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날

#3. 무엇을 만나든지 길만 잃지 말자

by 채선후

밤새 비가 왔다. 회색으로 잔뜩 찌푸린 하늘이다. 며칠 환한 가을볕이 집안 깊숙이 들어왔었다.

잘 익은 고구마 속처럼 방안은 노르스름한 햇볕으로 가득 했었다. 난 그 볕속에서 낮잠이 몰려오곤 했었다. 오늘은 그런 볕이 비추지 않는다. 흐린데다 바람까지 세다. 벼 베어진 논이 축축하다. 여름에 운동삼아 뛰었던 논길이 젖어있다. 보는 것만으로 시원해 보이던 논이며 논둑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너무 싱그러운 논길에 그만 질투까지 했었다. 모든 것이 쉽게 잘 열리고, 잘 자라고 있는 거 같았다. 바지런한 주인을 만났는지 가을이 되면서도 잘 영글고 있는 풍성한 논의 풍경에 질투하는 마음까지 생겼었다. 벼들도 다 저렇게 잘자라는데 왜 나는 되는 것이 없는가. 비를 잔뜩 맞은 논을 보고 있으니 괜히 짠하다. 싱그러움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거라곤 타고 남은 잔해처럼 꺼묵꺼묵하다. 논길이며, 논이 휑하다. 참회했다. 사는 것이 다 그렇지. 어디 좋은 시절만 계속되겠는가.


며칠 독감으로 끙끙 앓았다. 가볍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입안이 다 헐었다. 잠시 갖은 질투의 심사로 얻은 결과인지 모르겠다. 사는 것이 편한 날만 계속되겠는가. 해뜰날만 이어지겠는가. 어떤 때는 병도 얻고,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다 좋은 시절 만나면 늘어진 하품에 게으른 낮잠도 자는 때가 있는 것이지. 길만 잃지 않으면 된다. 무엇을 하던, 무엇을 만나던 내가 가고자 하는 확고한 길만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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