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쌍취헌기 (최립, 간이집 2권, 기, 이상현역, 한국고전번역원)
오랜만에 고전을 폈다. 한동안 겉모습에 집착하는 일에 신경을 쓰다보니 책을 펴지 않았었다. 오늘은 반가운 마음으로 최립이 쓴 간이집을 폈다. 최립은 외교문서 뿐만 아니라 문장에 능해서 차천로(車天輅)의 시와 한호(韓濩)의 글씨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고 부를 만큼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다.
쌍취헌기는 당시 수상으로 있던 박공(朴公)이 청사 뜨락에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는데 뿌리가 엉켜 구부러진 모습이 기이하여 최립에게 청사이름을 '쌍취헌' 이라 하고 기(記)를 짓도록 하여 쓴 글이다. 최립이 두 소나무를 보고 있는데 손님으로 온 이가 이렇게 말했다.
"소나무는 예기에서는 사계절 내내 푸르고, 논어에서는 날씨가 추워도 시들지 않은 점을 아름답게 여겼고, 또, 이 소나무를 오래도록 가 가꿔 기르면 큰 집을 지을 때 쓸 수 있으니 좋지 않겠는가."
최립은 그처럼 겉모양에 집착해서 하는 말은 속물과 같다고 하며 기이한 소나무를 보면 저마다 심기를 좋아하지만 이는 기이한 소나무를 심어 하루 빨리 이름을 드날려 보고 싶은 유혹일 뿐이지 제대로 소나무를 감상하는 이는 많지 않다고 하며 이와 같이 덧붙인다.
"그러나 군자(君子)가 지향하는 바나 대인(大人)이 행하는 사업으로 말하면, 본래부터 자신의 내부에 진원(眞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 이와 비슷한 외물을 취해서 나의 영대(靈臺) 속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는 말은 아직까지 들어 보지 못하였다. 가령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든가 ‘지자요수(智者樂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산이나 물을 마침 만나게 되었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서 함께 동화된다는 말이지, 어찌 꼭 산과 물을 의지해야만 즐거워진다는 말이겠는가. 따라서 그대의 그 말 역시 상공에게 들려 드릴 이야기는 못 되는 듯싶다.”하였다. 즉,
인자가 산을 좋아하고 지자가 물을 좋아하는 것은 내면에 산과 물을 좋아할 만한 담박한 심경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 멋진 산과 물이 흥취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즉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더라고 그만한 아름다움을 품을 사람의 심지가 있어야 한다, 즉 산을 담고 강, 외물을 담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한다. 나는 더 나아가 이런 말을 하고 싶다. 느끼는 만큼 그 너머가 보인다고. 머리로 아는 만큼은 딱 그 만큼만 보인다. 하지만 앎은 넘어선 보임은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그 무언가를 던져준다. 그것이 인자에게 또는 지자에게 던져주는 산과 강의 의미인 것이다. 그 너머를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리저리 일에 쫒겨 머릿속이 복잡하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감상할 수 없는데 최립은 이렇게 말한다.
"혹시라도 임금의 뜻에 영합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거나 아래로 당파(黨派)를 결성할 마음을 지니고서, 행여 지위를 잃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끊임없이 내면을 어지럽게 한다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더라도 스스로 한가하게 여유를 지니게 되는 경우는 드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비록 소나무가 있다 한들 어떻게 제대로 감상할 수가 있겠는가."
하면서 소나무를 보더라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서 감상하는 자의 내면의 흥취를 강조하며 이런 말을 한다.
'담박한 심경으로 서재에 앉아 있으면 책 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소나무만 있을 뿐이데 이때 소나무의 곧고도 수려한 자태와 고요하면서도 아담한 색깔은 물론이요, 이따금씩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와 짙게 드리운 그늘까지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릴 적이나 바람이 불고 해가 비칠 적이나 눈이 내리고 달이 뜰 적이면 서로 더불어 분위기를 돋워 주어 보기 드문 광경을 연출할 것이니, 아무리 눈으로 많이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을 것이요 아무리 많이 귀로 들어도 번거롭지가 않게 될 것이다.' 고 말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감상인가! 이따운 불어오는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소나무와 소나무의 그늘과 안개 낀 날에도, 바람 부는 날에도 무엇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자연의 풍광과 함께 어울어진 소나무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감상하는 것이다. 작은 바람소리 놓치지 않고 올곧이 바람소리만 귀에 담아 두는 정취를 최립은 알고 있었다. 가장 작은 소리를 듣는 사람은 가장 높고 큰 것을 품을 수 있는 넓은 가슴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가는 소나무 잎 흔들리는 것에도 온전히 정성을 기울여 듣는데 나랏일은 오죽하겠는가. 쌍취헌기로 최립의 내면의 정취에 정성을 기울이는 자세를 다시 한 번 새긴다.
며칠 앓은 탓에 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따뜻한 차 한잔 들고 창밖을 본다. 어제와 다르게 볕이 깊게 들어오고 있는 오후다. 11월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아서 곧 연말이다. 남은 일 년 천천히 쏟아지는 볕과 바름을 소홀히 그냥 쏘이지 말자는 다짐을 해 본다. 마른 가을 볕이 벼 베어진 민머리 같은 논 위로 쏟아지고 바람이 넌지시 말 걸듯 툭툭 논길을 훝고 가는 오후, 나는 최립이 주는 정취에 취하고 있다.
채선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