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딱뚝딱
우리가 공사 중인 이 집은 30평이 채 되지 않는다. 주방은 길쭉한 모양이고 거실은 정사각형에 가깝다. 얼핏 들은 이야기로 정사각형이면 공간효율이 좋지 못해서 직사각형인 공간이 좋다고 했다. 우리 집 주방은 직사각형인데 그마저 그다지 효율이 좋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그저 개인취향일까. 어쨌든, 정사각형인 거실에 자재들이 잔뜩 들어왔다. 대부분의 자재들을 벽에 기대어 두거나 벽 쪽으로 밀어뒀는데도 너무나 좁아 보였다. 그렇다고 좁은 게 싫은 건 아니다. 넓은 집은 좋아하지만 아파트는 좋아하지 않는다. 값싼 구축아파트를 신혼집으로 사게 된 이유도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우리의 신혼생활을 보낸 후 얼른 주택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다.(말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렀지?)
다시 돌아와서 거실에 자재가 많니 정사각형이라 효율이 떨어지니 불편하니 하는 그런 말들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나온 말들이다. 지금 당장 현관 목재 가벽을 제작해야 하는데 작업할 공간이 부족했다. 이것만 끝나면 좁니 불편하니 뭐니 하는 그런 말은 이전처럼 쏙 들어가지 않을까.
거슬리는 자재는 발로 슥슥 밀어가며 공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현관 가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도 현관에 작은 유리창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고 그 공간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제작하는 가벽에도 유리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처음 가벽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을 하면서 전체를 창으로 하면 어떨까 고민도 했었다. 요즘엔 통창이 유행이듯 널찍널찍하게 시야가 탁 트일 수 있게 하는 게 유행이다. 신발장에서 거실이 텅텅 다 보이는 모습에 대한 상상을 해봤는데 현관문 밖에서도 다 보일 거라 생각하니 꽤나 마음이 소극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나는 기존에 있던 만큼에서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높게 만들기로 했다.(덧붙이자면 큰 유리로 했을 때 유리를 내가 잘 시공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혹시나 잘못 시공되어 사고라도 난다면 큰일이다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직접 시공한 부분은 철거와 전기배선이었다. 그 작업들은 힘들기만 했거나 크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지 못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이번 가벽을 제작하는 작업은 눈에 진행률이 확실하게 보였고 조립해 나가는 맛도 있어서 아내에게 부탁해서 같이 하자고 했다. 이런 걸 같이 해나가는 모습이 내가 나중에 돌아봤을 때 추억하며 웃고 싶은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손에 연장 하나 드는 것도 무서워했지만 어느새 못 박는 총도 들고 시공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항상 어떤 일이던 처음은 무섭고 어렵고 낯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 번 경험해 보면 내가 가졌던 생각보다 덜 무섭고 덜 어렵고 덜 낯선 것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모래알갱이보다 작은 것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고 있고 그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서 언젠가 커다란 성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처음엔 아내가 겁을 냈지만 옆에서 이렇게 저렇게 알려주니 곧잘 따라 해 줬다. 내가 잘 알려주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를 믿고 과정 하나하나를 따라와 준 아내에게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보다 더 꼼꼼히 잘한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벽은 바닥에서 조립해서 함께 들어 올려 세웠다. 벽을 제작할 때엔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보다 조금 작은 치수로 제작해야 한다. 바닥이 완전한 수평이 아닐 수도 있으며 천장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바닥에서 조립한 벽을 세우게 되면 나무의 폭으로 인해서 대각선 길이가 나오기 때문에 벽을 수직으로 세울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끔찍하지만 나무의 길이를 조금씩 다 잘라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천장을 다 부숴버ㄹ...
아내와 벽을 바짝 밀어 넣고 수직이 맞는지 살펴봤다. 나무의 폭 방향으로는 치우짐 없이 잘 섰다. 그런데? 나무의 두께방향에서 문제가 생겼다. 분명 바짝 밀어 넣어서 바닥부의 목재는 벽에 붙었는데 천장부는 손가락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나는 당연히 목재가벽은 사각형으로 제작했으니 네 개의 각이 90도가 맞을 거라 생각했고 벽에 붙은 석고보드가 처음 시공될 때에 기울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사각형도 찌그러질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한 큰 착각. 안타깝게도 그 착각은 벽을 다 시공하고 석고보드까지 시공한 후에 깨달았다. 그래서 이 순간 이후로 우리 집 벽은 눈에는 띄지 않지만 조금 삐뚤어져 있다.
석고보드의 시공은 아내가 맡았다. 전체를 아내가 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고 아내에게 부탁을 했다. 줄자는 어떻게 잡는지, 길이를 잴 때는 어떻게 재면 되는지, 석고보드를 어떻게 자르면 되는지, 공구의 사용은 어떻게 하는지, 주의사항은 뭔지 등 상세히 알려주고 작업을 맡겼다.
결과는? 완벽.
시공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이론적인 내용이 조금 부족하다 뿐이지 알려주고 나면 정말 나보다 더 잘하는 것 같다. 아내에게 내 밥그릇이 뺏기면 어떡하지.! :D
아내는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한다. 여기저기 자재 조각이 남으면 그림을 그리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고 귀엽다. 그림이라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간단한 낙서지만 이런 사사로운 표현들이 이 먼지 나고 힘든 현장 속에 작은 불빛을 켜곤 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런 기분을 느끼며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