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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짜미 Aug 20. 2024

시멘트 뒤집어쓴 썰

실력이 없으면 몸으로 때우는 거지 뭐.

  벽의 모든 타일을 철거했다. 천장의 모든 목재와 마감재를 철거했다. 천장에는 윗 층의 하수배관이 드러났고 바닥에는 처음 시공당시 제대로 시공되지 않아 떠올라서 굳어버린 수도배관이 드러났다. 바닥 타일을 철거하던 중 자칫 잘못하면 수도배관을 끊어먹을 뻔했다. 당연히 없어야 할 바닥에 삐쭉하고 튀어나와 있으니 당연히 모르고 냅다 밀어버릴 뻔했다. 얼마나 조마조마했던지. 그래도 다행스럽게 배관이 터지거나 찢어지지 않았고 무사히 욕실 철거가 끝이 났다. 벽과 바닥의 모든 타일을 철거하고 나중에 붙일 타일을 생각하며 벽의 수직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평대를 갖다 댔다. 그때부터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


  내가 사용하는 수평대는 귀여운 노란색이다. 형태는 가운데와 한 측면에 물과 물방울이 들어있는 작은 캡슐 같은 게 들어있다. 수평이나 수직이 맞으면 물방울이 가운데에 머무르고 한쪽으로 기울었다면 물방울이 반대편으로 이동하게 되는 원리로 수직이나 수평을 확인한다. 타일이 철거된 후 아파트를 지을 당시 세워진 벽에 수평대를 가져다 대었을 때 나는 큰 한숨을 쉬었다. 이유는 물방울이 완전히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타일을 벽에 붙일 텐데 벽이 기울어 있다면 타일도 기울어져 붙게 된다. 내가 한쪽 벽만 붙인다면 상관없지만 그 벽 양쪽에는 타일이 붙을 또 다른 벽들이 있다. 만약 벽의 위쪽이 뒤로 넘어가 있다면 타일도 동일하게 위로 올라갈수록 뒤로 넘어지게 붙게 된다. 그럼 좌측벽의 우측라인에 붙을 타일들은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넓어지게 붙여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엄청나게 높은 벽은 아니지만 그리고 구조상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첫째 미관적으로 보기 좋지 않고, 둘째 '떠발이'공법을 사용하면 되지만 그건 잘못된 시공방법이며, 셋째 만약 잘못된 시공방법이 아닐지라도 나는 떠발이공법을 할 만한 실력이 되지 못한다.


  떠발이 공법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려 한다. 타일을 붙이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 정도의 방법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모래와 시멘트를 섞고 개어서 붙이는 방법, 두 번째는 타일전용 시멘트를 사용하는 방법, 세 번째는 타일본드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떠발이 방법에는 주로 첫 번째 방법이 사용된다. 모래와 시멘트를 '적당한'농도로 갠 후 푹하고 떠서 타일 위해 퍽하고 '적당한 양'을 올려준다. 애초에 여기서부터 문제가 많다. 그 어디에도 '적당한 농도'에 대한 설명은 없으며 '적당한 양'도 표기되어있지 않았다. '공법'이라는 말을 쓰는 거면 어느 정도 기준이 있고 '최소 이 정도 이상은 해야 한다'라거나 '이 정도 이상을 초과하면 안 된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타일을 시공하는 기술자에게 맞춰져 있으며 그 기술자가 "이 정도면 됐어"라고 하면 그게 정비율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타일에만 붙고 벽에는 접착되지 않은, 혹은 벽에만 붙고 타일에는 접착되지 않은 그런 하자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자가 많은 떠발이공법을 사용하지 않고 시공방법에 대한 규정이 명확한 타일 전용 시멘트를 사용하여 시공할 계획을 잡고 있었다.


  타일을 시공하려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바탕면이다. 타일이 붙을 바탕면의 수직이나 수평, 그리고 요철들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 타일을 철거한 후의 우리 집 바탕면은 그 어떤 것도 충족되지 못했다. 벽은 기울어있으며 타일밥이 완전히 떨어지지 못해 오돌토돌한 요철들이 너무나 많았다. 타일 시멘트는 떠발이 공법과는 다르게 타일과 벽 사이에 공간을 넉넉하게 주지 못하기에 기울어진 벽은 잡지 못하더라도 요철들만이라도 깔끔하게 제거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라인더라는 공구에 돌을 갈아내는 날을 끼우고 벽의 요철들을 갈아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간단하게 말해서 계획이지 이건 실력이 부족하니 몸으로 때운다는 정도로 무모하고도 고된 일이었다.


  문을 닫고 욕실에 들어간 지 약 5분쯤 되었을까 욕실문을 열고 나온 나를 보고 아내는 말했다. "눈사람이 됐어?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는 거울을 못 본 상태였기에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욕실에서 벽의 요철을 갈아내는 상황을 생각하니 대충 어떤 느낌인지 예상이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멘트 가루는 먼지가 많이 난다. 하지만 갈아낼 때 나오는 가루는 시멘트 가루보다 분말이 더 작기 때문에 그만큼 먼지가 더 날리고 가라앉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 가루들이 내 머리와 어깨 마스크 위로 잔뜩 쌓였을 것이다.

  고작 5분 갈아냈고 아직도 갈아낼 곳들이 많은데 나는 계속해야 하나 차라리 그냥 떠발이 하는 방법을 따라 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나 수도 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다 다시 들어가서 갈아내고, 나와서 다시 고민하다 들어가서 또 갈아내고를 반복하다 어느새 나름 만족할만한 만큼 갈아냈다. 이제 손으로 만져도 크게 튀어나온 요철이 없는 정도가 되었다. 마지막 과정으로 빗자루를 들고 다시 한번 욕실에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나중에 방수를 할 때나 타일을 붙일 때나 부착되는 바탕면에 먼지가 많으면 그만큼 접착이 되지 않는다. 모래가 많은 바탕면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그래서 빗자루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벽과 바닥을 한번 쓸어줬다. 쓸면서도 먼지가 많이 날리기 때문에 못해도 다섯 번 정도는 쓸어줘야 그나마 괜찮을 정도로 먼지는 많이 날렸다. 먼지도 많이 날리고 힘들고 고됐지만 그래도 하자 없이 붙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는 스스로에 대해서 뿌듯했고 심지어는 자랑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또 한 번 가슴에 새긴 교훈을 얻었다. '하기 전에 느끼는 두려움은 무엇보다 크게 느껴지지만 막상 하고 나면 그렇게 큰 두려움은 아니다'라는 교훈.


 고작 화장실 철거하면서 이런 교훈을 얻는 게 맞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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