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짜미 Jun 25. 2024

부적과 호랑이가 붙은 물 새는 집

이렇게 덜컥 사버린 집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전 이야기>

  우리는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함께 웨딩박람회라는 곳을 갔다. 웨딩 박람회란 그 안에서 웨딩 플래너, 허니문 여행, 촬영, 예물, 예단, 양복, 한복 등을 한 곳에 모아두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종합마켓이다.

  신혼여행 상담을 받으며 해외에 관한 온갖 질문에도 별 감흥이 없던 우리를 두고 고통을 받던 상담사는 우리에게 신혼여행에 대해서 생각해 둔 예산이나 기간을 물어보게 되었고 백수인 우리는 어차피 백수이기에 기간은 얼마나 가던 상관이 없다고 했다. 한 달 정도 갈만한 곳이 있냐는 우리의 질문에 상담사는 해외여행으로 한 달이라는 기간은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우린 제주도에 한 달 가는 비용을 물어봤고 상담사는 이 깊이 없는 상담의 막을 내릴만한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저희에게 그런 상품은 없어서 비용을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다른 곳을 알아보세요."


  그렇게 우리의 상담은 아무 소득 없이 '요즘엔 다들 해외로 가는구나'라는 헛헛한 마음을 품고 막을 내렸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제주도 한 달 살이라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직장 없는 백수인 우리는 결혼 준비를 하는 중이다. 그 첫걸음은 집을 구매하게 된 순간부터다. 집을 구매하게 된 이유는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결혼하면서 그래도 집은 있어야지!'라는 고지식한 생각을 가진 나의 영향이 컸다. 나는 집을 사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원룸에서 월세를 내며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아내는 아무리 원룸이라도 월세는 헛 돈을 날리는 것이니 전세를 들어가야 고정비용이 줄어든다는 의견이었다. 아내의 의견도 너무나 맞는 말이어서 딱히 반박할 수 없었지만 전세에 대해서 사기를 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많은 나는 '차라리 집을 사버리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신혼집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는 명확하진 않지만 흘려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조건들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집을 사버리자라는 결정을 내린 후 나는 그 흩뿌려진 조건들을 하나하나 끌어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조건들은 나열하자면 이랬다. 방은 최소 몇 개면 좋을 것이며, 집은 좁더라도 화장실은 두 개여야 하며, 평수는 어느 정도가 좋을지, 총세대수는 어느 정도 되어야 할지 등이다. 나름대로 정리한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가 살고자 하는 지역의 모든 아파트들을 찾아봤다. '이 아파트는 세대수가 너무 적어' '이 아파트는 층수가 너무 낮아' '이 아파트는 금액이 너무 비싸' 그렇게 추려진 두 곳. 당장이라도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처럼 다음날 부동산에 전화해서 일정을 잡고 집을 보러 갔다.


  첫 번째로 본 집은 번화가(?)는 아니지만 번화가 인 척하면서 집값을 번화가처럼 받고 있는 곳이었다. 오래된 집에 비해 노오옾은 가격이었다. 심지어 리모델링도 되어있지 않아 1부터 10까지 모두 손봐야 했다. 높은 가격에 리모델링을 맡기는 비용까지 한다면 우리의 예산이 많이 초과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내는 요상하게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했다. 요즘 어딜 가나 그렇겠지만 주차는 낮인데도 차가 가득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자니 저녁의 주차전쟁의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집을 둘러보고 나와서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 집을 사는 건 사는 건데 리모델링을 맡기는 값까지 생각하면 비용이 상당하겠는데.", "생각만 해도 주차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데 괜찮으려나". 차를 타고 이동하며 각자 생각이 많았는지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어서 우리는 두 번째 집을 보러 갔다. 두 번째 집은 올 리모델링이 되었다는 집이다. 올 리모델링이 되었다는 건 우리가 입주하면서 손댈 곳이 없기에 리모델링 비용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다. 중개사님과 함께 노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노년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지내고 계셨고 집은 평온해 보였다. 들어가서 이방 저 방을 둘러보고 아내와 나름의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 뭔가 심상치 않다. 방이 세 개인데 안방에는 곰팡이가 가득했으며 세 개의 방 중에 작은방 한 곳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으며 다른 방의 문에는 칼자국이 마구마구 나있었다. '이런데도 올 리모델링을 했다고 그 값을 받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올 리모델링을 했겠지만 손봐야 할 곳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 집을 사게 되면 비싸게 주고 사서 또 리모델링을 맡겨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집을 둘러보고 중개사님과 머쓱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었다. 중개사님의 휴대폰 벨소리가 엘리베이터를 가득 채웠다. 중개사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시더니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옆 라인에 급매물이 나온 게 있는데 보러 가실래요?"라고 이야기하셨다. 옆 라인은 우리가 계획했던 곳과 평수가 달랐고 우리가 조사하고 추려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집이었다. 그래도 어차피 집을 보러 온 우리는 온 김에 하나 더 보고 가자라는 생각으로 집을 보겠다고 이야기했고 옆 라인의 급매물 집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중에 좀 전 봤던 집에 대해서 아내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내에게 "저 집 뭔가 이상하지 않아? 문에 칼자국도 있고 곰팡이도 그렇고 좀 수상해 그리고 올 리모델링이라 했는데 이것저것 손을 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겠어"라고 말했고 아내는 생각이 많은지 두 질문에 대해서 "그러게"라고 짧게 답했다. 우리가 집을 살 마음이 뜨는 것을 느낀 이유인지 중개사님이 이야기를 꺼내셨다. "전에 본 집은 올수리를 한 집이지만 이번에 가는 집은 아무것도 건들지 않은 지을 때 처음 그대로의 집이에요, 거기다가 급매니까 싸게 살 순 있겠지만 혹시나 들어가게 되면 공사비용이 추가가 될 거예요." 이 말에 우리는 "올 리모델링이라고 했던 집도 공사를 해야 하는데 차라리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집을 공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집을 처음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오묘했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꽤 된 듯한 생기 없는 느낌과 현관 중문 상부에 떡하니 붙어있는 부적, 거실 벽에 붙어있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부채, 베란다에는 담배꽁초가 마치 무성히 자란 화분의 꽃처럼 쌓여있는 재떨이. 하지만 그런 모습에도 어떤 이유에서 인지 아내와 나는 말하지 않고도 서로 '나쁘지 않네'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본 것들이야 없애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니 우리는 꽤나 진진하게 그 집을 살폈다. 집을 둘러보고 중개사님과 헤어지면서 "내일까지 연락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린 후 집으로 돌아오며 우리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그 집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 "그러게 두 번째 본 칼부림 난 올 리모델링 집보다는 훨씬 낫겠는데" "우리가 이런저런 조건들을 감수한다면 충분히 좋은 선택일 거라 생각해" "어차피 내일까지 말씀드리기로 했으니까 조금 더 생각을 해보자."


  하지만 생각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았고 다음날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저희 급매로 나온 그 집 사겠습니다."


  부동산에서는 반가운 목소리로 답변이 돌아왔다. "그럼 집주인 모실테니까 같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내가 집주인이랑 일정 잡아 볼게요." 그렇게 속전속결로 바로 다음날 일정이 잡혔고 현 집주인, 중개사님, 아내와 함께 다시 집을 보러 갔다. 사용하지 않은지 얼마나 되었고 왜 안 팔고 있었으며 뭐가 문제였고 어쩌고 저쩌고. 여담이지만 현 집주인은 건너편에 경찰서가 들어설 거라 확신하고 팔지 않고 버텼는데 갑자기 아파트가 들어서서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며 웃픈 한탄을 하시기도 했다. 집을 한번 더 둘러보고 이제 슬 나갈까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시점에 현 집주인은 우리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꺼냈다.


"근데 이 집 비가 많이 오면 작은방 베란다에서 아랫집으로 물이 샙니다. 얼마 전에도 비가 온 뒤 새서 아랫집에 보수를 해줘야 해요."


"네에?!"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다. 속으로는 '그걸 제일 먼저 이야기해 주셨어야죠!'라고 생각했지만 침착한 척 분위기를 이어갔다. 나는 이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아랫집을 찾아갔다. 노크를 하고 기다렸더니 아주머니께서 나오셨고 나는 인사를 드리고 여쭤봤다. "윗 집에서 혹시 비가 새거나 했던 적이 있었나요?" 아주머니는 예전부터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하셨다. 태풍이 불거나, 장마기간이거나 등 비가 많이 오거나 비바람이 불 때에 물이 새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새서 천장이 젖어있는 상태라 얼른 공사를 해야 한다고 현주인 아저씨께 눈치 아닌 눈치를 줬다. 이렇게 물이 새는 게 몇 년 전에는 한참 새더니 또 그러다가 말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 비가 왔었고 그 비에 물이 새있는 상태가 지금이라고 하셨다. 그런 연유로 현주인은 집이 팔리지 않아서 최근에 누수 업체를 불러 바닥의 방수공사를 새로 했다고 했다. 더 웃긴 이야기는 누수업체가 와서는 그렇다 할 이유를 대지 않고 그냥 물이 샌다는 이야기에 바닥에 방수공사를 했다는 것이다. 듣고 있자 하니 뭔가 마음이 찜찜했다. '태풍이 불 때나 비가 쏟아질 때 물이 새는데 방수공사를 했다고?' 차라리 베란다에서 물을 사용하면 아랫집에 물이 샌다라고 하면 좀 이해가 갔을 것 같다. '물이 얼마나 차오르고 넘치길래?' 나는 이 상황을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고 이 집을 사야겠다 생각 한 이상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현 주인이 집을 더 싸게 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유도 모른 채 비가 올 때면 밑에 집에 물이 새지는 않는지 마음 졸이면서 평생을 살 수는(물론 이 집에 평생 살진 않겠지만)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아주머니께 부탁하나를 드렸다. "이미 천장은 젖어있고 공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제가 몇 가지 확인을 좀 하고 원인을 좀 파악해 볼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계속 '새면 고치고'를 반복하는 건 좋은 방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아주머니는 그래도 된다고 하셨고 나는 오늘 저녁 내로 원인을 찾겠다고 했다.


  아내를 집으로 보내고 나는 다시 급매로 나온 집에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베란다 바닥에 물을 부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물을 계속해서 부어댔다. 만약 내린 비가 창을 타고 넘쳐서 바닥으로 떨어져서 샌다면 지금쯤 아랫집은 물바다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랫집에 물은 새지 않았다. 나는 두 번째 실험으로 벽에 물을 부어대기 시작했다. 작은 균열이 있었기에 그곳으로도 부어 보고 각 벽에 또 10분 정도 물을 집중적으로 뿌렸다. 이제 아랫집에 물이 샜다면 벽에서 물이 새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번에도 물이 새진 않았다. 마지막 실험이 남았다. 나는 '여기여야 해'라는 생각으로 낡디 낡아 붉게 녹이 슬어버린 창틀에 물을 붓기 시작했다. 창틀에 물을 부은 지 약 10분 정도 지났을 때 내 마음속에는 의문이 생겼다. '왜 아무런 연락이 없으시지.' 그렇게 또 5분 정도 있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 아랫집으로 헐레벌떡 내려갔다. 노크를 했고 마찬가지로 아주머니께서 나오셨다. 그리고 아주머니 뒤로 보였던 모습은 나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아주머니 뒤로는 아저씨와 아이들 두 명이 집안에 있는 온갖 수건과 걸레, 바가지를 들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무슨 일이에요?"라고 여쭤봤고 아주머니는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셨다. "올라가서 뭘 한다고 하고 나서 물이 새는지 안 새는지 한참을 쳐다보다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어서 다 같이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지. 그랬는데 갑자기 방에서 펑하는 소리가 나더라고. 그래서 가보니 천장에 도배지가 부풀다가 터져서 방에 물폭탄이 떨어진 거야. 그래서 지금 그걸 치우고 있어." 나는 얼른 들어가서 같이 걸레와 수건을 들고 물을 닦으며 내려온 이유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어쩐지 연락이 와야 하는데 한참 동안 연락이 안 오길래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헐레벌떡 내려온 거예요. 이 정도로 물이 샐지는 상상도 못 했네요 너무 죄송합니다. 그래도 원인은 명확하게 알았습니다. 창틀에서 새는 거였어요.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사하면서 창문을 교체하면 비가 오더라도 물이 샐 염려는 없을 것 같아요." 아주머니는 다행이다라고는 하셨지만 엉망이 된 방-프레임 없이 바닥에 놓아둔 침대 매트리스가 젖어버렸고 바닥에 두었던 아이들의 가방이라던지 그런 것들이 다 젖어버렸다-을 보는 속상함을 감추시긴 힘들어 보였다. 위로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지막 말씀을 드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공사가 끝난 후에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내가 이유를 알아야겠다며 실험이니 뭐니 하는 그런 것만 하지 않았으면 아랫집에 죄송했을만한 일도 없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면 이유도 모른 채 '이번엔 왜 샜지?' '이번엔 왜 새지 않았지?'라는 생각들을 하며 비가 오는 날마다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나는 비가 내리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그럼 비가 오는 게 싫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큰 실례를 끼치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나도 아랫집도 현주인도 원인을 알았으니 대책을 마련하고 조치하기만 하면 모두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 큰 실례임에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신 아랫집 아주머니께, 가방이 젖어서 어떡하냐고 물었는데 괜찮다고 말해준 아이들에게, 편안해야 할 저녁시간의 방해를 받는 모든 가족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이전 03화 어쩌다 한 달짜리 신혼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