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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짜미 Jul 23. 2024

이렇게나 소심한 겁쟁이도 공사를 할 수 있을까요

마음을 담은 하늘색 비닐봉지.

-지난 이야기-

  관리소의 동의를 받고 첫 번째 공사를 시작했다. 첫 공사의 내용은 작은방 베란다로 들어가는 무릎높이 정도의 벽을 허무는 일이었다. 나는 망치, 빠루, 파괴해머, 사다리 등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네 짝의 창문을 떼어내고 두 개의 얇은 목재 창틀과 알루미늄 창틀을 차례대로 떼어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모두가 걱정하는 소음공사의 시작이었다. 공사가 아니라 작동만 시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시끄러운 공구 소리에 눈치가 너무 보여서 한동안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공구를 30초도 켜지 못하고 끄기를 반복하며 현관문의 노크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소심한 마음이 극에 치닫으며 30분 정도가 훌쩍 흘러버렸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괜히 찔끔거리지 말고 빨리 해버리고 빨리 끝내자는 뱡향으로 마음을 단단히 굳히며 공사가 시작됐다. 공구를 손에 지는 30분이 넘었지만 작업은 벽에 실금하나 정도였다. 모습을 보자니 소극적인 스스로의 모습에 안타까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먼지는 풀풀 날렸고 땀은 뚝뚝 떨어졌다. 공구는 자체 무게도 무겁거니와 콘크리트에 타격하는 충격이 공구를 통해 나에게 전해지니 팔에도 엄청난 무리가 왔다. 벽을 다 허물었지만 그 내부의 모습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대충 쑤셔 넣은 듯한 단열재가 나를 반겼고 '시공'되었다기보다는 남은 자재를 '숨겨둔'느낌이 강했다. 보통 단열재를 시공을 했다고 하면 '반듯하게 잘라 차곡차곡'의 느낌이지만 내가 본 모습은 '손으로 부셔서 대충 밀어 넣은' 느낌이었다. 내가 한바탕 공사를 한 뒤 구석구석 구경을 하는 동안에 아내가 왔다. 벽이 사라진 모습을 본 아내는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서 멈췄다. 아내의 눈이 동그랗게 떠진 그 표정은 인상 깊었다. 그 표정은 '와... 이게 되네.' 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놀랄 시간은 없다. 이제 곧 약속했던 시간이라 더 이상 쿵쿵거리면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어 우리는 곧장 마스크를 끼고 청소를 진행했다.

  벽돌은 벽돌대로, 목재는 목재대로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우리 공사의 막이 올랐고 다음 날은 막뿐 아니라 팔, 다리, 허리 등에 알도 잔뜩 올랐다.


-이번 이야기-


  하루종일 파괴해머를 들고 벽돌을 부수고 나르던 고통으로 다리에 잔뜩 오른 알이 잠잠해질 때쯤 우리는 본격적인 공사준비에 들어갔다. 우리가 공사를 어떻게 하고를 떠나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단 하나였다.


  '아파트 주민분들의 동의 구하기.'


  우리는 나름 주변사람들과 친하게 그리고 신나게 웃고 떠들며 곧잘 이야기하며 지내는 타입이다. 이런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가 이놈의 '동의 구하기' 때문에 얼마나 마음조리며 고통받았는지는 1도 모를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사람들과 뿐 아니라 처음 만나더라도 아무런 실례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활발한 성격이다. 하지만 동의를 구한다는 것은 주민분들께서 느끼기엔 이런 내용과도 같다. 


  '우리가 시끄럽고 쿵쿵거리고 먼지를 내며 실례를 많이 끼쳐도 괜찮을까요?'


  우리가 공사를 하고 입주를 함에 아무 득 되는 게 없음에도 주민분들은 공사를 못하게 할 순 없으니 동의를 하게 된다. 득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내시는 데에 불편이 생기는 일이다. 우리는 그런 게 죄송스럽고 또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동의서를 받기 위해 방문하면서 작은 선물을 드리기로 했다. 작은 선물은 작고 소소하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선물로 준비했다. 그건 다름 아닌 행주와 종량제 봉투. 우리는 집 앞 가까운 마트에서 행주와 종량제 봉투 그리고 선물을 포장할 봉투를 구입했고 저녁시간 이후 나의 본가 내 방에 나란히 앉아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한 장 한 장 마음을 담아 접고 담았다. 우리가 공사를 진행할 아파트는 15층이기에 세대수로는 30세대가 있다. 이 30세대 중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구하면 되기 때문에 수량은 열 다섯 세트 정도를 준비했다.

  동의 서명을 받으러 가는 당일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점심시간이 지났을 때쯤 아파트에 방문했다. 이게 뭐라고 마음이 자꾸 두근거렸다.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두근거림은 설렘의 두근거림이 아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조바심의 두근거림이었다. 아내와 나는 아파트 현관을 들어가기 전 서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는 참 부질없지만 제 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하찮게 귀여운' 질문들을 서로 해댔다.


  '벨은 누가 누를 거야?'

  '누구냐고 하시면 뭐라 대답할 거야?'

  '문 열고 나오시면 누가 앞에 있을 거야?'

  '1층부터 할 거야 15층부터 할 거야?'

  '사이비 종교에서 왔다고 생각하시고 문을 안 열어주시면 어떡하지?'

  '우리가 식사시간이나 낮잠시간을 방해하는 거면 어떡하지?'

  '아기가 있어서 우리 때문에 울면 어떡하지?'

등등 그다지 영양가가 있지 못한 질문들을 서로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며 전체적인 틀을 짰다. 우선 우리 집이 고층이니 고층분들이 고충이 많을 거라 판단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자라는 결론과 벨은 내가 누르고 말은 아내가 하기로 정했다. 그리고 아기가 있다는 스티커가 붙어있는 집은 가볍게 노크만 해보고 반응이 없으면 다른 집을 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굳은 의지의 눈빛으로 쳐다보고 "가보자!"라고 의기를 투합했다. 사실 둘 다 '쫄보'처럼 보이겠지만 아내는 '뭘 걱정해 그냥 하면 되지'라는 입장이었고 나는 세상 걱정을 혼자 다하는 입장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고 우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내와 나는 한참 동안 눈알을 굴리며 가만히 서 있었다. 우리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를 내리면 양쪽으로 현관문이 마주 보고 있는 계단식 복도의 형태다. 우리가 가만히 서 있던 이유는 쓸데없지만 명확했다.

  

  '왼쪽 집' 먼저 할까 '오른쪽 집' 먼저 할까.


  나는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고 있었고 아내는 나를 다독거리기라도 하듯 혹여나 벨을 눌렀는데 아무도 나오시지 않아 내려가기 위해 돌아서는 순간 문을 여실수도 있으니 계단과 가까운 왼쪽 집 먼저 하자고 진지한 의견을 냈다. 나 또한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우리는 15층 왼쪽집 문 앞에 서서 세상에서 가장 수상한 사람처럼 초인종으로 손가락을 보내고 있었다.


  '띵~~~~~~~~~~동~~~~~~~~~~~~~'


  지금까지 이렇게 큰 초인종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초인종소리가 이렇게 커도 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컸으며 초인종에서 나오는 라이트는 얼마나 밝은지 우리의 눈을 혼란스럽게 했다. 아마 그 소리와 빛은 우리의 긴장된 마음만큼 더 크게 들리고 더 밝게 보였으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정상적인 소리와 불빛의 초인종이었다. 15층에서는 아주머니가 나오셨고 우리는 나름 준비한 각본대로 이야기를 꺼냈다. 아주머니께서는 별다른 걱정이나 염려 없이 흔쾌히 서명을 해주셨다. 첫 번째 도전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별 탈 없이 성공. 이제 다음은 등 뒤에 있는 오른쪽 집이다. 반대편 집에 벨을 누르고 어쩌고 저쩌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셨다면 사이비종교에서 왔나 싶어서 열어주시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요상한 생각이 내 머릿속에 눌러앉았다. 두 번째 집의 벨을 누를 때에는 첫 번째에 너무 소리가 컸어서 긴장을 잔뜩 했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오른쪽 집의 벨을 눌렀다.


  '띵~~ 동~~'


  짧고 간결한 초인종소리가 복도를 잔잔하게 덮었다. 이 잔잔했던 초인종소리는 우리가 첫 번째 집을 해봤음에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겼음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며 우리는 동의를 받지 못했지만 이유도 모르게 '아싸뵤'를 외치는 모션을 서로 취했고 그 흥분된 모습과는 너무 반대될 정도로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아래층으로 이동하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의를 받으려고 벨을 누르지만 벨을 누르고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기뻐한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그 당시에 우리 뇌는 뭔가 단단히 잘못된 상태였음이 분명하다.

 

 14층에서는 주민분께서 강아지를 품에 안고 나오셨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내는 강아지 덕분에 편하게 말을 틀 수 있었고 그 결과 두 집째 동의 완료! 우리는 연신 감사하다며 준비한 선물을 인사와 함께 드리며 한 집 한 집 동의를 채워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아내와 잠깐씩 잡담을 했는데 그 내용은 이랬다. 

 

  -"생각보다 집에 많이들 안 계시네"

  -"출근했을 시간이니 그렇지 않을까?"

  -"그런가 봐, 동의를 받아야 해서 집에 안 계시면 안 되는데 아무도 안 계실 때면 내심 마음이 편해져ㅋㅋ"

  -"우린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ㅋㅋㅋ"


  그렇다. 아파트에는 생각보다 많이 계시지 않았다. 기존 생각으로는 열다섯 세트를 금방 쓰고 아래층은 내려가지도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느새 1층이었고 우리가 받은 동의는 두 집이 부족한 열세집이었다. 두 집이 부족했기에 우리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으로 올라가서 부재중이었던 집을 한 번씩 다시 찾아가서 벨을 눌렀다. 아무도 나오시지 않았지만 다시 찾아간 이유는 분명 우린 청소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문 앞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들으셨지만 나오시지 않았을 수도 있고 청소기 소리로 정말 듣지 못하셨을 수도 있다. 동의가 급한 건 우리이기 때문에 눈치 없이 한번 더 방문을 하게 됐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 두 집도 채우고 방학식을 한 초등학생처럼 신나게 관리실로 달려갔다. 관리실에서는 훌륭하다며 대부분 다 못 채워 오시고 그냥 좀 안 되겠냐고들 이야기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채워진 게 얼마만이냐는 말을 들으며 우리는 하나도 대단하지 않은 대단한 일을 한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관리실에 자랑이라도 하듯 그렇지 않아도 주민분들께서 많이 계시지 않아 오르락내리락했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그렇게 '그냥 좀 안 되겠습니까'라고 이야기해서 될 줄 알았다면 우리도 아마 열세 집인 상태로 왔으리라... 관리소장님은 우릴 달래기라도 하듯 고생했다고 이야기해 주셨고 앞으로 있을 공사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내용 중 우리 둘이서 공사를 할 거라는 말도 나왔는데 그 말에 관리소장님은 중간에 구경 가겠다는 이야기를 남기셨고 우리는 얼마든지 오시라며 환영하는 대답을 드렸다.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만나 뵀던 주민분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강아지 키우던 그 집에 강아지가 너무 귀여웠다며 다시 보고 싶다는 말, 좌측 집 동의를 구하는 동안 우측집 아저씨가 들어오셔서 일타이피를 성공적으로 해냈던 말, 어떤 층에는 꼭 본인의 이름을 적어야 하냐며 부모님의 존함을 적어도 되냐는 어리둥절한 질문을 해서 당황했던 말 등. 그래도 이렇게 인사 아닌 인사를 한번 드리고 나니 뭔가 마음이 편해졌고 다들 친절하게 맞이해 주셔서 공사를 순탄하게 진행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후담으로 그다음 아파트에 들렀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어떤 아주머니를 만나 뵀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다. 


  "아이고 젊은 분들이 집도 직접 공사하고 대단하네. 요즘 사람들 힘든 일 안 하려고 하는데 둘이서 같이 한다는 소식 듣고 멋있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종량제 봉투랑 행주 잘 받았어요. 다들 그냥 동의받기 바쁜데 이렇게 선물까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이쁘게 잘 공사하세요."


  정말 감사한 내용의 말씀이었지만 우리는 이 아주머니를 뵌 적이 없다. 아주머니가 내리시는 층과 들어가시는 방향을 보고 나서 아내와 나는 머리를 굴렸다. '저 집에서 어떤 분이 나오셨었지...' 아내와 나는 거의 동시에 생각이 난 듯 "아! 그 아저씨!"라고 말했고 "그분의 아내분이셨구나~"하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저씨의 특이한 행동 덕이었다. 동의를 받기 위해 내가 벨을 눌렀는데 한동안 아무 이야기가 없어서 돌아서려는데 문이 덜컥 열리면서 아저씨가 나오셨다. 우리는 얼른 돌아가서 인사를 드렸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이야기를 제대로 듣긴 하셨는지 동의판을 보시고는 얼른 동의서명을 하셔서 우리도 헐레벌떡 선물봉투를 챙겨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선물봉투를 받으시고는 헐레벌떡 문을 쾅 닫고 들어가셨던 분이 있었다. 그분의 집이었다.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바쁘시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의 행동은 바쁜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그저 시간 끌지 않는 깔끔한 행동들이었다. 우리는 동의하나라도 받아서 정말 다행이다 생각했지만 오늘 아주머니를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성향이 너무 정 반대인 게 재밌어서 우리도 반대인 부분이 있지 않냐며 이런저런 내용을 떠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공사를 하기 전에 사전에 공지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동의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물론 아파트마다 다르겠지만. 불편하고 머쓱하긴 하지만 이렇게 동의를 받으면서 인사를 드리는 것도 실례를 끼치는 것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의도 받았겠다 본격적으로 공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본격적인 공사의 내용은 욕실 전체 철거와 벽에 붙은 도배지 제거다.

  부디 다치지 않고 잘 진행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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