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군대 어디 나오셨어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철거를 해댔다. 타일 하나하나 떼어내고 긁어내고 갈아내고 하얗게 덮이면서 철거를 해댔다. 철거만큼 힘들었던 건 철거 후 남은 잔해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그냥 담기에는 사이즈가 너무 커서 망치로 때리며 잘게 부숴야 했다. 부수지 않으면 마대에 충분히 담을 수 없어 마대의 낭비가 생겼다. 또한 손으로 주워 담기에는 다칠 위험도 있고 주워 담아야 할 개수가 너무나 많았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사용했지만 플라스틱 쓰레받기는 시멘트 덩어리 세 번 담는 강도도 채 버티지 못할 정도로 약하디 약했다. 우린 결국 아내의 집 텃밭에서 사용하는 삽을 한 자루 빌려왔다.
철거는 주로 내가 했지만 청소는 아내가 많이 도와줬다. 당시에 아내는 도배지를 제거하고 있었다. 또한 철거는 공구도 하나뿐이고 욕실은 두 명이 들어가서 일할만한 공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잔해의 청소를 할 때는 먼지가 많이 나기 때문에 혼자 하겠다고 했지만 "마스크 끼고 같이 하면 되지!"라고 말해주며 나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렇게 잔해를 치우면서 내가 아내에게 마대를 주면서 무거우니 바닥에 닿게 하고 구겨지지 않게 잘 잡고 있으라고 말하며 삽으로 철거 잔해물들을 담았다. 마대 하나를 채우는데 약 열 번 정도의 삽질이 필요했다. 나는 숙련된 자세로 마대 하나를 클리어했다. 다음 마대를 준비하는 동안 삽을 바닥에 '탁'하고 내려찍으며 자존감이 잔뜩 높아진 모습으로 아내를 쳐다봤다. 아내는 "굉장해!"라며 나를 한 껏 추켜올려줬다. 그리고 그다음 말은 "나도 해보고 싶어"였다. 나는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무거울 텐데 괜찮겠어?" "허리 아플 텐데 괜찮겠어?"라며 걱정을 했고 아내는 "괜찮아! 해보고 너무 힘들면 그때 다시 교대하자!"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좋아 그럼 내가 마대를 잡을게 다치지 않게 천천히 해보자!"라고 말했다. 그때부터였다. 나의 '으쓱'은 '머쓱'으로 바뀌고 잔뜩 높아진 자존감은 바닥을 치며 폐기물 청소의 주도권이 아내에게 넘어가기 시작한 순간이.
아내는 삽질을 처음 해보기에 많이 어색해했다. 처음 두세 번 정도의 삽질은 꽤나 어설펐다. 삽은 이렇게 잡는 게 허리가 덜 아프고 이렇게 펴는 게 더 무리가 덜 간다 등 별 대단한 것도 아닌 걸로 아내에게 훈수를 뒀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는 점차 말없이 가득 찬 마대를 밖으로 빼내고 새로운 마대를 대령하기에 바빠졌다. 아내의 삽질은 매 회 일취월장했고 지치지도 않는지 그 많던 폐기물을 순식간에 퍼담았다.
청소가 끝난 후 아내와 한숨 돌리며 욕실에 서 있을 때 내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군대는 내가 다녀왔는데 왜 삽질을 나보다 더 잘하는 거야."
그래도 아내가 힘들긴 했었나 보다. 얼굴이 발그레진 상태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웃어 보였다.
폐기물은 주방과 거실이 만나는 현관 앞 복도에 쌓아두고 주방 철거 후에 모아서 버릴 예정이다.
처음 계획은 욕실의 벽, 천장과 바닥 모두를 철거한 후 청소를 한 번에 해버리자라는 계획이었지만 그건 정말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철거를 하면서 쌓인 잔해들 때문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잔해들을 밟으면 흔들리고 흘러내렸기 때문에 발목을 삐거나 중심을 잃는 등 안전에 위협이 될만한 사항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발을 디딜 수 있을 정도만 조금씩 청소를 하며 진행을 하며 벽타일 철거를 끝냈다. '청소는 위에서 아래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욕실 철거는 조금(아니 그냥 전혀) 달랐다. 천장에는 30년 된 환풍기가 붙어 있어 벽 철거를 하면서 먼지를 빨아들여주기 때문에 벽을 먼저 철거 후 천장을 철거해야 했다. 바닥을 나중에 하는 이유는 확실하게 있다. 바닥을 먼저 철거하면 바닥면이 고르지 못해 벽 철거 후에 청소하기가 어렵다 점이다. 바닥에 타일이 남아있으면 면이 고르기 때문에 청소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주저리주저리.
됐고 그냥 시답잖은 이유를 붙였을 뿐 어딜 먼저 하던 상관없었다. 내가 이렇게 적은 건 해보고 나니 '아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편하겠구나'하는 생각을 적었을 뿐 뭘 먼저 하던 상관없었다. 먼저 환풍기가 먼지를 빨아들여줄 거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천장 철거 후에 환풍기에 배기관이 꽂혀있지 않아 먼지가 빠져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청소가 쉽니 어렵니를 논했지만 바닥 철거를 먼저 하던 나중에 하던 결국 청소는 수시로 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주먹은 맞아봐야 아픈지 안 아픈지를 아는 법.
내 예상이 맞고 내 계획대로 되리라는 법은 절대 없었다.
청소가 끝난 후에 아내와 오늘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삽질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물었다. 아내는 "오빠가 철거하는 동안에 도움을 줄 수 없어서 답답했는데 청소는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어"라고 말했다. 비록 생각했던 '빗자루로 샥샥 쓸어서 쓰레받기에 담는 청소'가 아니라 냅다 삽을 꽂아 넣는 그런 청소였지만 힘든 일이더라도 같이 하고 무엇보다 고생하고 있는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셀프 리모델링을 하면서 다투는 일이 굉장히 많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아직 공사가 까마득하게 많이 남아서 많이 다퉜다 적게 다퉜다의 정도를 가늠할 순 없다. 하지만 아내와 내가 서로를 걱정하고 무리하지 않게 배려해 주는 모습에 혹여나 다음에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서로에게 배려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함께 겪으면서 나오는 서로를 위해주고 배려하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힘들지 않아 지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대박 힘들고 완전 힘들다.
빨리 철거가 끝났으면 좋겠다.
다음 날 아내는 온몸에 알이 배겼고 시름시름 앓으며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