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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짜미 Oct 15. 2024

8인승 엘리베이터 아파트의 비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지 못하면?

  우리 아파트는 보일러실에 세탁기를 같이 두는 설계다. 이 아파트를 보러 부동산 중개사분과 처음 왔을 때도 의아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세탁기의 위치. 나만 그런지 몰라도 세탁기는 대부분 베란다나 보일러실에 있는 게 낯설지 않은 모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아파트를 보러 왔을 때는 달랐다. 몇 가구를 들려 봤지만 다들 세탁기가 주방으로 나와있었다. 위치를 설명하자면 보일러실로 들어가는 문 바로 측면. 물을 공급받고 배출을 하는 세탁기가 주방에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의아해했다. 그래도 그때 갸웃하긴 했지만 '어디에 두던 개인 취향이니까'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구매한 이 집을 둘러보며 깨달았다. 세탁기를 둘 위치가 애매하구나. 보일러실에 두자니 타워형 세탁기를 둘 수 없으며 보일러가 고장이 난다거나 손봐야 할 때 세탁기를 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베란다에 두자니 폭이 좁아 문을 열고 닫을 때 반대벽에 부딪혔다. 또한 세탁기 덩치가 있으니 베란다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작은 베란다는 세탁기를 둘 수는 있었지만 매번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턱을 넘어 다녀야 했다. 아마 다들 이런 생각을 했으니 하다 하다 주방까지 세탁기가 나온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 좁은 주방에 세탁기까지 들어온다는 건 정말 상상할 수 없고 하기도 싫은 그런 선택이었다. 그래서 우린 세탁기를 놓아도 전혀 지장이 생기지 않는 작은 베란다에 놓기로 결정을 했다. 오며가며 넘어 다녀야 하는 턱은 어떡했나? 철거를 해버렸다. 이 철거를 한 후에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게 이번에 진행한 일이었다.

방 창턱 제거 / 구축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철거를 한 후 창호공사까지 마쳤다. 창호를 설치하기 전 철거를 하면서 이 망가진 부분을 먼저 조치를 하는 게 맞는가 아니면 창호를 설치 후에 보수를 하는 게 맞는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어차피 창호는 넣을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우레탄폼으로 마감을 하기 때문에 보수는 나중으로 미뤘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만 남은 상태다.

방 창턱 제거 / 구축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이 작업의 담당은 아내가 맡았다. 이유는 아내는 손재주가 좋고 이것저것 만드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는 내 생각이고 그냥 내가 손재주가 없어서 아내에게 부탁했다. 다 깨져버린 이곳을 90도 모서리로 만들 거라고. 나는 레미탈로 미장을 하려 했는데 평소에도 내가 도움을 많이 받을 정도로 아이디어뱅크인 아내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건 다름 아닌 지점토처럼 붙여서 성형을 할 수 있는 그런 걸 하자고. 나는 바로 백시멘트를 생각했고 이전에 사용하다가 남은 게 있어서 얼른 작업을 진행했다.

방 창턱 제거 / 구축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처음에는 점도 조절도 어려워하고 성형도 힘들어하더니 금방 익숙해진 건지 후다닥 면을 만들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원래 어디가 깨져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면을 잘 만들어 뒀다.  내가 보기엔 정말 완벽했는데 아내 스스로가 보기에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내가 확인하고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동안 아내는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오늘 이렇게 말리고 내일이나 좀 갈아내고 덧칠을 좀 해야겠어."라고. 그런 열정적인 아내의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한마디 던졌다.


 "역시 프로는 다르구먼!"


 아내는 생각이 많은지 내 말에 대답할 정신이 없어 보였고 뭇 진지한 표정으로 작업한 곳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다음 공정은 면을 부드럽게 갈아내고 페인트칠을 하면 끝이다. 진지한 모습으로 작업에 임하는 아내의 모습이 새삼 기특하고 귀여웠다.


방 창턱 제거 / 구축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고통의 시간.


  둘이서 열심히 작업을 하고 점심을 든든하기 먹었다. 곧 있을 자재 양중에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재의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욕실에 들어갈 레미탈과 현관에 가벽을 세우기 위한 목재 두 단 정도와 석고보드 서너 장 그리고 MDF와 시멘트보드 한 장.


  힘이 남아있을 때 무거운 걸 옮기기 위해 레미탈을 먼저 실어 날랐다.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아파트는 공동현관 앞에 서기 전까지 계단 세 칸, 공동현관을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앞에 서기 전까지 계단 여덟 칸 정도가 있다. 계단이 있는 건 괜찮지만 계단은 있지만 경사로는 없다. 경사로가 없는 게 정말 우리를 힘들게 했다. 자재가 배달이 오고 배달해 주신 기사님께서 친절을 베풀어주시어 레미탈만이라도 엘리베이터 앞까지 함께 옮겨주셨다. 바쁘실 텐데 수고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자재 양중 레미탈  / 구축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레미탈을 옮긴 후 엘리베이터로 석고보드와 시멘트보드를 옮겼다. 보드의 사이즈는 900 ×1800 사이즈. 36 사이즈라고도 부른다. 엘리베이터에 대각으로 넣으니 딱 맞게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목재 두 단과 MDF.

이제 시작이다. MDF는 석고보드와 다르게 48 사이즈다. 48 사이즈는 1220 ×2440이다. 정말 0.0001%의 기대를 안고 엘리베이터에 머리를 비집어 봤지만 터무니없는 모습으로 넣지 못했다. 이 MDF를 잘라서 넣으면 되지 않나 했지만 우리는 2440의 긴 길이가 필요했기에 자를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넣을 수 없고 자를 수 없다면 방법은 단 하나, 계단뿐이었다.


  가벽 골조가 될 목재도 마찬가지였다. 가벽을 세우기 위해서는 긴 목재가 필요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길이를 확인 후에 잘라서 올릴까 했지만 자른 길이마저도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계단 양중. 아내와 함께 열 두장의 목재 중 네 장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첫 번째 양중이라 손발이 살짝 맞지 않아서 1층에서는 꽤나 버벅거렸다. 그리고 차츰 손발이 맞아지고 순조롭게 약 7층까지 올랐다. 하지만 순조로움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아내의 체력이 방전됐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리는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짠해졌다. 그렇게 7층에서 멈춘 후 아내를 좀 쉬게 하기 위해서 혼자 내려가서 MDF 합판을 양중했다. 다행스럽게도 층과 층 사이의 통로가 넓어서 합판을 수월(?)하게 돌릴 수 있었다.

계단 자재 양중 합판 목재  / 구축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목재 네 장과 MDF합판을 집으로 옮긴 후 나머지 목재 여덟 장은 세 장, 세 장, 두 장 이렇게 혼자 옮겼다. 더 이상 아내를 힘들게 할 순 없었다. 그리고 힘은 더 들었지만 마음이 편해서인지 둘이서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게 더 편하게 느껴졌다. 올리면서도 아내와 이런 말을 나눴다.


 "우리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해?ㅋㅋㅋ"


  다 올린 후 자재를 바라보는 마음이 새삼 소중히 키운 자식을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자식을 키워 본 경험은 없지만 고양이 한 마리를 눈도 못 뜬 상태에서부터 키워봤다고 하면 어떻게 좀 비벼볼 수 있으려나...)


  그러거나 말거나 자재 양중을 마친 후 내 상태는?

자재 양중 합판 목재  / 구축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녹다운 그 자체.

자재 양중 합판 목재  / 구축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신혼집 리모델링

  살면서 엘리베이터가 좁니 넓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본 적은 있지만 넓으면 혹은 좁으면 어떤 일을 겪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겪는 이런 경험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새로움을 많이 느꼈다. 이런 고생들로 추억이나 경험들을 많이 쌓기 위해 한 일이니 그저 오늘 하루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앞으로도 많은 경험을 하고 좋은 추억을 많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고 부디 다치지만 않고 잘 끝냈으면 좋겠다.


  이제 현관 벽을 세우기, 중문 설치, 타일 시공 준비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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