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날 #8. 하얀 숨이 내려온다

by 채선후


눈이 온다. 수북히 쌓이지는 않았다. 논에는 군데군데 녹고 있다. 집집마다 지붕이 소금을 뿌린듯 군데군데 허옇다. 길도 가장자리가 허옇다. 눈이 오면 반갑다. 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반짝임이다. 나는 그 반짝임이 나를 마중나온 반가움처럼 여겨진다. 헤어릴 수 없는 영겁의 과거에 '나'라는 존재가 숨을 쉬며 살았던 몸들이 바람이 되고, 흙이 되고, 물이 되어 흩어졌다가 다시 지금의 '나'를 만나러 내려오는듯 반갑다. 우주에 흩어져 있던 내가 뱉은 숨들이 한송이 한송이 눈으로 내려 앉으며 내게 인사하는 듯하다. 하얗다. 참으로 하얗다. 과거, 영겁의 과거에 내가 내쉬던 숨결이 하얗을까. 하얀 숨. 하얀 영혼.


어둡고 칙칙한 하루가 환해졌다. 세상이 환해졌다. 하얀 숨이 된 눈을 본다. 세상이 하얗게 숨을 쉬고 있다. 아름답다. 나를 스쳤던 무수한 인연들의 숨을 헤아려 본다. 아!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 다 때가 되면 드러나니!


-채선후 사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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