이다. 난 여행이 어떠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부부 둘이 떠난 전국 여행이라 큰 돈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서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실 돈도 돈이지만 시간도 없기도 했다. 내외의 여행이 부러웠다. 두 내외에게 여행은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지금, 지금 갈 수 있을 때 떠나보자는 여행이었다. 오늘 지금 당장할 수 있을 때 다 해보자는 생각이 간절한 거다. 두 내외는 건강이 안좋았다. 부인은 방사선 치료로 머리털이 많이 빠져 모자를 썼었다. 그런 모습이 애잔하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써 웃으며 농담을 한다.

"00 엄마, 멋지네!"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전국일주 여행 소식을 들으면서 혹시 더 안좋아지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약속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곱게 화장을 하고 역시 모자를 썼다. 나는 반가워 손을 잡았다. 남편들 은 낚시와 산에가자는 말을 나누었다. 그들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손을 오래 잡았다. 남편들 때문에 만난 인연이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는 인연인 그녀. 어쩌면 결혼 후 내 삶을 보아 온 인물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눈빛에서 애잔함이 서글픔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표나지 않게 모자로 덮고 사는 거 같아 아무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병준엄마 손을 놓치 않았다. 손끝은 차가웠지만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는 말랑말랑하면서 따뜻했다. 난 병준엄마 손을 잡고 뭐라 말을 하고 싶었다. 속에서는 할 말은 많았지만 선뜩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도 몸 안 좋아지고 있다는 친구를 앞에 두고 무슨 말을 해야 될 지 몰라 그저 산이야기나 꺼냈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향도 맡지 않고 삼켰다.


사실 나도 죽어가고 있다. 어쩌면 매일 매일 '죽음'이라는 막을 수 없고 완치할 수 없는 누구라도 피해갈 수없는 병을 떠 안고 살고 있다. '암'이라는 것은 조금 더 빨리, 많은 약이 필요한 것 뿐이지 어차피 누구나 죽음은 안고 사는 것이다. 당장 내일이라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사람을 앞에 두고 나는 아무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어떤 위로를 한들 위로가 되어줄까. 크기를 셀 수 없는 슬픔이 드리운 사람에게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괜찮아질거야.' 위로한답시고 내뱉은 말은 괜찮지 않은 현실만 드러낼 뿐이니까. 병준엄마도 자신 때문에 쓸 때없는 말을 듣는 거 같아 거북할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나는 애써 커피만 들이켰고, 남편은 추워진 날씨에 산 갈 일이 걱정이라는 말을 늘어 놓았다. 그녀는 크게 웃음 띤 얼굴로 오가는 말을 들어주었다. 우리는 서로 해야 할 말들은 내뱉지 못하고 커피샵을 나왔다.


글을 쓴다는 나는, 아무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내 써 온 글들은 암덩어리와 싸워가는 그녀에게 어떤 위로가 되지 못하는 글이었다. 내가 써 놓은 글들은 그런 거 였다. 밤낮이로 글이란 걸 썼어도 가장 가까이 있는 지인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하는 그런 글이었다. 작품이랍시고 어깨에 힘만 주게 할 뿐이지 당장 누군가 닥친 큰 슬픔을 어찌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도 난 위로가 될 말 한마디 못하고 있었다.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의사를 명의라 하듯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는 못할 망정 헛헛한 가슴을 쓸어주는 글 한편으로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조금 어리다 싶은 나이에는 '죽음'은 너무나 멀리 있다고 생각했다. 멀쩡히 함께 차를 마시다 다음 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불쑥 찾아온 나이듦과 늙어감으로 생각이 많아지고 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문득 다가온 죽음의 직면을 어찌 감당하지 못해 술을 찾는다. 나이 먹고 늙어 죽는다는 것이 사는 순서이고, 지극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쉽게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마냥 지금 이렇듯 살 거 같기 때문이다. 숨을 뱉을 때마다 죽음과 가까워진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것을 모자로 눌러 쓰듯 살고 있는 지금일지라도 궂이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마냥 기다리고 있기보다 웃으며 생기를 내뿜으며 사는 것이 지금을 사는 이유일 것이다. 남편은 언제 죽을 지 모르니 실컷 하고 싶은 거 하다 원없이 죽게 잔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잔소리 하지 말아야지. 그래야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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