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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짜미 Jul 16. 2024

신혼집에서 담을 넘어 다니며 빨래를 할 순 없어

공사와의 전쟁, 그 서막.

"여기에.. 우리 세탁기가 들어갈까?"

"들어가긴 할 거 같은데 세탁기 문도, 세탁실 문도 열지 못하겠는걸."

  용도상으로 지정되어 있는 세탁실에 세탁기를 넣을 수 없다. 지금에야 구축아파트인 이 집이 지어질 당시의 세탁기의 사이즈는 좀 작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돌이 세탁기였으며, 건조기의 사용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보일러실과 세탁실을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벽에는 세탁기에 사용하는 냉/온수 수도가 설치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세탁기를 놓으라고 만들어 둔 곳이지만 우리의 세탁기와 건조기는 드럼형식이며 위아래로 쌓아 올리는 구조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 세탁기와 건조기를 놓는다면 첫째로 문을 열 수 없으며 둘째로 보일러가가 고장 나거나 손봐야 할 때에 세탁기와 건조기를 들어내야 한다. 애초에 넣을 수도 없지만 넣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컸다. 그래서 우리는 세탁기를 다른 곳에 두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베란다? 우리 집의 베란다는 1m 조금 넘는 폭이다. 형태는 거실부터 안방까지 길게 되어있고 가운데쯤에 배수관이 놓여있다. 만약 베란다에 세탁기가 위치한다면 베란다 중앙에 덩그러니 놓아야 하며 그건 공간적으로 효율성이 너무나 떨어지고 시각적으로도 참 별로인 배치다. 

  우리 집에는 베란다가 두 개다. 작은방에 하나가 더 있다. 그곳에는 세탁기를 놓아도 동선상의 문제나 시각적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크다면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 작은방 베란다로 나가기 위해서는 창을 열고 약 무릎정도의 높이까지 오는 벽을 넘어야 한다. 세탁을 할 때, 세탁 후 세탁물을 건조기로 옮길 때, 건조 후 건조물을 꺼낼 때 등 세탁기와 관련된 모든 상황에 그 무릎 높이의 벽을 넘어 다녀야 한다. 정말 이게 맞을까? 아니라 하더라도 마땅한 다른 장소도 없다. 생각을 하다 아내에게 물었다.

 "이 벽을 부숴버리는 건 어떨까?"

아내는 대답했다. 

 "벽인데 마음대로 부숴도 될까?"

나는 "우리 집인데 뭐 어때!"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 벽을 허물기로 했고 '어떻게' 허물어야 할지도 모르고, 얼마나 힘들지도 모른 채 열의만 활활 불태우며 계획을 짰다.


  우리가 구매한 집은 아파트다. 그렇기에 주민분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무작정 공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관리실이었다.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계획 중인 공사내용(벽을 허무는 공사)과 날짜를 말씀드렸고 관리실에서는 '리모델링 공사를 하려면 공사 전에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와 '엘리베이터의 파손을 주의해야 한다'라는 답변을 해주셨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공사는 얼마나 걸리겠냐고 소장님께서 물어오셨다. 나는 "오늘 말씀드린 내용은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본 공사는 좀 뒤에 진행될 예정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관리소장님께서는 하루만 하는 거냐며 그러면 서명은 본 공사 전에 받고 오늘 이야기 한 공사는 그냥 진행해도 괜찮다고 말씀해 주셨다. 단, 민원이 나온다면 그때는 중단하고 일정을 다시 조율해서 주민분들의 동의를 받는 것으로 정했다. 나름의 허가도 받았겠다 장비(거창한 단어지만 기본적인 공구들)를 펼쳐두고 공사를 준비했다. 장비로는 망치, 빠루, 파괴해머, 사다리 등을 챙겼다. 파괴해머는 앞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하며 철거를 많이 해야 하기에 약 150,000원 정도 되는 금액으로 구입했다. 망치나 빠루 사다리 등은 용도는 맞지 않지만 갖고 있는 게 있어서 그대로 사용했다.


우리가 철거해야 하는 벽은 아래의 사진과 같다.


  철거를 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2m 정도 되는 창문을 떼어내는 일이었다. 창문은 창의 좌우를 양손으로 잡고 창틀 위쪽으로 힘껏 들어 올린 후 아래를 내 몸 쪽으로 당겨주면 레일에 걸려있는 바퀴가 빠지면서 해체할 수 있다. 반대로 끼울 때는 위쪽을 먼저 끼운 후 아래를 넣어주면 된다. 커다란 창유리가 어찌나 무거운지 하나하나 떼어낼 때마다 그렇게나 용을 썼다. 그리고 도대체 끼울 때는 어떻게 끼웠나 싶을 정도로 창이 빡빡하게 들어가 있었다. 분명 끼울 때는 잘 끼웠을 텐데 의문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마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창틀의 상부가 조금 내려앉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다. 창문을 분리했으니 창틀을 제거해야 한다. 창틀 프레임은 사방의 도배지와도 연결되어 있기에 창틀 주변의 도배지를 먼저 칼로 잘라주며 분리해야 했다. 칼을 들고 창틀의 사방을 칼로 그었다. 문을 빼낼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창틀을 제거하려고 보니 하나의 창틀이 아닌 얇은 창틀 두 개가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하나는 목재창틀 하나는 알루미늄 창틀이다. 지금 보니 딱 봐도 다른 창인데 색상이 둘 다 하얀색이라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고 있었다. 먼저 실내 쪽에 있는 목재창틀을 빼내기로 했다. 방 쪽 창틀은 나무이니 좌/우측 창틀의 중앙부를 잘라서 위/아래 반 쪽씩 빼낼 계획을 세웠다. 톱으로 나무를 절단하고 있는데 알루미늄 창과 붙어 있어서 그런지 자꾸 간섭이 생겼다.


  '이러다 톱 날 다 나가겠네'.


톱은 공구의 특성상 앞뒤로 반복하며 사용해야 하는데 알루미늄창틀에 간섭이 생기니 톱질이 쉽지 않았고 알루미늄 창틀에 톱날이 턱턱 걸릴 때마다 톱질이 중단되어서 맥이 빠지는 순간들이 많았다. 침착하게 해야 하는데 마음만큼 되지 않으니 힘을 써서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씩씩거리며 톱질을 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엄지와 검지를 사용한 한 뼘 정도 되는 창틀의 2/3 정도를 잘랐으니 나머지 1/3은 벌리면서 자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르지 못 한 부분은 알루미늄 창틀에 걸려서 도저히 자를 수 없었다. 


  '좋아 이제 여기를 집중 공략하면 되겠다. 바로 빼주겠어!'.


안 그래도 조금만 힘을 써도 얼굴이 시뻘겋게 올라오는데 내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잔뜩 흥분한 모습으로 자신만만하게 내 팔 길이정도 되는 기다란 빠루를 들고 창틀과 벽 사이의 공간의 틈을 쿡 하고 찔러 넣었다. 벌리기 위해서 이리저리 흔들다 보니 조금씩 목재창틀과 벽 사이의 공간이 벌어졌다. 


  '쩌저적!'


  알루미늄 창틀 때문에 덜 잘렸던 부분의 나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나무 문틀에 박혀있던 못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살짝이지만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틈이 생겼고 양손으로 문틀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며 잡아당겼다.


  '삑' '삐익' '삐비빅'


  못이 빠지는 소리가 들려오다 이내 '뾱!' 하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못 하나가 빠진 것이다. 그 소리는 어떻게 콘크리트에 박힌 못에서 이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맑고 경쾌한 소리였다.


  '좋아 이제부터 시작이야!'. 


  못 한 군데가 빠지니 지렛대 원리 때문인지 다음, 그다음 못은 점점 더 '수월하게' 빠졌다. '수월하게'라니, 첫 번째로 뺀 못 하나가 너무 힘들었어서 다른 못을 뺄 때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결코 수월하지 않은 작업이었다. 반으로 자른 창틀 중 아랫부분을 떼어내고 그 잔해를 옆에 벽에 세워두고 잠깐 쉬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그 계산은 내가 창틀 철거에 얼마나의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계산이었다.


  창틀 하나 뽑는 데 걸린 시간 약 20분. 앞으로 내가 떼어내야 할 창틀 7개.


'창틀을 빼는데만 두 시간이 넘는다고?!!'


  생각만 해도 지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는 일. 오늘 17시가 되기 전까지 이 공사를 끝내야 한다. '한 번 해 봤으니 더 빨라지겠지.' 나는 반대편 창틀 하나도 전과 동일하게 빼냈다. 다음은 상부창틀과 하부 창틀. 상부창틀은 양손으로 잡고 흔들었더니 종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빠져 내렸다. 반으로 자른 양 측면의 창틀 위에 그저 얹혀 있었으며 도배지와 붙어있어서 버티고 있었나 보다.


속으로는 '이렇게 고정이 되어있지 않으니 문틀이 처지지!' 하며 속으로 혼자 씩씩 거렸다. 아래 창틀도 마찬가지로 망치로 몇 번 때리고 흔들었더니 금방 빠졌다.


  '아싸 시간 벌었다'


묘한 쾌감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철거하는 일에 땀을 뚝뚝 흘리며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채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나무 문틀을 다 빼내고 남은 건 알루미늄 창틀이다. 나무는 톱으로 자를 수라도 있었지만 알루미늄을 톱으로 잘라버릴 수도 없었다. 창틀과 벽 사이를 보기 위해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다 의문점을 가졌다.


  '왜 고정되어 있는 곳이 없지?'


  목재창틀은 못이 박혀있었는데 알루미늄 창틀은 아무 고정된 곳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으로 창틀을 흔들어 봤다.


  '흔들흔들'. 


그냥 실리콘과 붙어 있었지 고정된 부분은 없었다. 이게 웬 횡제냐는 표정으로 창틀 주변의 실리콘을 칼로 그어 잘라내고 창을 다시 흔들었다.


  '그냥 잡아당겨버려도 되겠는데?'


  나는 발로 차기도 하고 손으로 흔들기도 하면서 창틀을 괴롭혔다. '쩍' '쩍쩍' '쩌저적' 창틀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흔들리는 부분을 잡고 잡아당겼더니 덜 잘렸던 도배지의 종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창틀 위쪽이 '쿵' 하고 떨어졌다. 창 하부틀을 잡고 있던 손을 조심스럽게 창 틀 상부로 옮겨 조심스레 창틀을 빼냈다. 아까 하나에 20분이니 세 시간 가까이 들겠다는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창을 다 빼내고 창틀을 다 철거하고 나니 걸린 시간은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주 순탄한 진행이야.'


  내가 걱정하던 시끄러운 공사는 이제부터다. 파괴해머라는 전동공구를 사용해서 벽을 깨기 시작했다. 파괴해머로 공사를 하면 '와다다다'하는 엄청난 타격음이 나는데 심지어 때리기 전 기계를 가동하기만 해도 소리가 엄청났다.


  '이거 소리가 너무 큰데..?'


  한번 가동했다가 다시 끄고 한참이나 현관을 주시했다. 혹시나 누가 문을 두드리거나 하면 바로 나가서 죄송하다고 인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관문은 조용했고 다시 한번 더 도전했다. 그렇게 10초 일하다 1분 멈추면서 깔짝깔짝 하다가 이내 결심이 섰다.


  '어차피 할 거라면 후딱 해버리자! 눈치 볼 시간이 없어 이러면 시간만 점점 끌어질 뿐이야.'


  하지만 그런 패기와는 다르게 내 몸은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익숙해진 건지 아님 청각을 잃은 건지 소리는 무신경해졌고 철거의 진도는 쭉쭉 나아가고 있었다.


  그 벽 속은 내가 알고 있던 콘크리트가 아닌 회색벽돌에 미장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강도가 더 약했는지 벽돌이 뭉터기로 떨어져 나왔다. 시간이 약 한 시간가량 흘렀다.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며 공구는 무거워서 팔에 힘이 잔뜩 들어갔고 땀은 뚝뚝 떨어져 벽돌에 스며들고 내 팔과 옷, 얼굴은 먼지로 덮여버렸다. 공구의 진동이 얼마나 강했던지 잠깐 휴식하기 위해 공구를 내려놓았는데도 팔에 진동이 느껴지며 손이 떨렸다. 


  세 시간 정도가 흘렀을 시간과 끝자락의 벽돌 몇 군데만 남았을 상황에 '조금만 더!'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를 했다. 아무리 벽돌이라지만 깨는 데는 쉽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청소. 머릿속은 '이 벽돌이랑 창틀, 창문을 어디다가 어떻게 버려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생각도 할 겸 휴식도 할 겸 철거한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창틀이 철거된 모습은 방 쪽의 벽과 베란다 쪽의 벽 사이에 두 줄로 회색 벽돌이 쌓여 있었고 그 벽돌 사이에 우리가 아는 하얀 스티로폼인 단열재가 시공된 모습이었다. 솔직히 시공되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부실하고 조잡하게 되어 있어서 시공이라는 단어보다는 '남은 단열재를 욱여넣어둔' 느낌이었다.


  '에휴 부실공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그사이 아내가 일정을 마치고 나를 돕기 위해 집으로 들어왔다.


  창문과 그 벽이 사라진 모습을 본 아내는 꽤나 놀란 눈치였다. 그 눈빛에는 '와..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돌이킬 수 없구나.', '대단하다! 이걸 해냈네!', '진짜 힘들었겠다...' 하는 전혀 다른 재질의 복합적인 감정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하얗게 먼지로 덮여 있었고 아내를 보자마자 내뱉은 첫마디는 "마스크 껴!"였다. 그만큼 먼지가 많이 날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내도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함께 폐기물 청소를 시작했다. 지금은 폐기물을 어떻게 폐기할 예정인지에 대한 계획도 없기 때문에 깨진 벽돌들을 철물점에 파는 붉은색 마대에 담고 큰 녀석들은 한쪽에 몰아두는 정도만 정리를 했다. 마대를 샀으니 작은 폐기물들은 이 마대에 담아서 버리면 될 일이었다. 우리는 틈이 날 때면 "손 조심해"하는 말을 서로 해주며 청소를 끝냈고 청소된 후의 뻥 뚫어진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속이 후련했으며 내 마음속 한편으로는 아내의 눈빛에서 나왔던 '이제 돌이킬 수 없구나'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우리의 공사에 막이 올랐고, 다음날이 되어 오른 것은 막뿐 아니라 팔, 다리, 허리에 알도 잔뜩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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